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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방의 먼지/이런저런방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The sense of an ending / 줄리언 반스

by 책방의 먼지 2020. 1.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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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오랜만에 소설을 읽었다. 한창 소설에 빠져 있을 때는 좋아하는 특정 작가들이 있어 그 작가별 책들을 완독하곤 했던 취미가 있었는데 어느 순간 소설 읽기가 느슨해지는 시기가 왔고 지금껏 이어졌다. 소설로 인해 어떤 피로감을 느끼게 되었는데 그건 내가 책과의 과도한 감정 공유로 인한 내 실상과의 격차가 무력감을 주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 책은 조금 달랐다. 소설의 탈을 쓴 음... 뭐라 정의 내릴 순 없지만 연극적인 감정의 교류나 자기 반영을 주기보단 생각할 거리들을 던져 주었다. 이야기에 빠져 들어 감정적이 되어가는가 싶으면 갑자기 한 문단, 단락씩 서사에서 빠져나오게 하는 단락들이 정교하게 교차되어있는, 그런 면에선 인문서적의 느낌도 주는 묘한 책이었다. (줄리언 반스라는 작가는 처음 접해보기에 원래 작법이 그럴 순 있지만, 내가 받은 첫인상은 그러했고 그래서 이 작가의 다른 책도 찾아보고 싶게 만들었다.)

그가 이 책을 통해 내게 준 생각할 거리들은 역사, 개인의 역사, 에로스와 죽음, 개인의 책임, 윤리적인 책무 등이다.

책 초반에 이 책을 관통하는 모든 이야기가 들어있다고 볼 수있다. 이 사실은 책을 다 읽고 나서야 알 수 있게 되는데 그제야 작가가 굉장히 치밀하게 구성해 쓴 소설임을 알 수 있었다. 특히 학교에서 역사시간에 나눈 대화들과 롭슨의 자살을 다루는 대화들은 한 번 더 읽어보게 했다.
큰 사건이 하나 있는데 그건 책의 화자 토니의 친구인 에이드리언의 죽음이다. 그리고 그 시기는 토니의 전여자친구였던 베로니카와 에이드리안이 사귀게 된 후에 벌어진 일이고 에이드리언이 자살을 하게 된 원인에 대해 알려지지 않은 채 40여 년이 흘러간다. 그동안 가정도 꾸려보고 ㅡ비록 이혼했지만 전부인과는 소통하며 지내고 있고 딸은 결혼해서 손자도 있는ㅡ 평탄한 인생을 살고 있던 토니는 갑작스레 베로니카의 엄마로부터 그녀가 죽은 후 그에게 남긴 유산, 두 개의 편지와 500파운드를 받게 되면서 과거의 사건들(베로니카와 에이드리언, 베로니카 가족사)을 알아가게 된다.
에이드리언은 롭슨과 비슷한 사건으로 인해 자살을 선택하고 그 사건에 토니가 베로니카와 에이드리언이 사귀는 것을 허락?해달라고 보낸 편지에 대한 답신으로 보낸 저주 섞인 말들을 퍼부은 편지가 하나의 요인으로 작용했다는 것을 알게 된다.
하지만 정말 토니의 편지가 에이드리언 개인의 역사를 바꿀 정도로 그에게 책임을 전가할 수 있는가는 작가가 우리에게 던지는 화두같았다. 그리고 에이드리안의 일기장(유산으로 베로니카가 토니에게 넘겨줘야 했던)은 몇 부분 복사본으로 전해준 것 외엔 베로니카가 태워버렸다고 말해버려 끝까지 밝혀지지 않게 설정한 부분은, 책 초반 제1차 대전에 대해 말해보라던 역사수업에서 에이드리언은 “우리 앞에 제시된 판본의 역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역사가 개인의 역사를 알아야만 한다는 사실 말입니다.”라고 말한 부분을 염두에 둔 듯했다. 즉 작가가 우리에게 던져준 에이드리언의 자살과 베로니카 가족에게 일어난 사건은 토니의 편지가 영향을 준 것처럼 보이지만 에이드리언 개인의 역사를 알 수 있는 일기 내용이 밝혀지지 않으면서 결국 우리는 독자 개인의 주관적인 해석(그의 자살을 토니의 책임으로 돌릴 수 있는지, 책임이란 단어가 무겁다면 그에게 윤리적인 책무가 있는지에 대한 여부는)으로 풀릴 수밖에 없다는 것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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