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폴 고갱이 남태평양 마르키즈 제도에서 사망한다. 고갱 미술에서 보이는 부족 미술과 원시주의의 환상들이 앙드레 드랭, 앙리 마티스, 파블로 피카소, 에른스트 루트비히 키르히너의 초기 작업에 영향을 미친다.
19세기 후반의 네 명의 화가, 조르주 쇠라(Georges Seurat, 1859~1891), 폴 세잔(Paul Cézanne, 1893~1906),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 1853~1890), 폴 고갱(Paul Gauguin, 1848~1903)은 20세기 초 모더니즘 미술가들에게 깊은 영향을 미쳤다. 이들 모두는 회화의 새로운 순수성을 제안했지만 그 강조점은 각기 달랐다. 쇠라는 시각적 효과를, 세잔은 회화적 구조를, 반 고흐는 회화의 표현적인 차원을, 고갱은 회화의 영적 환영의 가능성을 강조했다. 고갱의 영향력은 양식적인 측면보다는 그의 개인적 삶에서 발휘됐다. 모더니즘 '원시주의'의 아버지로서 고갱은 부족 문화에서 발견할 수 있는 환영의 추구를 낭만주의 미술가의 소임으로 삼았다. 대부분의 모더니즘 미술가들은 형식이나 모티프를 얻기 위해 부족 미술에 관심을 가졌다. 그중 앙리 마티스와 파블로 피카소는 깊이 있고 구조적인 방식으로 접근했지만 다른 미술가들은 이미지를 피상적으로 차용하는 데 그쳤다.
억압적인 유럽의 관습에 도전하고자 했던 모든 미술가들은 원시적인 것이 양식과 자아가 극적으로 개조될 수 있는 이국적인 세계라고 상상했다. 원시주의는 유럽 제국주의의 전 지구적 기획의 일부일뿐만 아니라 아방가르드의 편협한 술책의 일부이기도 했다. 과거 서양미술 내부에서 진행된 복귀(19세기 라파엘전과 미술가들이 중세미술의 낭만주의로 복귀)와 마찬가지로 서양미술 외부에서 진행된 이 원시주의에의 체류도 전략적인 것이었다. 이것은 아카데미 미술의 오랜 관습을 능가할 뿐 아니라, 순전히 근대적 주제나 순수하게 시지각적 문제에만 관심을 갖고 있다고 여겨진 리얼리즘이나 인상주의, 또는 신인상주의 같은 최근의 아방가르드 양식을 넘어서는 것이었다.
원시주의의 혼성모방
고갱은 "문명은 나로부터 조금씩 멀어지고 있다."고 타히티 생활에 대한 회고록인 「노아-노아」(1893)에 썼다. 유럽에서 멀어질수록 문명적으로도 거슬러 올라간다는 식의 시공간의 융합은 원시주의의 특징이자, 당시에 팽배해 있던 문화적 진보에 대한 인종주의적 이데올로기의 특징이었다.
고갱의 미술은 절충적이었는데, 오세아니아나 아프리카의 부족 미술보다는 페루, 캄보디아, 자바, 이집트의 왕족 미술을 참조했다. 그는 다양한 문화에 출처를 둔 모티프들을 이상한 방식으로 조합하곤 했다. 양식과 주제의 혼합주의는 모든 문화가 근본적으로 공유하고 있는 미학적. 종교적인 충동을 드러내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혼합주의는 수많은 원시주의 미술이 지닌 역설, 즉 원시주의 미술이 혼성성과 혼성모방을 통해 순수성과 탁월함을 추구한다는 사실을 지적하는 것이기도 했다. 실제로 원시주의는 이데올로기적으로 모순된 것인 만큼, 대개 양식적으로 혼합돼 있으며, 고갱이 그의 후계자들에게 물려준 것은 바로 이런 절충적 구성물이었다.
아방가르드의 책략들
마티스와 피카소의 원시주의가 나아간 궤적은 서로 달랐다. 피카소는 이베리아 반도의 부조로 관심을 돌렸고, 여기에서 영향을 받은 두꺼운 윤곽선은 1906~07년 피카소의 초상화에 나타났다. 반면 프랑스 회화의 오리엔탈리즘적 성격에 늘 관심을 갖고 있던 마티스는 북아프리카로 여행을 떠났다. 이 두 미술가들이 아프리카 가면과 조각상에서 영향을 받은 것은 1906년 후반부터였다. 마티스는 입체주의에 대한 조형적 대안을 제시하기 위해 그것을 사용했다. 그는 아프리카 조각의 "면과 비례"에 감탄했다. 이를 통해 마티스는 드로잉을 단수화하고 묘사의 기능에서 색을 해방시켰다. 이런 특징은 마티스의 원시주의 회화의 주요 작품으로 아카데미풍 누드를 과격하게 변형시킨 「청색 누드: 비스크라의 기념품」에서 명확히 드러난다.
