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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0년 이후의 미술사(art since 1900) 책 공부/1910년대 노트

1915년 카지미르 말레비치

by 책방의 먼지 2019. 9.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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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지미르 말레비치가 페트로그라드에서 열린 <0.10>전에 절대주의 캔버스를 출품하면서 러시아 미술과 문학의 형식주의 개념들이 한 곳에 모인다. 

 

러시아 형식주의의 개념들

러시아 형식주의라고 알려진 문학비평 학파의 양대 산실은 1916년 페트로그라드에서 설립된 '오포야즈'와 '모스크바언어학회'였다. 

오포야즈의 주요 회원인 빅토르 시클롭스키는 「장치로서 예술」(1917)에서 형식주의 문학 분석의 최초 개념 중 하나인 '낯설게 하기'를 체계화했다. 자움(이성에 도전하여 언어의 일반 법칙으로부터 단어를 해방시키려 했던 '초이성적' 언어) 시인들이 오랫동안 연구했던 '낯설게 하기'는 형식주의 비평가의 관점과 아방가르드 시인 및 화가들의 관점이 초기에 하나로 수렵된 지점을 가장 잘 드러낸다. 이들은 특히 언어의 개념을 정보를 주고받거나 설명, 또는 가르치는 도구와 같은 가장 기본적인 가치로 축소시키는 것에 공통으로 반대했다. 선례가 없었던 이들의 협업 작품들은 이런 공유된 신조에서 나왔다. 형식주의 비평가들은 자움 시의 가장 강력한 옹호자였으며 야콥슨과 시클롭스키는 말레비치의 절대주의의 열렬한 변호인들이었다. 이런 동반이 가능했던 것은 지각을 쇄신하는 예술의 힘에 있어 화가와 비평가의 역할이 똑같다는 신념이 있었기 때문이다. 형식주의 비평가에게 이것은 한 작가의 언어 사용이 우리의 일상적인 언어 사용과 어떻게 다른지, 상식적인 언어가 그 텍스트 안에서 어떻게 '낯설게 되는지'를 보여주는 것을 의미했다. 시클롭스키는 이와 같은 비판적 방식을 미학적 '장치'의 드러내기 방식이라고 불렀다. 화가에게 이것은 회화적 기호가 그 기호의 지시 대상을 그대로 보여 주지 않고 기호 고유의 존재를 갖고 있다는 사실, 즉 야콥슨의 말처럼 회화적 기호는 "손에 잡힐 듯이 지각될 수 있다."라는 사실을 관람자가 알 수 있게 하기 위한 '탈자동화'의 시각을 의미했다.  

 

말레비치의 절대주의, 회화의 영도

말레비치는 상징주의부터 인상주의, 후기인상주의, 입체주의 그리고 미래주의에 이르기까지 현대미술의 모든 '사조'를 빠른 속도로 독학한 후 회화의 한 지류로서 자움 회화를 창안하려 했다. 그는 먼저 종합적 입체주의의 콜라주 미학에서 간과됐던 특정한 측면, 즉 크기와 양식의 불일치에 관심을 가졌다.

말레비치는 그 당시 투쟁의 대상이었던 바로 그 개념, 회화의 모방 개념에서 가장 중요한 회화 언어의 투명성에 대한 관념을 극한으로 몰고 가게 될 두 가지 유형의 실험을 함으로써 그의 자움 단계를 마무리 지었다. 이 중 하나는 한 문장이나 제목을 그것이 지칭하는 사물들이 재현될 자리에 적어 넣는 것이었다. 드로잉의 수준을 결코 벗어나지 않은 이런 유명론적인 계획안으로는 종이에 "대로에서의 결투"라고 대충 써 넣고 테두리를 두른 작품 등이 있다. 이런 자움의 마지막 시도 중 두 번째는 1914년의 「모스크바 제1사단의 용사」에서 보는 것처럼 온도계나 우표 같은 실제의 사물들을 있는 그대로 콜라주하는 것인데, 이 작품에서는 그림 그 자체가 봉투로 바뀌었다. 두 경우 모두 (유명론적 명기 혹은 레디메이드 오브제)에서 동어반복이 반어적으로 강조된다. 다시 말해 순수하게 투명한 기호는 단어를 위한 단어, 대상을 위한 대상 그 자체를 지시하는 것이다. 

그러나 가장 눈에 띄는 점은 콜라주의 미학적 분열보다는 바로 말레비치의 「모스크바 제1사단의 용사」나 「모나리자가 있는 구성」(1914) 같은 작품에서 보이는 미분화된 큰 색면들이다. 「모나리자가 있는 구성」에서 유일한 구상적 요소는 붉은 색에 둘러싸인 레오나르도 그림의 복제 이미지인데, 말레비치가 절대주의라고 명명한 자신만의 추상을 탄생시킬 때 '분리'시킨 것이 바로 이 색면들이다. 절대주의의 토대가 다져진 것은 1915년 12월 페트로그라드에서 열린 <0.10> 전이다. '최후의 미래주의 회화전'이라는 부제는 열 명의 참가자가 모두가 '영도'의 의미, 환원할 수 없는 핵심, 회화나 조각에서 최소의 본질을 규정하려고 했던 사실에서 비롯됐다.

