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이한 추상》전이 뉴욕에서 열린다. 여기서 루이즈 부르주아, 에바 헤세, 쿠사미 야요이 등의 작품이 미니멀리즘 조각 언어에 대한 표현적인 대안을 제시한다.
루이즈 부르주아(Louise Bourgeois, 1911~)는 어렸을 때부터 태피스트리를 복원하는 가업을 도왔다. 손상된 형상들을 수선하는 이 일은 그녀의 인격 형성에 영향을 끼쳤을지 모른다. 왜냐하면 이후 그녀의 미술은 손상과 수선을 연상시키는 것들 사이에서 동요하기 때문이다. 그녀의 설명에 따르면 이 동요의 핵심은 집 안에 정부를 들여놓음으로써 가정을 깨뜨린 그녀의 아버지가 있었다.
초기 부르주아는 초현실주의의 영향을 받은 작품을 제작하였고 그녀 특유의 양식을 60년대 초에 들어서야 나타나기 시작했다. 당시 그녀는 석고, 라텍스, 직물 등으로 신체의 부분들을 연상시키는 추상적 형상을 만들었다. 대개의 경우 강렬한 환상이나 공격적인 충동에 의해 만들어진 듯 보이는 이 신체의 부분들은 정신분석학자들이 "부분-대상"이라 부르는 것 즉 충동에 의해 도려 내어진 가슴처럼 특별한 대상인 신체의 부분들을 암시한다. 1966년 부르주아는 「응시 Le Regard」를 제작했는데, 나중에 페미니즘 미술에서 중점적으로 다뤄진 이 주제에 대해 당시 미술가들은 뒤샹의 「주어진」을 빼고는 거의 관심이 없었다. ▶ 관련글: 마르셀 뒤샹, 「주어진」
「응시」는 상처받기 쉬움과 공격성을 동시에 암시하는데, 이 모순적인 것의 병존은 부르주아 작품 대부분의 전형을 이룬다. 미술사학자 미뇽 닉슨이 시사했듯이 「응시」는 성기-눈이라는 모티프를 여성 주체의 입장에서 재가공함으로써 초현실주의자들의 '남극적 응시'를 난처하게 만드는 방식을 취한다.
부르주아는 「소녀」에서 성적 물신숭배의 대상으로서 초현실주의적 오브제를 다시 비튼다. 이 작품은 철사줄로 걸려 있을 때(주로 이렇게 전시된다) 증오의 대상, 즉 거세된 생식기처럼 보인다. 그러나 품에 안겨 있을 때에는 사랑의 대상, 즉 어머니 품에 안긴 아이로 보인다.
여성은 남근의 결핍을 아이의 획득으로 보상받으려 한다고 프로이트는 말했다. 그러나 이 「소녀」는 단순한 물신숭배의 대상이거나 남근-대체물이 아니라, 오히려 그 자체로 하나의 인격체이다. 이렇게 볼 때 「소녀」는 대담한 제스처가 된다. 즉 「응시」가 남성적 응시에 대한 페미니즘적 패러디라면 「소녀」는 상징적인 남근에 대한 페미니즘적 차용이다.
강박적인 반복
쿠사마 야요이(1929~)는 다른 방향에서 가부장제 사회의 은신처에 다가갔다. 그녀는 부르주아처럼 남근을 포획한 것이 아니라 그것을 번식시킴으로써 조롱했고 "터트림/팝아트로 만듦"으로써 부풀려 나갔다. 남근 형상의 반복은 단순히 모양을 패러디했을 뿐만 아니라 그 수직적인 형상을 다른 남근들로 된 수평적 배경 속에 흩어지게 했다. 형상과 배경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위장에 대한 관심을 드러내기 위해 쿠사마는 붉은색 물방울 무늬를 사용하기도 했다.
형상과 배경이라는 구분을 없애는 일은 거울을 사용함으로써 더욱 강화했다. 그 첫번째 예는 「무한 거울방-남근 밭」으로 여기서 남근 형상의 물체 물방울 무늬 그리고 여느 사진에서처럼 그녀의 신체는 무한하게 반복된다.
이후 그녀의 환경 작업은 더욱 착란적인 팝이 됐는데 대개 빛과 소리로 채워졌으며 사이키델릭 문화가 실험되기도 했다. 이런 점에서 비평가들은 그녀의 노출증적인 태도에 대해 판에 박힌 비판을 해 댔다. 그러나 역설적인 점은 그녀 작품의 자기-노출이 한편으로는 자신을 제물로 바치는 자기-희생의 연극으로 보일 수 있다는 점이다.
기이한 추상
에바 헤세(Eva Hesse, 1936~1970)의 조각은 부르주아의 조각처럼 확신에 차 있거나 쿠사마의 경우처럼 산만하지도 않다. 그러나 그녀의 조각은 형식적인 면에서 더욱 혁신적인 것이었고, 뇌종양으로 서른넷이란 이른 나이에 사망했음에도 불구하고 미술사적으로 더욱 영향력이 있었다. 그것은 부분적으로 그녀의 조각이 신체(보다 정확히 말하면 신체가 접촉하는 물질적인 대상들로 이뤄진 세계 전체)를 상상하게 만드는 지시적인 측면을 갖고 있기보다는 환상이나 욕망, 충동에 의해 관람자를 불안하게 만드는 힘이 있기 때문이다. 그녀의 작업은 주로 그녀의 파란만장한 생애(유대인인 그녀의 가족은 나치에게 내몰렸으며, 그녀의 어머니는 자살했다.) 그리고 여성성 그 자체와 관련되어 논의됐다.
「되풀이」를 미뇽 닉슨은 제목이 수저시키기, 발아시키기, 씨 뿌리기 등과 같이 양성성을 연상시킨다는 사실에 주목했는데 이 용어들은 그 대상과 젠더에 대한 아니 부분이든 전체든 간에 신체에 대한 관습적인 이미지들 사이의 모호한 관계를 강조한 것이었다. 헤세는 형태를 뒤섞고 관람자에게 대립되는 감정을 노골적으로 불러일으키는 것을 즐긴다. 이는 카메라 앞에서 자신의 작품들과 함께 그녀가 취하는 장난스러운 포즈로도 알 수 있다. (이것은 부르주아와 쿠사마에게도 해당되며 공통적으로 취하는 수행적인 전략이다.) 또한 헤세는 신체적인 것, 심지어 내장의 연상물을 고집하는 전략을 통해 포스트 미니멀리즘의 미학적 영역을 교란시키고 나아가 대상을 닮은 오브제로 미니멀리즘의 미학적 영역마저 붕괴시켰다.
이들 작품에서 결정적인 요소는 "당시 미술 언어들이 지닌 명백한 내향성"(와그너)이다. 헤세는 이 내향성을 사용해 당시의 미술 언어들을 효과적으로 변형시켰다. 끈적한 육체의 연상물들을 이들 언어가 지닌 명료한 개념적인 전제들 속으로 가져간 동시에 이 언어는 자굼을 "순수하게 개인적인 의미의 영역"에서 멀어지게 만들었다. 와그너는 " 이 작품은 몸체 그 자체로는 즉물적이지만 동시에 즉물성이라는 관념 자체를 파열시킨다. 그것은 반복과 변형의 구조를 지닌 언어와 같은 특성들을 고집하지만 동시에 그 특성들을 신체적인 세계를 연상시키는 데 사용했다. 그 조각은 구조와 지시가 상호 교차하는 지점 어딘가에 놓여 있다." 이것이 바로 '기이한 추상'이다. 그리고 당시 어떤 미술에서도 주지 못했던 이런 감동은 오늘날까지도 지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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