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0년 이후의 미술사(art since 1900) 책 공부114 [인물] 브라이언 오도허티와 '화이트 큐브' 60년대 초 미니멀리즘이 추상표현주의를 대체하면서 뉴욕 미술의 중심지가 바뀌었다. 8번가와 그리니치빌리지에 모여 있던 작업실들이 남쪽 옛 경공업 지구로 이동했다. 이곳의 빈 공장들은 후에 '로프트'라 불리는 넓은 개방형 작업실로 쓰였다. 주요 딜러들도 함께 이동하면서 이제 소호는 미술 생산과 전시의 중심지가 됐다. 흰색으로 칠해 빛으로 가득한 로프트는 작품의 덩치를 과거 그 공간을 차지하던 산업자재만큼 키우는데 일조했다. 도널드 저드나 로버트 모리스의 작품은 이 새로운 공간이 있었기에 구상될 수 있었다. 아일랜드 출신의 비평가이자 미술가인 브라이언 오도허티(Brian O'Doherty)는 이 공간을 '화이트 큐브' 즉 흰색 입방체라 불렀다. 1976년 《아트포럼》에 연재된 글을 출판한 오도허티의 「화이트.. 2019. 8. 8. 2007년a 탈 매체적 조건, 기술적 지지체, 크리스천 마클레이, 소피 칼, 윌리엄 켄트리지 ▲ 파리 음악의 전당에서 열린 대규모 회고전을 통해 미국 미술가 크리스천 마클레이가 파리에서 아방가르드 미술의 새로운 역사를 쓴다. 프랑스 외무부는 소피 칼을 베네치아 비엔날레의 프랑스 대표 작가로 선정함으로써 프랑스 아방가르드 미술의 미래에 대한 믿음을 드러낸다. 한편 브루클린 음악학교는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윌리엄 켄트리지에게 「마술피리」 공연을 위한 무대디자인을 맡긴다. 1960년에 발표된 「모더니즘 회화」에서 클레멘트 그린버그는 "모더니즘의 자기비판은 계몽주의의 비판으로부터 발전된 것이지만 그와 똑같은 것은 아니다. 계몽주의에서 비판은 말 그대로 외부에서 가해지는 것이다. 그러나 모더니즘에서 비판은 내부, 즉 비판이 이루어지는 절차 그 자체를 통해서 수행된다.", 이 절차를 가리켜 "권한 영역"이라.. 2019. 8. 7. [철학자] 미셸 푸코 미셸 푸코(Michel Foucault, 1926~1984)는 1968년 반전운동과 그 밖의 정치적 시위를 경험하면서 연구에 변화를 겪었다. 당시 행정실을 점거한 학생들을 진압하기 위해 경찰이 소르본 대학 구내로 들어오는 사건이 있었는데, 이것은 중세 이후 처음 있는 일이었다. 투명하다고 여겨진 제도의 틀, 즉 학문적 지식의 '객관성'과 '중립성'을 보증한다고 여겨졌던 틀을 푸코가 볼 수 있게 된 것은 이렇게 대학의 독립성에 폭력이 가해지면서였다. 푸코는 그 틀이 권력에 의해 이데올로기적으로 이용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제도적 틀이 있다고 인정되지 않았던 대학을 하나의 틀로 인정하는 푸코의 전략, 대학이 정치적 이해관계 속에 얽혀 있음을 폭로하는 푸코의 전략은 미술계의 제도적 틀 안에서 작동하는 이해관계.. 2019. 8. 6. 1971년 제도 비판 작업, 다니엘 뷔랭, 한스 하케 ▲ 뉴욕의 구겐하임 미술관이 한스 하케의 전시를 취소하고 제6회 《구겐하임 국제전》에 출품된 다니엘 뷔랭의 작품을 철거한다. 제도 비판 작업이 미니멀리즘 세대의 저항에 부딪힌다. 1971년 구겐하임 미술관에서는 포스트미니멀리즘 세대 미술가와 관련된 두 건의 중대한 검열 사건이 발생했다. 우연인지 몰라도 두 사건의 중심에는 미국 미술 제도에 반대하는 유럽 미술가들이 있었고 두 번째 사건에는 미국 미술가들도 몇 사람 관련돼 있었다. 첫 번째 사건은 한스 하케(Hans Haacke, 1936~)의 회고전 기획을 둘러싸고 일어났다. 당시 미술관장이던 토머스 메서는 전시에서 두 작품(「샤 폴스키와 그 밖의 여러 명의 맨해튼 부동산 소유관」(1971), 「솔 골드먼과 알렉스 디로렌조의 맨해튼 부동산 소유권」(197.. 2019. 8. 5. 이전 1 ··· 17 18 19 20 21 22 23 ··· 29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