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0년 이후의 미술사(art since 1900) 책 공부114 [인물] 에드워드 마이브리지와 에티엔-쥘 마레 영국인 에드워드 마이브지리(Eadweard Muybridge, 1830~1904)와 프랑스인 에티엔-쥘 마레(Etienne-Jules Marey, 1830~1904)는 서로 운명처럼 결합돼 있다. 그들은 같은 날 태어나서 같은 날 죽었으며 둘 다 움직임에 대한 사진 연구를 처음 도입했는데, 이것은 미래주의 미술의 발전뿐만 아니라 노동과 시공간 일반의 근대적 합리화에도 영향을 미쳤다. 원래 미국 서부와 중앙아메리카 풍경을 찍는 사진가로 이름을 알린 마이브리지는 1872년에 백만장자이자 전 미국 주지사였던 릴랜드 스탠포드의 부탁으로 말이 뛰는 모양에 대한 논란에 참여하게 됐다. 팰러앨토에서 여러 개의 카메라로 말을 찍은 마이브리지는 이 사진들을 격자 형태로 정렬한 다음, 그것을 다시 촬영하여 수평 방향과 수.. 2019. 9. 3. 1908년 빌헬름 보링거「추상과 감정 이입」, 키르히너, 마르크, 루이스 ▲ 빌헬름 보링거가 「추상과 감정 이입」에서 추상미술을 세계에서의 후퇴로, 재현미술을 세계로의 개입으로 대조한다. 독일 표현주의와 영국 소용돌이파는 이렇게 상반된 심리 상태를 나름의 방식으로 형상화한다. 독일 표현주의자 프란츠 마르크(Franz Marc, 1880~1916)는 제1차 세계대전의 전선에서 다음과 같은 글을 남겼다.(그는 이곳에서 전사했다.) "나비 한 마리가 손바닥에 내려앉듯이 나는 이상한 생각에 사로잡혔다. 아주 오래전 사람들이 마치 우리의 분신인 것처럼 추상을 사랑했다는 생각에, 인류학 박물관의 눈에 띄지 않는 무수한 사물들이 매우 불편한 시선으로 우리를 바라본다. 전적으로 추상 의지의 산물인 것 같은 이런 사물들이 어떻게 만들어질 수 있었을까?" 이런 생각은 기이하지만 완전히 새로운 .. 2019. 9. 2. [인물] 거트루드 스타인 상위 중산층 유대계 미국인 가족의 막내로 태어난 작가 거트루드 스타인(Gertrude Stein, 1874~1946)은 유럽에서 유년기를, 오클랜드에서 청소년기를 보낸 후 하버드와 존스홉킨스 의대에서 수학했다. 거트루드가 1904~1905년 겨울에 파리에 있는 오빠 레오와 함께 지내는 동안, 남매는 1905년 앙데팡당전에서 마티스의 「모자를 쓴 여인」을 구입하면서 선진 회화를 수집하고 플뢰뤼스 거리에 있는 집에 미술가와 작가들을 초대해 교류하기 시작했다. 거트루드는 세잔에 대한 이해에 이어 모더니즘 구성이 내적 위계나 중심, 또는 "틀" 없이 균일한 강조점을 창조한다고 여겼고 "대상으로서의 대상"이 지닌 공평하게 중요하고 생생한 모든 측면을 포착하고자 했으며, "늘, 언제나, 반복의 찬가를 기록해야 한다.. 2019. 9. 1. 1907년 Pablo Picasso, 파블로 파카소「아비뇽의 아가씨들」 ▲ 양식적으로 일관성이 없고 원시적 충동이 드러난 「아비뇽의 아가씨들」을 통해 파블로 피카소는 미메시스적 재현에 가장 강력한 공격을 가하기 시작한다. 피카소의 「아비뇽의 아가씨들」(이하「아가씨들」)은 하나의 신화가 됐다. 이 작품은 선언이며, 싸움터고, 근대미술의 전조이다. 이 작품이 대표작이 될 것임을 분명히 인식한 피카소는 이 작품에 모든 생각, 모든 정력, 모든 지식을 쏟아부었다. 피카소가 '가장 공들인' 이 작품을 제작하면서 남긴 열여섯 권의 스케치북과 다양한 매체를 이용한 수많은 습작도 그에 합당한 관심을 받고 있다. 근대 회화 중에 가장 많은 논의가 이루어진 작품이지만 이후에는 현격히 관심이 줄어 활발한 논의가 뒤따르지 못했다. 사실 이 작품은 오랫동안 거의 알려지지 않은 채 남아 있었다. 심.. 2019. 8. 31. 이전 1 ··· 11 12 13 14 15 16 17 ··· 29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