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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방의 먼지/이런저런방6

선셋 파크 / 폴 오스터 이천년대 초반 소설에 푹 빠져 있을 무렵 내겐 맹목적으로 ‘믿고 보는 작가’가 몇 있었는데 폴 오스터도 그 중 한 명이었다. 어떤 계기로 그의 책을 처음 접하게 되었는지는 기억하지 못하지만 달의 궁전, 공중곡예사, 거대한 괴물, 뉴욕 3부작 등 그 시절 나온 모든 책을 거치며 느꼈던 감정의 기억과 무엇인가를 찾아냈다는 감동은 정말 생생히도 남아있었다. 그 기억을 다시 새기고 싶어, 그리고 세월이 지난 폴 오스터가 내게 또 다른 발견의 느낌을 줄 수 있는지 궁금해 이 책을 읽어보았다. 내용은 이렇다. 스물여덟살의 마일스라는 청년은 그의 이복형의 죽음과 관련돼 있는데 사건 이후 변화한 그에 대해 이야기 나누는 부모의 말을 엿들은 후 우수한 성적으로 다니던 대학도 그만두고 집을 나가 7년 넘게 새로운 지역에서.. 2020. 4. 16.
[오디오북] 버지니아울프 / 유산 오디오북이란 걸 처음 사용해보았다. 요즘 도서관들도 문 닫은 지 오래되어 답답한 찰나, 교보문구에서 4월 한 달간 무료로 인당 2권의 전자책이나 오디오북 대여 서비스를 한다는 소식에 책들을 훑어보았다. 그중 고른 오디오북이 버지니아 울프의 단편 유산이라는 책이었다. 낭독자는 처음 들어보는 이름의 배우인 우현주였다. 이 책을 고르게 된 이유 중의 하나인 이 낭독자는 내게 낯설기에 목소리에서 주는 편견이 없을 것 같아 선택했는데 적당히 낮은 톤의 편안함을 주는 말투가 어린 시절 주말 라디오에서 나오던 상황극 성우의 목소리를 닮아 익숙함을 전해주었다. 내용은 간단하다. 사고로 부인이 죽었다. 그녀는 남편에게 유산으로 일기를 남긴다. 일기를 읽어가던 남편은 그제야 부인의 죽음이 자살이었음을 그리고 그녀가 남겨둔.. 2020. 4. 14.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The sense of an ending / 줄리언 반스 정말 오랜만에 소설을 읽었다. 한창 소설에 빠져 있을 때는 좋아하는 특정 작가들이 있어 그 작가별 책들을 완독하곤 했던 취미가 있었는데 어느 순간 소설 읽기가 느슨해지는 시기가 왔고 지금껏 이어졌다. 소설로 인해 어떤 피로감을 느끼게 되었는데 그건 내가 책과의 과도한 감정 공유로 인한 내 실상과의 격차가 무력감을 주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 책은 조금 달랐다. 소설의 탈을 쓴 음... 뭐라 정의 내릴 순 없지만 연극적인 감정의 교류나 자기 반영을 주기보단 생각할 거리들을 던져 주었다. 이야기에 빠져 들어 감정적이 되어가는가 싶으면 갑자기 한 문단, 단락씩 서사에서 빠져나오게 하는 단락들이 정교하게 교차되어있는, 그런 면에선 인문서적의 느낌도 주는 묘한 책이었다. (줄리언 반스라는 작가는 처음 접해보기에.. 2020. 1. 10.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 / 박준 박준은 시인이라고 한다. 비교적 어린 나이인 25살에 등단했으니 지금 젊지만 경력이 꽤(?) 되는 작가이다. 2017년에 쓴 이 책은 제목이 아주 강렬하게 나를 사로잡았다.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 살면서 한 번쯤은 누구나 느껴 봤을 법한 문장이다. 나 역시 살아가면서 운다고 어떤 일이 달라지지는 않았다. 다만 약간의 감정 변화와 잠을 자는데 도움을 주었을 뿐..... 제목처럼 이 책의 내용은 달라지는 일은 없는 박준 시인이 일상에서 생긴 일들과 그만의 감정을 담담하게 풀어쓴 일기장 같은 글이었다. 일종의 에세이 같은 느낌도 들었다. 그것은 마치 누군가와 눈을 마주하며 당당히 맞서는 일의 어려움을 함께 나누는 순간의 감정 들일 수도 있는 듯하다. 다른 이의 일상과 생각을 들여다보면 그.. 2019. 11.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