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1900년 이후의 미술사(art since 1900) 책 공부/1960년대 노트

1965년 미니멀리즘 이론, 도널드 저드, 로버트 모리스

by 책방의 먼지 2019. 7. 16.
반응형

 

▲ 도널드 저드가 「특수한 사물을 발표한다. 저드와 로버트 모리스가 미니멀리즘 이론을 정립한다. 

 

초월성에 대한 거부

미니멀리즘 미술은 회화와 조각 사이에 다리를 놓는다는 것, 실제로 회화와 조각 사이의 구분을 없앴다는 진술이 1965년 「미술 연감」에 실린 저드의 글 「특수한 사물들」의 주된 내용이었다. (이 글은 당시 진행되던 작업들을 이론화하려는 첫 번째 시도였으며, 1966년 모리스의 「조각에 대한 노트」는 그 두 번째였다.) 프랭크 스텔라가 1961년부터 제작해 온 세이프트 캔버스나 중앙 집중식 줄무늬 캔버스를 두고, 강도가 어떻든 간에 숙명적인 환영 공간을 만들었던 과거의 회화가 이제는 널빤지가 되어 삼차원의 사물로 존재하기 시작했다고 보았다. "삼차원은 실재 공간이다. 그것은 환영주의와 즉물적 공간의 문제, 즉 회화적 흔적과 색으로 된 공간의 문제를 제거한다."라고 설명하면서 이것이 "유럽 미술에서 두드러지는 가장 못마땅한 유산들 중 하나를 제거하는 일"이라고 덧붙였다. 다른 문맥에서 그는 이 유산이 "이전에 구축된 체계, 즉 선험적인 체계에 근거한" 합리주의 철학과 연관되어 있다고 기술했다. 

작품의 경험보다는 단일한 형태에 대해 강조함으로써 작품을 구성하고 있는 모든 요소에 대한 느낌이 가려지게 했는데, 이것은 '선험적인 체계'에 대한 거부와 관계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저드가 보기에 선험적인 체계란 작품의 구성 요소들 간에 균형을 만들어 내고 그것들 사이에 구성적 관계를 산출한다는 점에서, 그 요소들 사이에 필연적으로 위계를 설정하게 된다. 따라서 저드는 작품 내의 요소들을 급진적으로 환원시켜 모든 요소가 작품의 단일한 형태와 자명하게 연결된 것처럼 보이도록 만들었다. 그리고 이를 통해 구성을 중지시키려 했고, 더 나아가 선험적인 것의 또 다른 측면, 즉 작품 제작 이전에 존재하는 아이디어나 의도를 제거함으로써 작품 제작 동기나 핵심이 사물 안에 놓여 있는 것으로 보이게 했다. 따라서 환영주의를 근절한다는 것은 제작의 동기, 즉 제작된 사물이 담고 있거나 표현하는 존재 이유라는 관념을 제거하는 일에 다름 아니었다. 이것이 바로 모리스가 말한 "초월성과 영적인 가치, 영웅적인 스케일, 고뇌에 찬 결정 등에 대한 거부"를 염두에 두면서 저드가 의미했던 것이다. 또한 이것은 그가 '합리주의'와 추상표현주의적 '숭고'를 동시에 거부한 이유였다. 

 

도날드 저드, 「무제(홈 파인 상자)Untitled (box with trough)」, 1963

 

작가의 죽음

60년대 중후반 미술계 내부에는 기존 미학적 경험의 요소들을 대체할 수 있는 두 가지 의미 모델이 등장했다.

하나는 비트겐슈타인의 후기 철학 저작들과 관련된 것으로서, 50년대 후반과 60년대 초반에 모든 단어의 의미는 그것의 '사용'에 달렸다고 주장했던 재스퍼 존스에 의해 이미 선포된 것이었다. 이것은 두가지 결론을 이끄는데, 첫째로 단어의 의미는 플라톤이 생각하는 천상의 이데아처럼 신성하고 절대적인 정의를 지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적용하는 맥락 속에서 더럽혀지고 애매하게 된다는 것이다. 둘째는 우리가 말하는 단어는 그것을 말하기 전에 우리의 머릿속에 있던 의도("이것이 내가 의미했던 것이다.")에 의해 의미가 고정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과 단어를 교환하는 공적 공간 속에서 의미를 띠게 된다는 것이다. 미술사학자가 쓴 최초의 분석적인 글 가운데 하나인 「ABC 미술」(1965)에서 바버라 로즈는 미니멀리즘을 논하면서 비트겐슈타인의 언어 개념이 갖는 중요성을 강조했는데, 그 이유는 모리스와 저드의 작품이 관람자의 경험 맥락에 모든 것을 내맡기는 방식이기 때문이었다. 

