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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0년 이후의 미술사(art since 1900) 책 공부114

1912년 입체주의 콜라주, 피카소, 시각과 언어, 기욤 아폴리네르, 말라르메 ▲ 상징주의 시, 대중문화의 부흥, 그리고 발칸 전쟁에 대한 사회주의의 저항 등, 서로 충돌하는 여러 상황과 사건들이 영감을 주는 가운데 입체주의 콜라주가 창안된다. 끊임없이 '새로움의 충격'을 보여 준 모더니즘은, 시에서는 1912년 여름 기욤 아폴리네르가 출간을 앞두고 있던 시집의 제목을 갑작스레 바꾸면서 표출됐다. 그는 '생명수/브랜드'라는 상징주의적인 제목을 좀 더 통속적이고 시류에 맞는 「알코올」로 바꾸고 서둘러 시집에 추가할 새로운 작품을 썼다. 이때 추가된 「지대」라는 시는 광고판이나 거리 표지에 나타난 언어유희를 찬양함으로써 모더니티가 아폴리네르에게 준 충격을 드러냈다. 그가 보낸 신호는 상징주의(특히 말라르메)가 신문 저널리즘과 시 사이에 세우고자 했던 바리케이드가 무너져 버렸음을 시사하.. 2019. 9. 7.
1911년 입체주의, 피카소, 브라크 ▲ 파블로 피카소가 '빌렸던' 이베리아 석조 두상을 원래 소장 기관인 루브르 박물관에 돌려준다. 원시주의 양식을 변화시킨 피카소는 조르주 브라크와 함께 분석적 입체주의를 전개한다. 분석의 등장 1911년 말엽 피카소의 예술 세계는 이베리아 조각에서 영감을 얻었던 원시주의로부터 엄청나게 멀어져 있었다. 1907년과 08년에 그가 모델로 삼은 이베리아 석조 두상과 아프리카 가면은 '왜곡'의 수단이었다. 이 '왜곡'이라는 말은 1929년 미술사학자 카를 아인슈타인이 입체주의의 전개를 이해하기 위해 사용한 용어였다. 그러나 아인슈타인은 이처럼 "극단적으로 단순화한" 왜곡이 "분석과 파편화의 시기를 거쳐 종합 시기"로 갔다고 서술했다. 또한 '분석'은 대상 표면의 파편화와 주변 공간의 통합에 적용한 용어이기도 하.. 2019. 9. 6.
1910년 앙리 마티스, 「춤 II」와 「음악」, '장식' ▲ 앙리 마티스의 「춤 II」와 「음악」이 파리 살롱 도톤에서 비난받는다. '장식' 개념을 극단으로 밀고 나간 이 작품들에서는 한눈에 파악하기 힘들 만큼 방대한 색면이 펼쳐진다. 눈을 멀게 하는 미학 「스페인 정물」은 시선을 집중시키기 어려운 작품이다. 관람자는 가지를 뻗어 나가는 아라베스크 무늬와 그 화려한 색채를 오래 쳐다볼 수 없다. 「생의 기쁨」에서도 그런 전조를 발견할 수 있지만 이 정물화는 정도가 심하다. 관람자는 화면 전체를 단번에 보고 싶은 유혹을 느끼지만 동시에 그에 대한 통제를 포기해야 한다는 사실, 즉 시선을 돌려야만 전체를 파악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이런 소란을 「음악」과 비교해보자. 얼핏 보기에 이 거대한 구성에서 보이는 침착성은 정물화의 들뜬 상태와 대조적이다. 그러나.. 2019. 9. 5.
1909년 미래주의, 마리네티, 움베르토 보치오니, 카를로 카라, 자코모 발라, 조르조 데 키리코 ▲ F. T. 마리네티가 최초의 미래주의 선언을 《르 피가로》 지 1면에 발표한다. 아방가르드는 처음으로 매체와 결합했으며, 스스로를 역사와 전통에 저항하는 것으로 정의한다. 1909년 2월 20일에 필리포 토마소 마리네티(Filippo Tommaso Marinetti, 1876~1944)는 최초의 미래주의 선언인 「미래주의 창립 선언」을 프랑스 신문 《르 피가로》에 발표했다. 미래주의의 공식적인 출범을 알리는 이 사건은 미래주의의 특성을 복합적으로 암시하는 것이었다. 첫째, 미래주의는 아방가르드와 대중문화가 연계하기를 원했다. 둘째, 이 사건은 대중문화 생산에 관련된 모든 기법과 전략들이 이제 아방가르드의 선전선동에 필수적인 요소가 될 것을 예견했다. 셋째, 미래주의가 테크놀로지의 선진 형식과 예술 창.. 2019. 9.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