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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0년 이후의 미술사(art since 1900) 책 공부114

[인물] 로저 프라이와 블룸즈버리 그룹 20세기 초 영어권 국가에서 프랑스의 선진 회화의 가장 열성적 지지자는 영국의 화가이자 비평가인 로저 프라이(Roger Fryy, 1866~1934)였다. 그의 기획으로 1910년 그래프턴 갤러리에서 열린 《마네와 후기인상주의전》은 회의적인 런던의 대중들에게 세잔, 반 고흐, 고갱, 쇠라 등의 작품을 소개한 최초의 전시였으며 여기서 '후기인상주의'란 용어가 처음 사용됐다. 1912년에 그는 재차 그래프턴 갤러리에서 제2회 《후기인상주의》전을 개최했다. 프라이가 핵심 멤버로 속해있던 블룸즈버리 그룹은 20세기 초 런던의 예술가들이 유동적으로 참여했던 집단으로, 소설가 버지니아 울프와 레너드 부부, 그녀의 언니이자 화가였던 버네사 벨과 연인인 덩컨 그랜트, 작가 제임스와 리턴 스트레이치 형제, 그리고 경제학.. 2019. 8. 30.
1906년 야수주의, 앙리 마티스 Henri Matisse ▲ 폴 세잔이 프랑스 엑상프로방스에서 생을 마감한다. 세잔의 죽음과 1년 전 개최된 빈센트 반 고흐와 조르주 쇠라의 회고전을 계기로 후기인상주의가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야수주의가 그 뒤를 잇는다. 후기인상주의의 4인의 전도사 마티스는 네 명의 후기인상주의자들(반 고흐, 고갱, 쇠라, 세잔)의 화풍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그들 모두가 묘사의 기능에서 색채와 선을 분리시켜 그 고유의 가치와 표현적 기능을 강조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또 그는 회화의 기본 요소들이 이러한 자율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화학자처럼 그것들을 분리한 다음 새롭게 재조합하는 길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쇠라는 실험적인 방법을 동원하여 화가들이 결코 도달할 수 없었던 빛의 비물질성을 얻으려 했으나 역부족이었다. 그러나 그가 행한 분석 및.. 2019. 8. 29.
1903년 폴 고갱, 원시주의, 「올랭피아」,「청색 누드」,「죽음의 혼이 지켜본다」 ▲ 폴 고갱이 남태평양 마르키즈 제도에서 사망한다. 고갱 미술에서 보이는 부족 미술과 원시주의의 환상들이 앙드레 드랭, 앙리 마티스, 파블로 피카소, 에른스트 루트비히 키르히너의 초기 작업에 영향을 미친다. 19세기 후반의 네 명의 화가, 조르주 쇠라(Georges Seurat, 1859~1891), 폴 세잔(Paul Cézanne, 1893~1906),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 1853~1890), 폴 고갱(Paul Gauguin, 1848~1903)은 20세기 초 모더니즘 미술가들에게 깊은 영향을 미쳤다. 이들 모두는 회화의 새로운 순수성을 제안했지만 그 강조점은 각기 달랐다. 쇠라는 시각적 효과를, 세잔은 회화적 구조를, 반 고흐는 회화의 표현적인 차원을, 고갱은 회화의 영적.. 2019. 8. 28.
1900년b 앙리 마티스의 조각, 로댕 ▲ 앙리 마티스가 오귀스트 로댕의 파리 작업실을 방문하지만 선배 조각가의 양식을 거부한다. 앙리 마티스(Henri Matisse, 1869~1954)가 1900년 오귀스트 로댕(August Rodin, 1840~1917)의 작업실을 방문했을 때 이 60세의 노작가는 이미 거장으로 인정받고 있었다. 로댕은 지루한 아카데미풍 기념물과 상투적인 동상만 존재하던 지난 세기 이후 거의 빈사 상태에 이른 조각 분야를 소생시킨 유일한 조각가로서 오랫동안 명성을 누리고 있었다. 그의 명성은 대부분 대리석 작품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이 대리석 작품들은 아카데미 전통을 바꾸기보다는 오히려 지속시키는 것이었다. 반면 다소 혁신적인 작품들은 그의 작업실에 숨어 있었다. 외투에 싸여 있는 두꺼운 원기둥 같은 「발자크 동상」(근대.. 2019. 8. 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