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바넷 뉴먼의 두 번째 개인전이 실패로 돌아간다. 동료 추상표현주의자들에게 버림받은 그는 미니멀리즘이 등장한 후에야 비로소 선구자로 추앙받게 된다.
50년대 내내 뉴먼은 가끔씩 그룹전에 하두 작품을 내는 정도에 그쳤지만 1958년 개인전이 열리고 뒤이어 1959년 뉴욕 프레치 앤드 코 갤러리에서 첫 번째 회고전이 열렸을 때 모든 것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1951년 뉴먼을 괴롭힌 것은 계속되는 언론의 적대감이나 무관심보다는 수년간 그가 물심양면으로 도왔던 동료 추상표현주의 미술가들의 냉담한 반응이었을 것이다. 그는 동료들의 전시를 기획하고 전시서문을 쓰고 대변인과 감독 역할까지 하곤 했다. 1950년 베티 파슨스 갤러리에서 열린 그의 첫 번째 개인전에는 그리 크지 않았던 뉴욕 미술계 전체가 몰려왔는데 그때 참석한 로버트 마더웰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당신을 동료라고 생각했는데 이 전시는 우리 모두를 겨냥한 비판입니다." 뉴먼의 작품이 마더웰을 비롯한 추상표현주의자들의 작품을 지배하던 제스처적인 수사법과 대조적이었기 때문이다.
1951년 전시에서 선보인 뉴먼의 작품은 실로 다양했는데, 이는 부분적으로는 자신의 작품이 모두 비슷하다는 언론의 편견을 깨기 위함이었다. 이 중 뉴먼이 1948년에 이룬 작업의 혁신을 보여 주는 유일한 작품은 「하나임 II(Onement II)」이었다. 뉴먼이 작품에 등장하는 수직 분할선에 '띠' 대신 '지퍼'라는 단어를 사용한 것은, 지퍼라는 단어에는 단순한 상태가 아니라 행위가 함축돼 있기 때문이다.
「영웅적 숭고함을 향하여」와 「황무지」의 배후에 놓인 논리적 상관관계는 명백하다. 「영웅적 숭고함을 향하여」의 가장 오른쪽 지퍼이 두께는 캔버스 가장자리에 있는 적색 '바탕'(좁은 띠)의 두께와 같으므로 여기에서 형상과 배경, 윤곽과 형태, 선과 평면 같은 전통적인 대립은 사라지게 된다. 한편 조각처럼 보이지만 명백한 회화 작품인 「황무지」는 거대한 적색 캔버스에서 지퍼 하나만 떼어 내어 벽으로 옮긴 것처럼 보였고, 결국 전후 미국 미술사상 최초의 '세이프트(shaped)' 캔버스의 하나로 남게 된다. 뉴먼은 「황무지」의 '사물성'이 간과되거나 과장되지 않도록 자신의 최초의 조각 작품인 「여기 I」을 바로 옆에 배치했다. 두 개의 지퍼로 구성된 「여기 I」은 실제 공간을 가르며 자율성을 선언하는 듯하다. 언제나 뛰어난 큐레이터였던 뉴먼은 이처럼 전시를 대가답게 구성했지만 이 점이 오히려 전시에 대한 반감을 부추겼던 모양이다.
그는 자신의 예술이 쉽게 이해될 수 없으리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실제로 그가 「하나임 I」에서 자신이 성취한 바를 이해하는데 꼬박 8개월이 걸렸다. 꽤 오랫동안 그림을 바라봤으며 실제로 8개월 동안이나 연구를 거듭한 결과 탐구를 끝마쳤다.
이처럼 뉴먼은 오랫동안 '적절한' 주제를 갈구해 왔다. 그러나 「하나임 I」에 대해 지금까지 통용돼 온 표준적인 설명, 즉 이 작품이 창세기 도입부에 나오는 빛과 어둠의 분리를 회화적으로 표현한 것이라는 해석은 이 작품의 새로운 면모를 설명하지 못한다. 그 이전에 뉴먼은 최소 3년간 "회화가 애초에 존재하지 않기라도 한 것처럼 그리고, 무에서 출발"하겠다는 자신의 욕망을 세계의 기원이라는 주제를 통해 형상화해왔다. 1944~45년에는 처음으로 '자동기술' 방식을 활용해 신화적 주제들을 발아의 이미지로 형상화한 드로잉 작업을 했으며 1946~47년에는 구약성서에 나오는 세계의 탄생을 직접적으로 언급하는 많은 작품들을 제작했다. 이렇게 보면 뉴면의 미술은 언제나 동일한 주제에서 비롯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하나임 I」의 주제가 새로운 것이 아니라면 주제를 전달하는 형식은 새로운가? 그에 대한 대답은 의외로 단순하지 않다. 형식 문제에 있어서도 이 절제된 작품의 독창성을 발견하기는 쉽지 않다. 해답의 실마리는 「하나임 I」과 「순간」에서 전혀 다르게 다뤄지는 '바탕'에 있다. 「하나임 I」의 화면은 고르게 채색된 것에 비해 「순간」의 배경은 확정적이지 않고 막연하며 '띠'로 인해 공간 깊숙이 후퇴한다. 이 작품의 '띠'는 아직까지 '지퍼'가 아니다. 여기서의 띠는 브라크와 피카소의 분석적 입체주의 작품에 나오는 스텐실 문자처럼 그림의 나머지 부분을 공간적으로 후퇴한 것처럼 보이게 만드는 전경요소 다시 말해 요철의 철로 작용한다. 이후 뉴먼은 「순간」을 비롯해 이 시기의 작품에서 띠는 "배경의 대기 같은 느낌, 즉 자연에 존재하는 대기와 같은 느낌"을 부여한다고 말했다. 혹은 "공간과 색채를 조작함으로써 만물이 탄생하기 이전의 혼돈 상태인 공을 파괴하려 했다.
