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0년 이후의 미술사(art since 1900) 책 공부114 1951년 바넷 뉴먼 Barnett Newman ▲ 바넷 뉴먼의 두 번째 개인전이 실패로 돌아간다. 동료 추상표현주의자들에게 버림받은 그는 미니멀리즘이 등장한 후에야 비로소 선구자로 추앙받게 된다. 50년대 내내 뉴먼은 가끔씩 그룹전에 하두 작품을 내는 정도에 그쳤지만 1958년 개인전이 열리고 뒤이어 1959년 뉴욕 프레치 앤드 코 갤러리에서 첫 번째 회고전이 열렸을 때 모든 것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1951년 뉴먼을 괴롭힌 것은 계속되는 언론의 적대감이나 무관심보다는 수년간 그가 물심양면으로 도왔던 동료 추상표현주의 미술가들의 냉담한 반응이었을 것이다. 그는 동료들의 전시를 기획하고 전시서문을 쓰고 대변인과 감독 역할까지 하곤 했다. 1950년 베티 파슨스 갤러리에서 열린 그의 첫 번째 개인전에는 그리 크지 않았던 뉴욕 미술계 전체가 몰려왔는데 그.. 2019. 8. 12. [이론] 미술과 냉전 1960년 클레멘트 그린버그가 '미국의 목소리'에서 '모더니즘 회화'를 방송했을 때 아방가르드 미술은 미국의 냉전 정치에 합세했다. 당시 냉전 정치는 전후 황폐해진 유럽의 재건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으며 미국의 반공산주의가 생겨나는 데 부분적으로 기여하기도 했다. 60년대 말 미국 정부는 문화자유회의를 후원하는 것으로 개인의 자유와 자율성을 증진시켜 전체주의의 위협에 맞서고자 했다. 회의의 구성원에는 그린버그, 잭슨 폴록, 로버트 마더웰, 알렉산더 칼더가 포함돼 있었다. 그렇지만 유럽에 (미국) 모더니즘을 선전했던 주체가 단지 정부만은 아니었다. 뉴욕근대미술관도 미국 미술을 해외에 내보내는 순회전 프로그램을 통해 한몫했고, 《라이프》지는 당시 만연하던 "유럽을 위한 무기"라는 구호를 채택했다. 공산당은 군.. 2019. 8. 11. 1959년c 사르트르 실존주의 미학, 알베르토 자코메티, 전쟁 이후 인간의 이미지 ▲ 뉴욕근대미술관에서 《인간의 새로운 이미지》전이 열린다. 실존주의 미학이 알베르토 자코메티, 장 뒤뷔페, 프랜시스 베이컨, 윌렘 데 쿠닝 등의 작품에 나타난 구상에 관한 냉전의 정치로 확장된다. 재현과 추상의 투쟁은 초기 모더니즘의 역사 내내 끈질기게 계속돼왔다. 그러나 파시즘이 부상하면서 이런 지형도는 재편될 수밖에 없었는데 특히 프랑스에서 그랬다. 반나치 운동에 나선 프랑스 인민 전선 정부는 '휴머니즘'을 외치며 예술가들에게 엘리트적이고 아방가르드적인 형식을 버리고 노동계급에 다가설 수 있는 예술을 통해 정치에 참여할 것을 중용했다. 따라서 미술에서 나타난 구상적 재현은 아카데미라는 특권에서 떨어져 나와 세계사적인 중요성을 지니게 됐다. 상황 속의 인간 당시 알베르토 자코메니(Alberto Giac.. 2019. 8. 10. 1958년 재스퍼 존스, 프랭크 스텔라 ▲ 재스퍼 존스의 「네 개의 얼굴이 있는 과녁」이 《아트뉴스》 표지에 실린다. 프랭크 스텔라 같은 미술가들에게 존스는 형상과 배경이 하나의 이미지-사물로 융합된 회화 모델을 제시했으며, 다른 이들에게는 일상의 기호와 개념적 모호함을 사용하는 가능성을 열어 주었다. 《아트뉴스》 표지에 작품이 실린 지 2주가 지난 1958년 1월 20일 재스퍼 존스(Jasper Johns, 1930~)는 뉴욕의 레오 카스텔리 갤러리에서 첫 개인전을 열었다. 전시는 초만원을 이뤘고 네 점의 회화가 앨프리드 H. 바에게 팔렸다. 이처럼 전례 없는 성공적인 데뷔는 미술계 문호가 변하고 있음을 알리는 것이었다. 젊음(당시 존스는 겨우 27세였다.)과 홍보(무명의 미술가가 무슨 수로 《아트뉴스》 표지에 실릴 수 있었겠는가?)는 미술.. 2019. 8. 9. 이전 1 ··· 16 17 18 19 20 21 22 ··· 29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