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빌헬름 보링거가 「추상과 감정 이입」에서 추상미술을 세계에서의 후퇴로, 재현미술을 세계로의 개입으로 대조한다. 독일 표현주의와 영국 소용돌이파는 이렇게 상반된 심리 상태를 나름의 방식으로 형상화한다.
독일 표현주의자 프란츠 마르크(Franz Marc, 1880~1916)는 제1차 세계대전의 전선에서 다음과 같은 글을 남겼다.(그는 이곳에서 전사했다.) "나비 한 마리가 손바닥에 내려앉듯이 나는 이상한 생각에 사로잡혔다. 아주 오래전 사람들이 마치 우리의 분신인 것처럼 추상을 사랑했다는 생각에, 인류학 박물관의 눈에 띄지 않는 무수한 사물들이 매우 불편한 시선으로 우리를 바라본다. 전적으로 추상 의지의 산물인 것 같은 이런 사물들이 어떻게 만들어질 수 있었을까?" 이런 생각은 기이하지만 완전히 새로운 것은 아니다. 마르크는 프랑스 시인 샤를 보들레르의 시적인 "조응"에 공감을 표했으며, 독일 미술사학자 빌헬름 보링거(Wilhelm Worringer, 1881~1965)는 1908년 논문에서 근대 미술가의 분신이라고 할 수 있는 부족 미술가들의 추상과, 근원적인 추상 의지의 산물인 추상 간의 유사성을 이미 언급한 바 있다.
1911년 강경한 반모더니스트들이 표현주의자들을 공격했을 때, 보링거는 그들이 기본 형태를 주목하고, 부족 미술에 관심을 갖고 있으며, 무엇보다 르네상스부터 신인상주의까지의 회화를 지배한 "합리화된 시각"을 거부하는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고 두둔했다. 또 1910년 「추상과 감정 이입」 서문에서 "표현의 새로운 목표"에 "유사함"이라고만 적고 자신과 표현주의의 관계를 분명하게 표현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런 유사성은 분명 그 시대의 "내적 필연성"을 의미했꼬 청기사파 화가들은 자신들의 미술을 "영적인 각성"이라는 용어로 설명함으로써 이런 형이상학적 경향에 공감을 표했다. 미술에 형이상학적으로 접근한 것은 다리파도 마차가지였다. 형이상학적 경향은 이 두 그룹의 이름에서도 명백히 드러난다. 청기사는 기독교의 계시록에 등장하는 성 조지라는 전통적인 인물에서 유래됐고 다리파는 프리드리히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1883~1892)에 나오는 "인간은 짐승과 초인을 잇는 하나의 밧줄이다. 심연에 놓인 밧줄...... 인간은 다리지 목표는 아니다."에서 유래됐다. 독일 표현주의는 나름의 방식으로 「추상과 감정 이입」에서 개진된 형이상학적 관심에 공감을 표했다. 마르크는 보링거와 마찬가지로 자연 세계를 원초적인 흐름의 장소로 표현했지만, 키르히너는 도시 세계를 원시적인 생명력의 장소로 표현했다. 그러나 이런 표현에 대한 강조가 보링거의 추상 개념과 꼭 일치하는 것은 아니었다.
대립되는 양식들
「추상과 감정 이입」에서는 "감정 이입"과 "예술의지"라는 두 개의 개념이 나온다. 보링거는 자연주의적 재현과 기하학적 추상이라는 상반된 양식은, 각각 역사와 문화를 가로질러 세계로 감정 이입하여 개입하거나, 충격 때문에 세계에서 후퇴하는 상반된 태도를 표현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감정 이입 충동은 인간과 외부 세계의 현상 간에 신뢰할 수 있는 행복한 범신론적 관계를 전제로 하지만 ...... 추상 충동은 외부 세계의 현상에 의해 야기된 인간의 과도한 심리적 불안감의 산물이다. ...... 아마 이런 상태를 공간에 대한 무한한 심리적 공포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보링거에 따르면 원시인은 자연을 적대적인 혼란으로 간주한다. 부족 미술가는 (자연의 변화무쌍한) ""생김새로부터의 도피처"로 추상을 택한다. "심리적 불안감"과 "공간에 대한 공포"에 내몰린 근대인도 추상에 의존하게 된다. 이런 설명은 이후 등장한 추상미술에 대한 찬사와는 상반되며, 보링거는 그런 찬사가 이후 선언하게 될 인간주의의 승리에 도전했던 것이다.
