1900년 이후의 미술사(art since 1900) 책 공부114 1968년a 베셔 부부, 신즉물주의 사진, 전후 독일미술 ▲ 60년대 유럽과 미국의 선진 미술을 소개하는 데 주력했던 두 개의 미술관, 아인트호벤의 반 아베 미술관과 묀헨글라드바흐의 압타이베르크 미술관에서 베른트 베셔와 힐라 베셔 부부의 전시가 열린다. 여기서 그들은 개념주의 미술과 사진의 선구로 주목받는다. 베른트 베셔(Bernd Becher, 1931~)와 힐라 베셔(Hilla Becher, 1934~) 부부는 그들이 1957년에 시작했던 사진 프로젝트에 대해 지금도 여전히 관심을 가지고 있다. 그 프로젝트는 당시 등한시되거나 소멸할 위기에 놓인 유럽의 낡은 산업 건축물을 체계적으로 기록하는 일이었다. 베셔 부부의 프로젝트는 변증법적 특성을 갖는데 그 변증법이란 강박에 가까운 철저한 기록 의지와 그 기록을 영구히 하려는 욕망, 그리고 깊은 상실감과 대상의 .. 2019. 7. 31. [잡지] 미술 저널 다다와 초현실주의자들의 저널이 국제적인 독자와 미술 작업을 위한 광대한 네트워크를 만들어 내는데 성공한 사실은 스티글리츠의 《291》과 《카메라 워크》의 위세와 명망을 경험했던 뉴욕의 미술가들에게 영향을 끼쳤다. 페기 구겐하임이 '금세기 미술 갤러리'를 닫은 해인 1947년, 뉴욕의 사무엘 쿠츠 갤러리, 찰스 이건 갤러리, 베티 파슨스 갤러리의 전시를 통해 등장했던 미술가들은 잡지를 발판 삼아 자신들의 운동을 공고히 할 필요를 느꼈다. 이에 따라 《타이거스 아이》, 《파서빌리티스》가 추상표현주의 그룹의 미술을 지원하기 위해 창간됐다. 《파서빌리티스》는 창간호만 발행됐는데(1947~48년 겨울호) 거기에는 추상표현주의에 대한 로버트 마더웰, 잭슨 폴록, 마크 로스코의 글이 들어 있다. 《타이거스 아이》는 .. 2019. 7. 31. 1967년c 프랑수아 모렐레, 이브 클랭, 다니엘 뷔랭 ▲프랑스 BMPT 그룹의 네 명의 미술가는 각자가 선택한 단순한 형태를 캔버스마다 정확하게 반복해서 그림으로써 대중 앞에서 첫 번째 선언을 한다. 그들의 개념주의 회화 형식은 전후 프랑스의 '공식적인' 추상미술에 가해진 잇따른 비판들 가운데 최후의 것이다. 지금껏 미국 예술가의 입에서 나온 가장 국수주의적인 언급은 도널드 저드의 "나는 유럽 미술에 전혀 관심이 없고 유럽 미술은 끝났다고 생각한다."라는 논평이다. 스텔라는 자신과 비교되곤 했던 유럽의 기하학적 추상회화 화가들에 대해 "그들이 열심히 제작하고 있는 거은 내가 상관 회화(relational painting)라고 부르는 것이다. 그들에게 있어 모든 생각의 기초는 균형이다. 한쪽 구석에 무엇인가를 하고 나면 다른 쪽 구석에도 무엇인가를 해서 균형.. 2019. 7. 30. 1967년b 아르테 포베라, 자니스 쿠넬리스, 피노 파스칼리, 파졸리니, 폰타나, 만초니 ▲ 이탈리아 비평가 제르마노 첼란트가 첫 번째 아르테 포베라 전시를 연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이탈리아 예술 작업은 아르테 포베라(Arte Povera, 불쌍한 또는 가난한 미술)로 다시 확립됐는데 미국 미술의 헤게모니, 특히 미니멀리즘 조각에 맞서 겨뤘고 전쟁 이전의 이탈리아 아방가르드의 유산을 그것이 가지는 모든 내적 모순과 함께 전쟁 이후의 맥락 안에 복원시켰다. 모순들의 첫 번째는 테크놀로지였다. 이탈리아 미술가들은 미국 미니멀리즘 조각의 기본 방향 혹은 제작 방식을 테크놀로지로 잘못 이해했고 이에 따라 반테크놀로지적인 자세를 표방했다. 두 번째, 사진을 배제했다. 세 번째 특징은 아르테 포베라가 작업의 재료 및 제작 과정과 맺는 특이한 관계이다. 아르테 포베라는 다른 지역의 아방가르드 작업에.. 2019. 7. 29. 이전 1 ··· 19 20 21 22 23 24 25 ··· 29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