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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0년 이후의 미술사(art since 1900) 책 공부/1900년대 노트

1900년b 앙리 마티스의 조각, 로댕

by 책방의 먼지 2019. 8.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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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리 마티스가 오귀스트 로댕의 파리 작업실을 방문하지만 선배 조각가의 양식을 거부한다.

 

앙리 마티스(Henri Matisse, 1869~1954)가 1900년 오귀스트 로댕(August Rodin, 1840~1917)의 작업실을 방문했을 때 이 60세의 노작가는 이미 거장으로 인정받고 있었다. 로댕은 지루한 아카데미풍 기념물과 상투적인 동상만 존재하던 지난 세기 이후 거의 빈사 상태에 이른 조각 분야를 소생시킨 유일한 조각가로서 오랫동안 명성을 누리고 있었다. 

그의 명성은 대부분 대리석 작품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이 대리석 작품들은 아카데미 전통을 바꾸기보다는 오히려 지속시키는 것이었다. 반면 다소 혁신적인 작품들은 그의 작업실에 숨어 있었다. 외투에 싸여 있는 두꺼운 원기둥 같은 「발자크 동상」(근대 조각의 기원으로 여겨지고 있다.)은 1898년 발표되어 당시 대단한 논란에 휩싸였지만 로댕은 비판 세력에 답이라도 하듯 1900년 4월부터 11월까지 파리 전역에서 개최된 만국박람회에서 회고전을 개최했다. 이때부터 로댕은 마티스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에게 부르주아 사회의 억압에 굴하지 않고 타협하지 않는 예술가라는 낭만적인 이상의 상징이 됐다.  이 작품은 근대 조각의 기원으로 여겨지고 있다.

 

마티스, 이탈하다

마티스는 로댕의 작업실을 방문하면서 대가의 미학과 자신의 미학이 근본적으로 어떻게 다른지 깨달았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로댕이 「성 요한」을 어떻게 만들 수 있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는 「성 요한」의 손을 잘라 작업대에 고정시키고 그것을 왼손으로 붙잡고 세부 작업을 한 것 같다. 여하튼 로댕은 그 손을 전체와 분리시켰다가 다시 팔 끝에 붙이고 전체적인 움직임에 손의 방향을 맞추려 했다. 그러나 이미 나는 작품의 전체 구조를 상상할 수 있었고, 설명적인 세부 대신 생동감 있고 암시적인 종합을 떠올렸다." 마티스는 인위적 제작 방식을 노골적으로 드러낸다는 점에서가 아니라, 접합된 파편들을 짜 맞추고 부분적인 형상에 대해 끝없이 탐닉한다는 점에서 로댕을 마음에 들어하지 않았다.

이렇게 하여 마티스는 로댕의 작업에서 가장 근대적인 측면 중 하나를 무시했지만 콘스탄틴 브랑쿠시는 로댕의 이런 측면을 열심히 모방해서 발전시켰다. 동일한 형상이나 그 파편의 주조물을 다시 사용하여 다른 그룹과 결합하거나 다른 방식으로 공간에 배열하는 로댕의 자르고 붙이는 작업은 피카소의 입체주의 구축물과 더불어 20세기 미술의 최고의 어법 중 하나가 됐다. 

 

앙리 마티스 「뱀처럼 구불거리는 인체 The Serpentine」 1909

접근할 수 없는 '물자체'

마티스는 로댕과 마찬가지로 아카데미 전통과 힐데브란트가 신봉했던 상상 속 물질의 투명성에 대한 이상을 거부했다. 마티스에게 투명성이란 서로 다른 두 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하나는 관념적 투명성과 관련된 꿈, 즉 작품의 의미를 단번에 전부 알아내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근대 조각가의 빈 공간 사용을 의미한다. 먼저 빈 공간부터 보자면, 「뱀처럼 구불거리는 인체」에서 빈공간은 형상이 취한 자세에서 생긴 부차적 효과에 불과했으며 마티스는 두 번 다시 이것을 사용하지 않았다. 더 중요한 것은 실제로 일어난 결과가 마티스가 주장한 바와 반대라는 점이다. 그 누구도 한 번에 모든 것을 볼 수 없고, 또 어떤 시점에서 봐도 작품의 의미를 완벽하게 이해할 수는 없다. 이 작품의 주위를 백번을 돌아도 이 작품 전체를 모두 파악할 수는 없다. 전체성과 거리감은 공간에서 춤추는 곡선을 통해서 확보되는 것이며, 우리는 이런 전체성, 즉 작품이 지닌 물자체의 전체성에 접근할 수 없다.

바로 여기에 마티스의 조각과 미켈란젤로의 미술, 또는 마티스의 조각과 비교되곤 하는 잠볼로냐의 미술과의 주요한 차이점이 존재한다. 잠 볼로냐의 조각도 그 주위를 돌면서 봐야 하지만, 종착점에 도착하는 순간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 항상 알 수 있다. 콘트라포스토가 만들어 낸 왜곡이 항상 해부학적 지식 범위에 있기 때문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형상이 취한 제스처가 사실주의적이거나 수사학적인 명분 같은 것을 항상 갖고 있기 때문이다. 마티스는 이 모든 것, 즉 해부학이나 환기적인 제스처에 신경을 쓰지 않았다. 마티스는 해부학을 간단히 무시하면서도 로댕의 개인적인 조각에서 얻은 교훈의 핵심을 간파했다. 

사실 마티스의 조각은 빙빙 돌면서 봐도 결정적인 지점이나 특권적인 시점이 없어서 시점을 옮길 떄마다 형상이 어떻게 달라질지 예견할 수 없다. 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중심에서 제일 벗어나서 예상이 거의 불가능한 시점, 즉 조각 전체가 아라베스크 문양처럼 보이는 시점을 찾아서 형상의 뒤틀림에 대한 최소한의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었다. 그는 마치 인식의 게임을 하면서, 전체성에 대한 우리의 욕망을 놀리기도 하고 그 필연적인 욕구 불만을 선언하는 것 같기도 하다. 이것이 바로 모더니티의 조건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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