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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방의 먼지/이런저런방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 / 박준

by 책방의 먼지 2019. 11.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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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은 시인이라고 한다. 비교적 어린 나이인 25살에 등단했으니 지금 젊지만 경력이 꽤(?) 되는 작가이다. 2017년에 쓴 이 책은 제목이 아주 강렬하게 나를 사로잡았다.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 살면서 한 번쯤은 누구나 느껴 봤을 법한 문장이다. 나 역시 살아가면서 운다고 어떤 일이 달라지지는 않았다. 다만 약간의 감정 변화와 잠을 자는데 도움을 주었을 뿐..... 제목처럼 이 책의 내용은 달라지는 일은 없는 박준 시인이 일상에서 생긴 일들과 그만의 감정을 담담하게 풀어쓴 일기장 같은 글이었다. 일종의 에세이 같은 느낌도 들었다. 그것은 마치 누군가와 눈을 마주하며 당당히 맞서는 일의 어려움을 함께 나누는 순간의 감정 들일 수도 있는 듯하다. 

다른 이의 일상과 생각을 들여다보면 그런 느낌이 든다. 나는 이럴 때 이렇게 느끼는데 나와는 다르네 라던가 혹은 아 이 부분은 나랑 너무 비슷하다 하고 비교를 하는 나쁜(?) 버릇이 있다. 이 시인의 글들을 읽으니 생각이 비슷한 점들이 겹쳐져서 좋은 느낌을 받기도 했는데 이는 큰 울림을 주었다. 

 

나에게 와 닿는 구절들을 옮겨보았다. 책으로 들어가보면 


P51. “고독과 외로움은 다른 감정 같아. 외로움은 타인과의 관계에서 생기는 것일 텐데, 예를 들면 타인이 나를 알아주지 않을 때 드는 그 감정이 외로움일 거야. 반면에 고독은 자신과의 관계에서 생기는 것일 텐데, 예를 들면 타인이 나를 알아주지 않을 때 드는 그 감정이 외로움일 거야. 반면에 고독은 자신과의 관계에서 생겨나는 것 같아. 내가 나 자신을 알아주지 않을 때 우리는 고독해지지. 누구를 만나게 되면 외롭지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고독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야. 고독은 내가 나를 만나야 겨우 사라지는 것이겠지. 그러다 다시 금세 고독해지기도 하면서.”

 

P56. 내가 좋아지는 시간

스스로를 마음에 들이지 않은 채 삶의 많은 시간을 보낸다. 나는 왜 나밖에 되지 못할까 하는 자조 섞인 물음도 자주 갖게 된다. 

물론 아주 가끔, 내가 좋아지는 시간도 있다. 안타까운 것은 이 시간이 그리 오래 지속되지 않는다는 것이고 또 어떤 방법으로 이 시간을 불러들여야 할지 내가 잘 모르고 있다는 것이다. 

다만 나 자신을 좋아하려야 좋아할 수 없는 순간만은 잘 알고 있다. 가까운 이의 마음을 아프게 했을 때, 스스로에게 당당하지 않을 때 좋음은 오지 않는다. 내가 남을 속였을 때도 좋음은 오지 않지만 내가 나를 기만했을 때 이것은 더욱 멀어진다. 

상대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는 자책과 후회로 스스로의 마음을 더 괴롭게 할 때, 속은 내가 속인 나를 용서할 때, 가난이나 모자람 같은 것을 꾸미지 않고 드러내되 부끄러워하지 않을 때, 그제야 나는 나를 마음에 들어할 채비를 하고 있는 것이라 믿는다. 

 

P63. “사는 게 낯설지? 또 힘들지? 다행스러운 것이 있다면 나이가 든다는 사실이야. 나이가 든다고 해서 삶이 나를 가만두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스스로를 못살게 굴거나 심하게 다그치는 일은 잘 하지 않게 돼.”

 

P94. 자신과 비슷한 수준, 환경, 생각을 가진 사람만을 찾아 사랑이나 결혼을 해야 한다고 믿는 사람을 나는 긍정하지 않는다. 

 

P103. 사람에게 미움받고, 시간에게 용서받았던.

 

P106. 몸의 절반은 봄 같았고 남은 절반은 겨울 같았다.

 

P124. 서른이 조금 넘은 지금에서야 생각하는 것이지만 요즘 같은 세상에 이십대의 시간들을 온전히 글쓰기에 바친다는 것이 얼마나 큰 모험이었는지, 그리고 내가 앞으로 ‘시인’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살아가야 할 삶이 얼마나 힘겨울 것인지 그 당시에는 전혀 몰랐다.

