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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6년 야수주의, 앙리 마티스 Henri Matisse ▲ 폴 세잔이 프랑스 엑상프로방스에서 생을 마감한다. 세잔의 죽음과 1년 전 개최된 빈센트 반 고흐와 조르주 쇠라의 회고전을 계기로 후기인상주의가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야수주의가 그 뒤를 잇는다. 후기인상주의의 4인의 전도사 마티스는 네 명의 후기인상주의자들(반 고흐, 고갱, 쇠라, 세잔)의 화풍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그들 모두가 묘사의 기능에서 색채와 선을 분리시켜 그 고유의 가치와 표현적 기능을 강조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또 그는 회화의 기본 요소들이 이러한 자율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화학자처럼 그것들을 분리한 다음 새롭게 재조합하는 길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쇠라는 실험적인 방법을 동원하여 화가들이 결코 도달할 수 없었던 빛의 비물질성을 얻으려 했으나 역부족이었다. 그러나 그가 행한 분석 및.. 2019. 8. 29.
1903년 폴 고갱, 원시주의, 「올랭피아」,「청색 누드」,「죽음의 혼이 지켜본다」 ▲ 폴 고갱이 남태평양 마르키즈 제도에서 사망한다. 고갱 미술에서 보이는 부족 미술과 원시주의의 환상들이 앙드레 드랭, 앙리 마티스, 파블로 피카소, 에른스트 루트비히 키르히너의 초기 작업에 영향을 미친다. 19세기 후반의 네 명의 화가, 조르주 쇠라(Georges Seurat, 1859~1891), 폴 세잔(Paul Cézanne, 1893~1906),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 1853~1890), 폴 고갱(Paul Gauguin, 1848~1903)은 20세기 초 모더니즘 미술가들에게 깊은 영향을 미쳤다. 이들 모두는 회화의 새로운 순수성을 제안했지만 그 강조점은 각기 달랐다. 쇠라는 시각적 효과를, 세잔은 회화적 구조를, 반 고흐는 회화의 표현적인 차원을, 고갱은 회화의 영적.. 2019. 8. 28.
1900년b 앙리 마티스의 조각, 로댕 ▲ 앙리 마티스가 오귀스트 로댕의 파리 작업실을 방문하지만 선배 조각가의 양식을 거부한다. 앙리 마티스(Henri Matisse, 1869~1954)가 1900년 오귀스트 로댕(August Rodin, 1840~1917)의 작업실을 방문했을 때 이 60세의 노작가는 이미 거장으로 인정받고 있었다. 로댕은 지루한 아카데미풍 기념물과 상투적인 동상만 존재하던 지난 세기 이후 거의 빈사 상태에 이른 조각 분야를 소생시킨 유일한 조각가로서 오랫동안 명성을 누리고 있었다. 그의 명성은 대부분 대리석 작품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이 대리석 작품들은 아카데미 전통을 바꾸기보다는 오히려 지속시키는 것이었다. 반면 다소 혁신적인 작품들은 그의 작업실에 숨어 있었다. 외투에 싸여 있는 두꺼운 원기둥 같은 「발자크 동상」(근대.. 2019. 8. 27.
1900년a 프로이트, 클림트, 에곤 실레 ▲ 지그문트 프로이트가 「꿈의 해석」을 출간한다. 빈에서 구스타프 클림트, 에곤 실레, 오스카 코코슈카의 표현적인 미술이 정신분석학과 더불어 등장한다. 프로이트는 "억압된 본능적 충동의 분투를 그려내고자 했다."라는 점에서 빈의 미술을 바꾼 구스타프 클림트(Gustav Klimt, 1862~1918), 에곤 실레(Egon Schiele, 1890~1918), 오스카 코코슈카(Oskar Kokoschka, 1886~1980) 같은 대담한 혁신자들이 서로 연결되는 지점이다. 왜냐하면 이 화가들 역시 20세기 초, 억압된 본능과 무의식적 욕망의 해방적 표현을 통해 지옥을 휘저어 놓은 듯 보이기 때문이다. 고대, 이집트, 아시아 미술을 수집하는 보수적인 컬렉터였던 그는 모더니즘 미술가들에게 의혹을 품고 있었다... 2019. 8. 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