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전체보기236 1914년 마르셀 뒤샹, 레디메이드 ▲ 마르셀 뒤샹은 입체주의와의 단절로서 레디메이드를 제안하며 상호 보완적인 방식으로 전통적인 미술 매체를 비판한다. 1912~14년은 아방가르드에 있어 중대한 시기였다. 추상이나 콜라주 같은 새로운 회화 제작 방식이 나타나 재현적인 회화와 단절을 꾀하고 구축이나 레디메이드와 같은 새로운 오브제 제작 방식은 구상적인 조각에 도전함으로써 인체에 대한 오래된 관심을 산업 재료와 상품에 대한 새로운 탐색으로 대체했다. 이런 전개 양상은 모더니즘 미술에 내재한 것이었지만 당시 진행됐던 미술 외적인 사건과도 무관하지 않았다. 타틀린이 만든 최초의 구축물은 1917년 러시아 혁명을, 그리고 마르셀 뒤샹이 만든 최초의 레디메이드는 20년대 상품 문화를 시기적으로 앞서 실현했다. 예술가가 없는 예술 작품 마르셀 뒤샹은 .. 2019. 9. 10. 1913년 초기 추상 정의와 논쟁, 로베르 들로네, 말레비치 ▲ 로베르 들로네(Robert Delaunay, 1895~1941)가 베를린에서 '창' 연작을 전시한다. 유럽 전역에서 초기 추상의 패러다임과 문제점이 구체적으로 그 모습을 드러낸다. 정의와 논쟁 대개 추상에 대한 표준적인 정의들은 이상화와 관련돼 있다. 옥스퍼드 영어사전에 의하면 형용사 '추상적인(abstract)'은 "물질로부터 분리된", "이상적인", "이론적인"을 의미하며 도사일 때는 "빼다", "없애다", "분리하다"를 뜻한다. 이런 의미들은 세계로부터 거리를 두며 이상적인 상태를 표현하고자 한 화가들에게는 적합했지만 물감과 캔버스의 물질성 혹은 실용적인 디자인의 세속적 성격을 강조한 화가들에게는 적합하지 않았다. 모더니즘 추상 내내 지속됐던 관념론과 유물론 사이의 대립은 '비대상적' 혹은 '순.. 2019. 9. 9. [인물] 기욤 아폴리네르 기욤 알베르 아폴리네르 드 코스토로비츠기(Guillaume Albert Apollinaire de Kostrowitzky, 1880~1918)는 폴란드 하급 귀족의 사생아로 태어나 프랑스 리비에라의 국제적이고 향락적인 분위기 속에서 자랐다. 열일곱 살 때 시인 폴 베를렌과 스테판 말라르메에게 깊은 감명을 받아 쓴 시와 기사를 실은 무정부주의적 상징주의 육필 '신문'을 만들기도 했다. 아폴리네르는 알프레드 자리와 앙드레 살몽이 활동 중이던 파리 아방가르드에 적극적으로 가담했고, 1903년에 피카소와 만났다. 그는 살몽, 막스 자코브 등과 함께 이른바 '피카소 패거리'를 조직했다. 1905년 예술 비평을 쓰기 시작한 이래 꾸준히 진보적인 회화를 지지했고 1913년에는 입체주의 화가들을 출판했으며 같은 해에 .. 2019. 9. 8. 1912년 입체주의 콜라주, 피카소, 시각과 언어, 기욤 아폴리네르, 말라르메 ▲ 상징주의 시, 대중문화의 부흥, 그리고 발칸 전쟁에 대한 사회주의의 저항 등, 서로 충돌하는 여러 상황과 사건들이 영감을 주는 가운데 입체주의 콜라주가 창안된다. 끊임없이 '새로움의 충격'을 보여 준 모더니즘은, 시에서는 1912년 여름 기욤 아폴리네르가 출간을 앞두고 있던 시집의 제목을 갑작스레 바꾸면서 표출됐다. 그는 '생명수/브랜드'라는 상징주의적인 제목을 좀 더 통속적이고 시류에 맞는 「알코올」로 바꾸고 서둘러 시집에 추가할 새로운 작품을 썼다. 이때 추가된 「지대」라는 시는 광고판이나 거리 표지에 나타난 언어유희를 찬양함으로써 모더니티가 아폴리네르에게 준 충격을 드러냈다. 그가 보낸 신호는 상징주의(특히 말라르메)가 신문 저널리즘과 시 사이에 세우고자 했던 바리케이드가 무너져 버렸음을 시사하.. 2019. 9. 7. 이전 1 ··· 37 38 39 40 41 42 43 ··· 59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