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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0년 이후의 미술사(art since 1900) 책 공부/1960년대 노트

1961년 앨런 캐프로, 클래스 올덴버그, 미술 시장

by 책방의 먼지 2019. 7.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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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에 클래스 올덴버그가 뉴욕 이스트 빌리지에 「가게」를 연다. 「가게」는 하나의 '환경'으로서 주위에 널린 저렴한 가게들의 진열 방식을 흉내 냈으며, 모든 품목은 판매를 위한 것이었다. 겨울부터 이듬해 봄까지 10개의 다양한 해프닝이 「가게」 부지에 위치한 올덴버그의 레이 건 극장에서 수행된다. 

 

앨런 캐프로(Allan Kaprow, 1927~)의 에세이 「잭슨 폴락의 유산」이 《아트뉴스》 1958년 10월호에 발표됐다. 

" ······ 오늘날의 젊은 예술가들은 더 이상 '나는 화가다' 또는 '시인이다', '무용가다'라고 말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 그들은 그저 '예술가'다. 모든 삶이 그들에게 열려 있다. 그들은 평범한 사물로부터 평범함의 의미를 발견해 낼 것이다. 그들은 평범한 사물을 특별하게 만들려고 노력하지 않을 것이며, 단지 그것들의 실재적 의미를 진술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무로부터 특별함을 고안해 낼 것이며, 심지어 무의 의미도 고안해 낼 것이다. 사람들은 기뻐하거나 무서워할 것이며, 비평가들은 혼란을 느끼거나 즐거워할 것이다. 그러나 확신컨대, 그들은 1960년대의 연금술사가 될 것이다."

캐프로의 선견지명은 경탄할 만한 것이다. 60년대에 나온 많은 아방가르드 예술이 캐프로의 예언을 실현하고 있다. 캐프로 자신의 예술, 특히 '해프닝'이라는 이름으로 그가 당시 창안하는 중이었던 형식의 3가지 요소를 살펴보자면, 첫째 요소는 예술을 위한 새로운 포괄적인 재료로서 세계 전반(세계의 다종다양한 대상들, 특히 세계의 폐기물뿐만 아니라 또한 시간 속에서 펼쳐지는 사건들까지도)을 사용할 수 있는 가능성이다. 둘째 요소는 모든 위계와 가치 체계의 와해다. 셋째 요소는 매체 특정성의 제거, 그리고 한꺼번에 미학적 영역으로 포함된 모든 영역의 지각이다. 

앨런 캐프로, 「마당 Yard」, 1961년

 

싸구려 가게를 위한 예술

클래스 올덴버그(Claes Oldenburg, 1929~)는 우리의 미술 소비를 장악하고 있는 시장 권력의 문제를 전면에 내세웠다. 「가게」의 실현은 부분적으로 1961년 5~6월 마타 잭슨 갤러리에서 열린 단체전을 통해 이루어졌지만, 그해 12월이 돼서야 이스트세컨드 거리 107번지에 그의 '레이 건 제조 회사'의 판매점을 열었다. 그 거리는 저렴한 상품이나 중고 상품을 판매하는 '싸구려 가게'가 즐비한 맨해튼의 한 구역이었다. 대량 소비되는 식품이나 자잘한 물건들의 복제물들로 가득 채워져 있는 올덴버그의 「가게」는 이웃한 가게들과 유사했다. 부풀려진 크기로 석고 헝겊으로 만들어지거나 널찍한 붓놀림으로 번쩍거리는 색채로 꼴사납게 칠해진(추상표현주의를 공공연하게 패러디하면서) 구운 감자, 소시지, 아이스크림 콘, 푸른 셔츠 들은 결코 실재 사물로 착각하도록 만들어진 것이 아니었다.(가격도 가장 덜 알려진 갤러리에서조차 미술 작품에 대해 붙이는 가격보다도 더 들쭉날쭉하게 매겨졌다. 20달러짜리에서부터 800달러가 넘는 것까지 있었다.) 오히려 그것들의 목적은 고상한 예술 상거래와 싸구려 가게의 매매 사이에 어떠한 근본적인 차이도 존재하지 않으며, 예술 작품이나 잡화나 모두 단지 상품일 뿐이므로 겉치레를 벗어던지고 사태를 직시하는 편이 낫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었다. 상품으로써의 미술 작품의 지위는 그것의 교환 가능성에 의존하고 있다는 사실을 이해한 미술 제도가 단순한 시장일 뿐이라는 올덴버그의 공격이다.

 그의 연상 작용의 연쇄가 경제적 분석으로 이어지기는 힘들 것이다. 결국 올덴버그는 그의 복제물들이 예술로서 시장에 던저져 사치스러운 상품이 향유하는 특별한 대우를 받게 되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정신분석학에 대한 그의 지속적인 관심과 결합된 그 패러디의 추진력을 통해 다음 단계로 나아가 꾸준히 작업해왔다. 바로 1963년 9~10월 그린 갤러리에서 열린 다음 개인전에서 처음으로 바닥에 누운 거대한 규모의 '부드러운'오브제 작품인 「바닥_버거」, 「바닥-콘」,「바닥-케이크」등의 작품을 선보였다. 이런 가짜 식용 품목의 불가피한 에로티시즘(그리고 이에 뒤따르는 「부드러운 변기」처럼 배설물에 가장 밀접하게 관련된 오브제들의 에로티시즘)을 통해, 올덴버그는 그의 편재하는 은유적 구조로 미국 대중문화를 겨냥했다. 그런 과정에서 올덴버그는 미국 대중문화가 소비에 고착된 것이 공공연한 비밀이라면, 그것의 은밀한 비밀은 신체에 대한 강박이라고 주장해왔다.   

 

클래스 올덴버그, 「가게 The sotre」, 1961년

 

클래스 올덴버그, 「바닥-햄버거 Floor-Burger」, 1963년
클래스 올덴버그, 「부드러운 변기 Soft Toilet」, 196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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