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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0년 이후의 미술사(art since 1900) 책 공부/1960년대 노트

1963년 게오르크 바젤리츠

by 책방의 먼지 2019. 7.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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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오르크 바젤리츠가 오이겐 쇠네베크와 함께 두 개의 선언문을 발표한 후, 베를린에서 「수포로 돌아간 위대한 밤」을 전시한다.

 

사회주의 리얼리즘에서 타시즘으로

1962년 바젤리츠의 작품은 구상미술의 장인적 제작을 미술의 일차적 정의로 보는 과거의 관념을 그대로 이어갈 뿐만 아니라 미술 작업이 지역적, 지방적, 국가적인 것에 뿌리를 내리고 있어야 한다는 점을 지속적으로 주장한 '새로운' 회화 미학을 만들어 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이를 통해 그의 작품은 문화적 가치들 간의 위계를 정립하고, 독일 전후 재건 문화의 기초로서 전통적인 국가 정체성이 계속해서 유효함을 웅변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리히터와 폴케의 작업은 회화적 재현이 대중 매체의 이미지 생산과 문화 산업의 기구들 바깥에서는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통해 장인적 기술의 우위에 도전했다. 따라서 회화는 그 자체로 일반적인 정체성과 문화적 연속성의 담지자로서의 지위로부터 물러났다. 회화는 이제 사실 묘사의 다양한 전통적 관례들, 그리고 국민 국가의 문화적 이데올로기에 의해 오염되지 않은 동시에 테크놀로지들이 교차하는 지점에 놓인 혼성적인 것으로서 위치 지워졌다. 회화는 또한 전통 이후의 정체성 형성이 독일의 전후 문화적 실천을 위한 필수적인 요소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게 됐다. 

 

구상을 손상시키기

바젤리츠의 도상학은 주의 깊은 독해를 필요로 한다. 왜냐하면 그의 도상학은 금지를 강요하는 일(추상에 대한 금지 또는 사진적인 매개에 대한 금지 같은)과 위반을 일삼는 일(예를 들면 보다 깊고 진정한 독일 회화 역사의 근원이라 여겨지는 것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욕망, 또는 소비문화에 대한 사진적인 이미지에 의해서 매개된 억압적인 기억 상실의 문화가 지닌 가식을 붕괴시키려는 욕망) 사이에 교묘하게 걸쳐 있기 때문이다. 

 

인물 형상으로의 갑작스러운 회귀와 사실적 재현에 대한 형식적인 도전 사이에서 그 형상이 끊임없이 사라지게 되는 이와 같은 애매모호함에 대해, 바젤리츠는 종국적으로는 넘어설 수도 없거니와 자신의 주관적인 야심의 층위를 넘어서 존재하는 모더니즘의 회화적 문제라고 보았다. 이 모호함이 바젤리츠가 전후 독일 미학에 자기 방식으로 공헌한 부분이다. 

바젤리츠와 쇠네베크가 자신들의 두 「아비규환 선언문」에서 재발견한 것은 낭만주의적인 아웃사이더 전통이었다. 이 선언문들은 의사소통이 미학적 불투명성 속에서 거부되고 봉쇄되며, 다른 것들과는 근본적으로 공유될 수 없는 순수한 차이의 공간으로 나아가길 주장했다. 미술사적으로 보자면, 그들이 미술가의 지위를 아웃사이더로 설정한 것은 다양한 유산들, 그중에서도 나치가 바이마르의 근대성을 파괴해 버림으로써 독일 역사로부터 삭제됐던 유산들을 복원하는 일과 관련이 있었다.  

 

누더기를 걸친 주체들

이런 관점에서 회화에 대한 바젤리츠의 접근법에 내부적으로 모순이 있다면, 그것은 20세기 후기의 문화 전반, 특히 전후 독일 회화에서 나타난 갈등을 해결하려는 역사적으로 지나치게 확고한 시도였기 때문이라는 것이 명백해진다. 무엇보다도 그가 미술가를 아웃사이더로서 심지어 죄를 범한 추방자로서 보았던 니체의 주장을 다시금 부활시킨 까닭은 그가 보기에 허울뿐이고 주로 보상적인 성격을 지닌 전후 독일의 민주주의 체제의 구축에 반대하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민주주의적 위선에 반대하는 미학적 태도는 우익의 반동적인 엘리트주의를 다시금 부활시켰고, 결국 민주주의의 일상의 기만성과 허위를 혐오했던 전후 서독의 초기 파시스트적 태도로 이어졌다. 

 

미술가를 '영웅'으로 그러나 누더기를 걸친 영웅으로 다시 위치 지움으로써 바젤리츠가 의도한 것은 구상 회화를 갱신하는 일이 역사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증거 앞에서 그 어려움을 넘어서려 한 것만이 아니었다. 그는 또한 과거의 자아를 스스로 계획적으로 파괴하는 상황 속에서, 그리고 다른 많은 사람에게 안겨 준 파멸에 대한 최근의 기억 속에서 독일의 주체성을 재설정하려는 야심 찬 시도를 통해 조금씩 새로운 주체를 구성하려는 것이었다. 

 

게오르크 바젤리츠, 「위대한 친구들 Die grossen Freunde」, 196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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