「하나임 I」은 그 자체로 천지창조의 표의문자이다. 작품 제목 '하나임(Onement)'은 영어 '속죄(atonement)'의 어원으로, '하나로 됨이라는 사실'을 의미한다. 이 작품은 일체성(Wholeness)을 재현하지는 않지만 화면과 지퍼를 하나의 통합체로 결합함으로써 일체성을 선언한다. 달리 말하면 그렇게 존재하는 것은 지퍼가 화면을 엄격하게 좌우대칭으로 분할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하나임 I」은 하나의 표의문자이자 기호이다. 그러나 그것은 기호의 의미화 작용과 실제로 발화되는 상황 사이에 존재하는 순환성을 강조하는 특수한 기호이다. 언어학자들은 이런 속성을 띠는 단어를 '연동소'라고 부른다. 이후 뉴먼이 인칭대명사는 물론 '지금', '여기', '저기가 아닌 여기'와 같이 연동소를 자신의 작품 제목으로 삼은 것은 우연이 아니다. 뉴먼의 이전 작품들처럼 「하나임 I」 또한 기원 신화를 다루고 있지만, 여기서 이 신화는 처음으로 현제시제로 말해진다. 그리고 이 같은 현제시제의 사용은 "내"가 "너"에게처럼 뉴먼이 관란자에게 직접 말을 거는 시도이다.
장소에 대한 감각
1948년 내내 숙고한 덕인지 1949년은 뉴먼에게 가장 생산적인 해였다. 뉴먼은 좌우대칭을 지각하는 일이 직립보행을 하는 인간에게 필수적이라는 사실을 직감했던 것 같다. 뉴먼의 ㅈ가품에 주기적으로 등장하는 좌우대칭은 우리 신체의 수직적 축이 시지각은 물론 우리가 보는 대상 앞에 놓일 수밖에 없는 조건을 구조화하는 요소라는 사실을 전제로 한다. 또한 우리는 좌우대칭을 지각하자마자 곧바로 우리 자신의 신체를 인식하는 동시에 시각장의 범위를 설정하게 된다. 이렇게 좌우대칭에 대한 지각은 자명한 것이며 순간적이다. 60년대 미니멀리즘 작가들에게 하나의 성서가 된 「지각의 현상학」의 저자인 모리스 메를로-퐁티에 따르면 우리가 자신도 모르게 세계에 속하는 존재임을 감지하게 되는 것은 바로 유아기부터 시작된 우리의 수직성 때문이다.
뉴먼 작품의 거대한 크기는 시야를 초월하는 수단이었다. 시야에 대한 통제를 포기하도록 만드는 이런 과잉은 대부분 숭고 이론과 관련지어 논의돼 왔다. 작품 「하나임 I」에 골몰하던 1948년 뉴먼은 「이제는 숭고다」라는 유명한 글을 통해 숭고 이론을 언급한 바 있다. 청탁받은 이 짧은 글을 쓰기 위해 뉴먼은 롱기누스, 버크, 칸트, 헤겔이 숭고에 대해 쓴 고전적인 철학 논문들을 섭렵했지만 즉시 그들의 견해를 거부했으며 더 이상 숭고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았다. 실제로 '숭고'는 뉴먼이 단어 '비극' 대신 일시적으로 사용한 것이다. 여기서 문제 되는 것은 단 하나의 예외이다. 1965년 뉴먼은 데이비드 실베스타에게 '영웅적 숭고함을 향하여'라는 제목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인간이 숭고하거나 숭고할 수 있는 것은 자신이 인식하고 있다는 사실을 감지하는 한에서이다." 뉴먼에게 있어서 숭고는 '기억, 연상, 향수, 전설, 신화'에 기대지 않고 홀로 혼돈과 마주하여 용감하게 인간 운명과 대면하는 누군가가 자신이 어디 있는지 감지할 수 있게 해 주는 무엇이다. 다시 말해 숭고는 그런 누군가에게 여기와 지금에 대한 감각을 부여하는 것이다. 1948년부터 뉴먼은 관람자에게 장소에 대한 감각, 즉 그 자신의 규모에 대한 감각을 주고 싶었다고 주장해 왔다.
그러나 뉴먼의 숭고 개념이 계몽주의 철학자들과 완전히 상반된 것은 아니다. 그러나 버크와 칸트에게 숭고 개념은 하나의 보편적인 범주로 남아 있다. 그들 모두 숭고를 총체성 관념에 대해서 일시적으로 느끼는 부족함으로 정의한다. 뉴먼이 말하고자 한 바는 개념으로서의 공간이 아니라 그 자신의 '현전'이며, 무한성이 아니라 규모이며, "시간의 감각"이 아니라 "신체가 지각하는 시간"이다. 이것이 바로 뉴먼에게 있어 「하나임 I」의 의미이자 그가 오하이오 경험을 통해 확신한 것이다. 이렇게 뉴먼은 숭고의 철학적 개념에 작별을 고했으며 얼마 안가 숭고가 '인간이 존재한다는 관념'을 표현하기에 너무도 보편적인 개념이라고 여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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