이런 보링거의 설명은 청기사파보다 다리파와 더 관련이 깊다. 키르히너도 근대성을 원시적인 것으로 묘사하기 위해, 마네와 고갱에서 시작하여 마티스와 피카소를 거쳐 그에게 전승된 매춘부의 원시적 형상이나, 지멜이 지적한 것처럼 매춘부가 전반적인 퇴행의 유일한 징후가 됐던 근대 도시의 거리 표정을 그렸다. 「드레스텐의 거리」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지멜이 근대 도시의 "정신적 삶"의 특징이라고 했던 "무감각한 태도"를 암시한다. 게오르크 지멜(Georg Simmel, 1858~1918)은 1903년에 쓴 글에서 "대도시적 인간은 회부 환경에 위협적인 상황과 모순에서 자신을 방어할 수 있는 기관을 발달시킨다."고 했다. 이 그림에서는 주황색, 녹색, 청색으로 된 대로를 관통하여 인물들을 감싸고 흐르는 전선의 전류 같은 것이 느껴진다. 한편으로는 신경 자극제로, 한편으로는 보호막 역할을 하는 이 전선은 도시인들을 연결하는 동시에 분리시키는데, 이것이 바로 결합과 분리를 동시에 가능하게 하는 소외의 모순적인 측면이다.
보링거에게 추상은 혼란스러운 세계에서 비롯된 자극을 완화시키는 수단이었지만, 키르히너에게 추상은 그 자극을 표현하고 심화시키는 수단이었다. 청기사파의 추상은 또 다르다. 마르크가 자연 세계와의 결합을 위해 추상에 접근했다면, 칸딘스키는 영적 영역과 교감을 추구했다. 이 두 화가에게 인간의 소외는 극복해야 할 대상이지 심화해야 할 것이 아니었다. 그러므로 청기사파가 제안한 미학은 추상 대 감정 이입이 아니라. (그 대상이 자연이든 영혼이든 간에) 감정 이입으로서의 추상이다. 감정과 형태의 방정식, 다시 말해 "내적 필연성"과 외부 세계의 화해를 추구했다. 칸딘스키의 주장대로 그의 미술의 "내용"이란 "그림의 형식과 색채 간의 결합이 미치는 영향력 아래서 관객이 경험하거나 느끼는 바"이다. 이런 이유에서 「연감」에서 특히 중요하게 다루어진 음악은 그들의 미학적 전형이 됐다. 이것 역시 보링거의 추상과 감정 이입의 대립을 역전시킨다기보다는 추상과 감정 이입을 결합한 것이다. 칸딘스키가 「연감」에서 언급한 대로, "사실주의=추상"이고 "추상=사실주의"인 것이다.
범신론적인 침투
마르크는 1910년에 자신의 작업이 "자연, 나무, 동물, 대기에서 박동하는 피의 흐름에 범신론적으로 침투하는 것"이라고 규정했다. 그가 추구한 것은 어떤 주어진 표현이 아니라 자신과 타자를 회화적으로 결합시킬 수 있는 감정 이입적 추상이었다. 이런 생각이 실현 불가능하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지만, 「동물들의 운명」같은 그림은 일종의 "범신론적 침투"를 연상하게 한다. 그러나 여기서 인간과 동물의 공통점은 고통이나 고뇌인 것 같다. 이 작품에서 절망은 존재 간의 분리에서 비롯된다. 고통의 효과는 무엇보다 남다른 것이며 개인적이다. 마르크의 감정 이입 추구는 한계에 부딪쳤다. 동물적 타자는 감정 이입을 초월한 비인간적 타자로 밝혀졌다. 이것 역시 추상 대 감정 이입은 아니지만, 더 이상 감정 이입으로서의 추상도 아니다. 감정 이입은 실패했으며 추상은 이런 한계를 알리는 지표 역할을 한다.
비인간화라는 진단
결과적으로 추상 대 감정 이입 모델은 독일 표현주의보다는 영국 소용돌이파에 더 적합한 것이었다. 이 운동과 보링거와의 연관성은 의외로 크다. 흄은 현대미술의 양식을 유기적인 것(보링거의 감정 이입)과 기하학적인 것(보링거의 추상)으로 나누고, 보링거와 마찬가지로 이런 양식들이 상반된 두 "태도"에 대응된다고 주장했다. 하나는 르네상스 이래 지배적인 위치를 차지해온 것으로 인간을 자연의 중심에 놓는 "안이한 낙관주의"이고, 나머지 하나는 소용돌이파에서 태동한 냉철한 비인간주의, 즉 "외부 세계의 자연에서 느끼는 소외감"을 강조하는 것이었다.
루이스의 「별들의 적」에서는 두 종류의 외관이 하나로 합쳐진 매우 응축된 형상이 등장한다. 이 형상의 수신기처럼 생긴 머리와 방패 같은 피부는 외부로부터 구체화된 듯하지만 그 기관과 어깨가 제거됐다는 점에서 내부로부터 구체화된 것 같기도 하다. 흄이 언급했듯이 그 골격은 "몇몇 기계들 간의 추상적인 관계"로 변형된 듯 보인다.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이 「별들의 적」은 하늘로 승천하는 것 같은 느낌을 표현했던 칸딘스키의 청기사와는 정반대다. 이 그림에서 루이스가 제시한 추상은 실제로 감정 이입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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