메를로-퐁티의 「지각의 현상학」은 맥락으로서 의미, 보다 정확히 말하면 세계 속으로 신체를 담금으로써 의미가 산출된다는 의미의 두 번째 중요한 모델을 만들어 냈다. 이 모델은 모리스의 'L자형 빔'이나 저드가 70년대 초에 제작 하기 시작한 합판 상자들에서 잘 드러나는데, 이들 작품은 움직이는 관람자의 시각적 궤적을 내제화하고 그로 인해 더욱더 적나라하게 그 궤적에 의존하는 듯하다. 

사용으로서의 의미든 신체를 그 공간적 지평에 접속함으로써 얻어지는 의미든 두 모델은 내부에서 나온다거나 선험성이 의미 작용을 고정시킨다는 생각을 거부하는 동시에, 작가라는 전통적인 개념에 대한 포괄적 함축을 갖는다. 

로버트 모리스, 「무제(세개의 L-자형빔) Untitled(Three L-beam)」,1965~66

 

미니멀리스트들의 다양한 작업을 통해 '작가'의 축출이란 개념이 강화됐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작품의 제작 방식을 탈개성화하는 것이었다. 1960년대 후반에 다른 사람들이 작품을 제작하는 일은 어느 때보다도 체계적으로 진행됐는데, 이와 같은 생산 방식은 '아우라'의 마지막 찌꺼기까지도 몰아내기 위한 하나의 수단으로 착안됐기 때문이다. 산업적인 제조 방식은 작품이 대량으로 제작될 수 있음을 보증하는 동시에 극도로 탈개성화 된 작품 제작 방식을 확보할 수 있게 했다. 복수로 제작된 작품들이기에 어떤 것도 다른 것보다 '원본적'이라고 주장할 수 없게 됐다.

이 반작가적 작업의 두 번째 방식은 단순히 규격화된 재료를 사용하는 것에서 더 나아가 레디메이드라는 극한까지 밀어붙여 상점에서 구입한 단위들로 오브제를 만드는 것이었다. 댄 플래빈은 형광등을 가지고 이 방식을 따랐는데, 그는 형광등을 두 겹에서 네 겹으로 해서 '기념비'연작을 제작했다. 칼 안드레는 《기초적 구조들》전에 내화 벽돌을 121.92미터에 걸쳐 일렬로 늘어놓는 「레버(Lever)」라는 작품을 설치했다. 안드레가 벽돌과 금속판으로 추구했던 바닥 조립물의 완전히 집합적인 성격을 고려할 때, 그의 작품은 '구성'이란 생각을 극단적으로 드러냄으로써 그것이 저드가 말했던 것과 같은 예, 즉 "단지 하나 다음에 또 하나"에 불과한 구조일 수 있음을 보여 주었다. 

 

댄 플래빈, 「v.타틀린을 위한 기념비(Monument for V. Tatlin)」, 1964
Carl Andre, 「레버(Lever)」, 1966

 

"현재성은 은총이다."

1967년 여름 《아트포럼》특별호에서 마이클 프리드는 「미술과 사물성」에서 미니멀리즘에 대한 배후 공격에 착수한다. 그는 미니멀리즘 작품의 결정적인 효과가 주위의 환경에 가담하고 작품의 실존이 유지되는 실재 시간을 포함하는 것이라는 점, 즉 "단지 하나 다음에 또 다른 하나"라는 구조가 공간적일 뿐만 아니라 시간적이라는 점에는 동의했다. 하지만 그는 바로 이런 사물의 그 새로운 실재 공간 속에서 만들어 내는 무대의 현전, 즉 관람자에 대해 계속해서 어떤 효과를 생산하고 있는 배우 같다는 주장, 따라서 미니멀리즘의 경험은 본질적으로 연극적이라고 보았다. 게다가 이 연극성이 작품을 그 주위 환경에 참여하게 해야 한다는 주장의 결과라면, 그것은 모더니즘의 논리가 이전에 근거를 두고 있던 예술의 특수한 매체들 사이의 구분을 붕괴시키려는 욕망과 연관되어 있다고 역설했다. 왜냐하면 연극은 19세기 후반 리하르트 바그너에서 20세기의 에르빈 피스카토르에 이르기까지 혼합된 매체의 완성이자 모든 개별적인 예술들의 용광로로서, 혹은 바그너가 총체예술이라 불렀던 것으로서 받아들여져 왔기 때문이다. 

프리드는 개별예술들 사이의 경계 붕괴는 예술과 즉물적인 것, 혹은 예술과 일상적인 것 사이의 모든 구분이 완전히 제거됐음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왜냐하면 예술은 단지 내 앞에 놓인 어떤 것의 기능이 아니라, 오히려 미학적 경험의 한 순간의 기능이기 때문이다. 즉 이런 미학적 경험의 순간은 실재의 공간이나 시간 속에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한 작품이 그 의미로 가득 채워지게 되는 계시의 순간이다. 이런 효과에 대해 프리드는 "현재성(presentness)"이란 용어를 제시했고, 그것을 즉물주의적 사물의 '현전(presence)'과 대립시켰다. 

 


▶관련글: 모리스 메를로-퐁티

▶관련글: 1962년c 댄 플래빈, 칼 안드레, 솔 르윗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