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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0년 이후의 미술사(art since 1900) 책 공부/1940년대 노트5

1942년a 미국 아방가르드의 비정치화, 브르통, 그린버그, 아실 고르키 ▲ 클레멘트 그린버그와 《파르티잔 리뷰》의 편집자들이 마르크스주의와의 결별을 선언하면서 미국 아방가르드의 비정치화는 돌이킬 수 없는 일이 된다. 1942년 7월 오스트리아 출신의 미술가 볼프강 팔렌(Wolfgang Paalen, 1907~1959)은 1942~44년에 발행된 멕시코의 국제적 잡지 《딘(Dyn)》 2호에 「변증법적 유물론에 대한 질문」이란 글을 기고했다. 팔렌이 24명의 "저명한 학자와 저술가"에게 보낸 3개의 질문과 그에 대한 답변으로 구성된 이 글은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졌다. (1) 변증법적 유물론(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철학)은 "정말로 '변증법적' 과정에 대한 과학"인가? (2)(마르크스주의의 전유와 무관하게) 헤겔이 공식화한 변증법적 방법론은 과학적이었나? 그렇다면 "과학의 중요한 .. 2019. 8. 23.
1942년b 초현실주의 전시,《금세기 미술》,《초현실주의 1차 서류》전 ▲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수많은 초현실주의자들이 프랑스에서 미국으로 망명한다. 뉴욕에서 개최된 두 전시는 서로 다른 방식으로 이런 망명의 상황을 반영한다. '우아한 시체'로서의 전시 30년대 무렵 전시는 초현실주의의 주요한 실천 방식 중 하나였다. 초현실주의 전시는 그 자체로 정치적 발언의 계기가 됐고 미학적 전환을 선언하는 전시도 있었다. 또한 전시는 국가 간 문화 변용을 촉진시켰다. 초현실주의 전시는 관람자의 참여를 적극적으로 유도했다는 점에서, 관조라는 수동적인 관람 태도를 가정했던 전통적인 전시보다는 아방가르드 실험에 가까웠다. 앙드레 브르통, 폴 엘뤼아르와 함께 《초현실주의 국제전》의 "프로듀서 겸 심사위원"을 맡은 사람은 마르셀 뒤샹이었다. 그 무렵 자신의 미니어처 미술관인 「여행용 가방.. 2019. 8. 22.
1944년a 피에트 몬드리안 ▲ 피에트 몬드리안이 「승리 부기-우기」를 완성하지 못하고 사망한다. 이 작품에서 회화를 통해 파괴라는 관념을 추구했던 몬드리안 고유의 기획이 실현된다. 1942년 6월부터 제작하고 있던 미완성의 「승리 부기-우기」는 작업실 벽면의 채색된 직사각형들의 깜박임 사이에 존재하는 연속성을 아무도 부인할 수 없었다. 이런 연속성은 이젤 위에 세워진 이 거대한 그림에서 고전적 신조형주의의 검은색 선을 비롯하여 모든 선들이 제거됐다는 사실로 인해 특히 강조됐다. 캔버스에 풀로 붙여진 조그만 직사각형 색종이들은 조금 삐뚤어지긴 했지만 "일렬로 배열됐다"고 할 수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이 배열조차 곧 붕괴될 것처럼 보인다는 사실이다. 관람자는 실제로 그 배열을 보고 있다기보다는 구성 전반에서 그것을 추론한 것이라고 .. 2019. 8. 20.
1944년b 전후 근대미술의 거장들의 양식, 마티스, 피카소, 보나르, 모란디 ▲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마티스, 피카소, 브라크, 보나르 같은 근대미술의 '거장'들은 야만성에 대한 저항의 표시로 나치에게 점령된 프랑스를 떠나지 않은 채 그대로 머문다. 전쟁 중에 거장들이 발전시킨 양식이 전후에 알려지면서 신세대 예술가들을 자극한다. 간극을 메우다 형식적인 측면에서 보면 마티스 '초기'(「생의 기쁨」 이후부터 니스 시기 이전까지)의 완숙한 양식과 '말년'양식 사이에는 근본적인 차이가 없다. 그러나 후기 작품군의 경우 검고 굵은 윤곽선으로 그려진 형상 주변의 색칠되지 않은 흰 부분이라든가, 붓 작업을 통해 드러나는 캔버스의 여백의 빛처럼 눈에 띄는 자발성의 징후들이 드러난다. 이렇게 후기 작품에 자유로움의 새로운 분위기를 불어넣는 요소들은 1935년경 마티스가 발전시키기 시작한 .. 2019. 8.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