그리하여 말레비치는 그린버그보다 반세기 앞서 그 시대의 문화에서 회화의 '영도'의 조건은 평평하고 경계가 분명한 것이라고 단정 지었다. 이 중요한 환원법으로부터 말레비치가 강조하는 표면 질감의 특징과 회화의 팍튀르(facture)에 대한 관심이 발생한다. 사각형에 대한 그의 편애는 '사각형'과 '틀' 모두를 뜻하는 라틴어 단어가 입증하는 것처럼 경계를 만드는 가장 단순한 기하학적 행위에서 나온 결과였다. 또한 말레비치의 작업은 사각형의 형상과 회화의 배경 자체를 동일시하는 것에서(예를 들면 <0.10>전에서 말레비치의 작품 중 가장 높은 곳에 걸린 「검은 사각형」은 전통적인 러시아 가정에 있는 성상화의 배치를 패러디한 것이다.) 마이클 프리드가 1965년 프랭크 스텔라의 흑색 회화에 대해 쓴 글에서 "연역적 구조"라고 부르게 될 것에 대한 연구로 발전했다.(이 연역적 구조에서 도출된 형상들의 배치와 형태론 같은 회화 내부의 유기적 구조는 회화 지지체의 지표적 기호, 회화 지지체의 형상과 비례이다.) 말레비치의 1915년 「검은 십자가」, 「네 사각형」 그리고 <0.10>전에 출품된 다른 '비구성물들'은 지표적 회화였다. 다시 말해 회화 표면의 분할이었는데, 이 분할의 기준들은 칸딘스키의 추상 회화처럼 미술가의 '정신생활'이나 정서가 아니라, '영도'의 논리에 의해 결정된다. 그 기준은 회화의 물질적 기반 자체를 직접적으로 나타내지 않으면서도 자세하게 보여 준다. 

 

말레비치 「모스크바 제1사단의 용사 Warrior of the First Division, Moscow」 1914

 

색채 낯설게 하기

회화에서 비언어적이면서 불확실한 방식으로 의사소통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 중 하나는 안료가 가득 칠해진 분할되지 않는 평면들의 확장, 즉 색채였다. 색채에 대한 열정 덕분에 말레비치는 빠른 속도로 입체주의에서 추상으로 발전해 나갔다. 그는 자의적인 색채를 사용한 마티스의 '낯설게 하기' 전략에 열광했음에도 불구하고, 색채는 색채 고유의 발색 외에 주제의 한정에서 먼저 벗어나지 않으면 결코 '독립' 할 수 없고 그처럼 지각될 수도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런 '색채'를 탐구하려는 욕망, 색채의 '영도'를 보여 주려는 욕망때문에 말레비치는 연역적 구조를 다루지 않게 됐다. <0.10>전시장에서 「여성 농부: 절대주의」라는 반어적인 자움 제목(현재 '이차원으로 만든 여성 농부의 회화적 사실주의'라는 부재가 붙어 있다.)으로 전시됐던 「검은 사각형」 혹은 「붉은 사각형」 옆에는 흰 배경에 그려진 다양한 색채와 크기의 사각형 그림이 걸려 있었다. 이 회화들은 곧 말레비치가 훗날 "항공 절대주의"라고 부르게 되는 것으로 진행되며, 이처럼 결국 환영주의로 회귀하여 우주에서 지구를 본 것 같은 이미지를 직접적으로 암시한 점에 대해 말레비치는 스스로를 신랄하게 비판하게 된다.

 

말레비치 「붉은 사각형(이차원으로 만든 여성 농부의 회화적 사실주의) Red Square(Painterly Realism of a Peasant Woman in Two Dimensions)」 1915

 

영도 이후 

1917~18년에 이르러 10월 혁명의 이데올로기적 지침이 처음부터 혁명을 지지하던 유일한 예술 그룹인 러시아 아방가르드 예술가들에게 요구하는 바가 점점 늘어나자 말레비치는 자신의 회화 행위를 이데올로기적으로 정당화하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음을 깨달았다. 그가 회화와 결별했던 기간은 짧았지만 그 결별이 바로 20세기 미술의 경계적 경험 중 하나인 '영도'가 캔버스에서 실현되는 순간이었다. 문제가 되는 작품들은 '흰' 형태(더 정확하게 말해서 흰색과는 약간 다른 색)가 가시성의 문턱, 확장된 흰 캔버스에 조용히 나타난 작품들이다. 최소한의 색조 차이와 붓질의 감각적 흔적 외에는 아무것도 없지만 가끔 하얀 천장에 전시된 '흰색 위에 흰' 그림은 건축 공간 속으로 소멸되어 흰 사각형 자체가 될 수 있다는 잠재적 가능성을 강조했다.

 

말레비치 「절대주의 회화(백색 위에 백색) Suprematist Painting(White on White)」 1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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