 

대개의 사람들은 ‘시인’을 만나면 처음에만 막연한 호기심을 보일 뿐, 그 호기심이 다하면 잊고 마는 것이 보통이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시인’을 마치 무슨 벼슬이나 지위에 오른 것처럼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최근 문화체육관광부의 조사에 따르면 문인들이 예술 활동을 통해 벌어들이는 평균 연봉은 214만원이라고 한다. 물론 문인들은 이미 현실적인 욕망을 미적이고 문학적인 욕망으로 대체해 행복을 누릴 줄 아는 사람들이다.

시가 돈이 되지 않듯, 시인이 직업이 될 수 없으니 내가 한 일들은 그동안 빈번하게 바뀌었다. 두 해 가까이 오류동의 마트에서 배달을 했고, 강서구의 청과물 경매장에서 지게차를 몰았고, 교정지와 함께 눈을 뜨고 교정지 위에 얼굴을 묻고 잠들어야 하는 출판사의 편집 일도 했다. 관람객들이 잘 찾지 않는 문학박물관에서 큐레이터 일을 하며 허허로운 시간을 보낸 적도 있고 꽤나 좋은 조건으로 홍보직 공무원 생활을 한 적도 있다. 

신가한 거은 낯설고 새로운 환경을 싫어하는 내가 직장을 옮길 때만큼은 큰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자면 안정적으로 잘 다니던 직장을 갑자기 그만두고, 삶을 한순간에 뒤엎어버리곤 했다는 것이다. 그렇게 일을 그만두고 나면 어김없이 책과 노트북을 챙겨 여행을 떠났다. 

더없이 정적이고 모험을 싫어하는 내 성격을 바꾼 것이 바로 이 여행이다. 

 

P136. 일과 가난

나는 왜 거절도 못하고 이렇게 일을 받아두었을까 고민하다, 그것은 아마 내가 기질적으로 가난하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 나니 한없이 우울해졌다. 가난 자체보다 가난에서 멀어지려는 욕망이 삶을 언제나 낯설게 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을까. 

 

P143. 근대 이후 인간이 해야 하는 노동은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관념적으로는 꽤나 신성한 가치로 여겨지기도 했으나 현실에서는 그렇지 못했다. 특히 누가 해도 비슷한 수준의 결과를 내는 노동의 직종들은 한없이 천대받기 시작했다. 이미 오래전부터 노동은 세계를 구성하는 것이 아니라 세계를 소비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수면욕, 식욕 같은 인간의 기본적 욕구만을 채우기 급급하다가 나이가 들어 병을 얻는 것도 그렇습니다. 

 

P148. 어른

자신의 과거를 후회로 채워둔 사람과 무엇을 이루었든 이루지 못했든 간에 어느 한 시절 후회 없이 살아 냈던 사람의 말은 이렇게 달랐다. 될 수 있다면 나는 후자에 가까운 사람이 되고 싶다. 하지만 이 역시도 쉬운 일은 아니겠다. 사실 내가 가장 자주 하는 일 중에 하나가 바로 과거의 일을 후회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앞으로도 여전히 나는 후회와 자책으로 삶의 많은 시간을 보낼 것이다. 후회하고 자책할 일이 모두 동날 때까지.

 

P181. 죽음과 유서

시를 짓는 일이 유서를 쓰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많다. 아마 이것은 이미 사라졌거나 사라지고 있는 것들이 이 세상에 너무 많기 때문일 것이고 이 숱한 사라짐의 기록이 내가 쓰는 작품 속으로 곧잘 들어오기 때문일 것이다. 

사라지는 것들의 유언을 받아 적는다는 점에서 나의 시는 창작보다는 취재나 대필에 가깝다. 

 


‘작가’라는 사람들은 자신을 잘 드러내는 자일까? 집 배경 부모 환경까지 이야기의 소재는 자신이다. 특히 이런 산문집같은 경우는 더욱 그렇다.  그리고 문득 글을 쓰는 작가와 그림을 그리는 작가가 다르지 않다는 느낌이 들었다.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평이하지는 않다는 것과 작은 사건(박준 시인이 말하는 “사물이 거울에 보이는 것보다 가까이 있음”이란 문구에 빗댄 자신의 일상과 통찰)을 자신만의 언어로 빗대어 표현한다는 점에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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