「올랭피아」(1863)에서 에두아르 마네(Edouard Manet, 1832~1883)는 티치아노의 비너스에서 앵그르의 오달리스크에 이르는 아카데미풍의 누드를 한 파리 창녀의 초라한 침대에 내던져 버렸다. 그 후 아방가르드 회화는 다른 어떤 장르보다 이런 전복을 통해 자신의 주장을 구현하려 했다. 올랭피아를 사진으로 남겼을 뿐 아니라 직접 캔버스에 모사한 고갱은 그 모사품을 부적처럼 타히티로 가져가서, 젊은 타히티인 아내 테하마나를 그릴 때 이용했다. 「죽음의 혼이 지켜본다」는 「올랭피아」를 연상시키는 동시에 이를 넘어선다. 미술사학자 그리젤다 폴록은 이것을 한 번에 세 가지 수를 두는 "아방가르드 책략"으로 보았다. 고갱은 전통을 참조하면서 아카데미 누드화 전통뿐만 아니라 그것의 아방가르드적 전복이라는 전통도 같이 참조했다. 또한 고갱은 이 그림을 통해 대가들에게 경의를 표했는데 여기에는 티치아노와 앵그르뿐만 아니라 마네도 포함돼 있다. 마지막으로 고갱은 이들과는 다른 자신만의 차이를 제시했다. 이것은 모든 부권적 선례에 대한 오이디푸스적 도전이자, 자신에게도 그들과 마찬가지로 대가의 지위를 부여하라는 요구이기도 하다.
「청색 누드」의 마타스, 「아비뇽의 아가씨들」의 피카소, 「일본 우산을 쓴 소녀」의 키르히너 역시 여성의 신체를 두고 선배 미술가와 경쟁하는 것은 물론 서로 경쟁했다. 이 미술가들 각각은 부족 미술이나 원시주의적인 신체에 대한 환상 등을 취해 서구 전통 밖으로 나가는 것이 서구 전통을 발전시키는 하나의 방법이라고 보았다. 돌이켜 보면 당시에는 이 외부자, 즉 타자가 모더니즘 미술의 형식적 변증법에 속해 있었던 것이다.
고갱은 파리의 한 창녀를 그린 장면을 '죽음의 혼'에 대한 한 타히티인 여성의 상상 속의 영적 환영으로 재가공하여 마네를 새롭게 만들었다. 올랭피아는 우리의 시선을 되받아치고 남성 관람자를 손님인 양 노려보지만, 고갱은 결정적으로 여인의 시선을 돌리고 엉덩이가 드러나도록 몸도 돌려놓았다. 테하마나의 성적 태도는 올랭피아처럼 주도적이지 않다. 여기서는 그림을 보는 남성 관람자가 주도적이 된다. 마티스는 올랭피아의 자세를 인용하면서도 왼쪽 다리를 관람자 쪽으로 비틀어서 엉덩이를 더욱 두드러지게 만듦으로써 「죽음의 혼」에서 시작된 여성적 섹슈얼리티의 원시주의적 처리를 더욱 심화시켰다. 이런 방식으로 「청색 누드」는 마네와 고갱을 모두 넘어섰으며 창녀/원시인 누드라는 전쟁터에서 또 하나의 모더니즘의 승리를 성취했다.
원시주의의 양가감정
1907년 앙데팡당전에서 대단한 논란을 일으켰던 「청색 누드」는 피카소를 자극했고 그는 곧 「아비뇽의 아가씨들」을 발표하여 마티스와 경쟁 구도를 형성하게 됐다.
비록 창녀지만 올랭피아는 자신의 성을 지배하고 있다. 손으로 음부를 가린 올랭피아가 지닌 부분적인 권력은 이 그림에서 가장 도발적인 부분이다. 그러나 「죽음의 혼」에서 고갱은 이와 같은 여성의 권력을 제거해 버렸다. 이 그림은 성적 지배에 대한 하나의 꿈일 뿐, 지배는 실제적이지 않으며, 이 회화적 퍼포먼스는 실제 삶에서 성적 지배가 결여돼 있따는 느낌을 보상하기 까지 한다. 여성의 섹슈얼리티에 대한 욕망과 두려움이라는 이 이중의 감정은 「청색 누드」에서 더 적극적으로 드러난다.
피카소는 천재적이게도 성적이고 인종적인 이중의 감정을 주제와 형식 실험으로 승화시킬 수 있었다. 성정인 것과 인종적인 것을 뒤섞어 놓은 것이다. 피카소는 「아비뇽의 아가씨들」을 자신의 "첫 액막이 회화"라고 불렀다. 피카소가 이 용어를 거리낌 없이 사용했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왜냐하면 모더니즘의 원시주의 대부분에서 부족 미술과 원시적 신체가 등장하지만, 형식적으로만 수용했기 때문에 결국엔 그것들을 정화시켜 버리기 때문이다. 마치 원시주의가 성적. 인종적. 문화적 차이를 인정하면서도 그것들을 물신으로 만들어 버리고 결국에는 부정하는 것처럼 말이다.
▶관련글:[이론] 이국적인 것과 나이브한 것
'1900년 이후의 미술사(art since 1900) 책 공부 > 1900년대 노트' 카테고리의 다른 글
1908년 빌헬름 보링거「추상과 감정 이입」, 키르히너, 마르크, 루이스 (0) | 2019.09.02 |
---|---|
1907년 Pablo Picasso, 파블로 파카소「아비뇽의 아가씨들」 (0) | 2019.08.31 |
1906년 야수주의, 앙리 마티스 Henri Matisse (0) | 2019.08.29 |
1900년b 앙리 마티스의 조각, 로댕 (0) | 2019.08.27 |
1900년a 프로이트, 클림트, 에곤 실레 (0) | 2019.08.26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