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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0년 이후의 미술사(art since 1900) 책 공부/1960년대 노트

1966년a 마르셀 뒤샹, 「주어진」

by 책방의 먼지 2019. 7.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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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셀 뒤샹이 필라델피아 미술관에 「주어진」 설치를 완성한다. 점점 커져 가던 젊은 예술가들에 대한 그의 영향력은 사후에 공개된 이 새로운 작품과 더불어 절정에 이른다.

1960년 제스퍼 존스는 "뒤샹과 더불어 언어는 가장 강력한 것으로 등장하게 된다..... 뒤샹의 「큰 유리」는 그가 작품을 시각적이거나 감각적인 것이 아닌, 하나의 지적 경험으로 사고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라고 썼다.

 

핍쇼

작품 제작을 위한 이 세 개의 '패러다임' 혹은 모델은 60년대 초반 미국의 문맥에 확실히 정착했다. 레디메이드는 도처에 널려 있었고 개념상 팝아트의 보호막을 형성했을 뿐만 아니라 플럭서스의 작업에도 철저히 스며들었다. 지표는 존스의 작품에 계속해서 나타났고 로버트 모리스와 브루스 나우먼이 제작한 신체 주형물에도 나타났다. 지표는 커다란 네트워크를 이루는 '자취들'로 확산됐고 덧붙여 플럭서스의 우연에 대한 강박에서도 발견된다. 언어 모델은 60년대 말 무렵에는 개념미술로 발전했다. 

이 세 가지 패러다임이 새로운 지위를 획득해 감에 따라 입체주의 콜라주의 입지는 점점 더 취약해졌다. 다시 말해 콜라주는 제2차 세계대전 이전에조차도 그것이 일부를 이뤘던 광고와 여타의 대중매체 형식들을 냉소적으로 와전한 언어에 지나지 않았다. 

마르셀 뒤샹, 「주어진:1. 폭포 2. 점등된 가스등」, 1964~66

그러나 뒤샹은 이런 자신의 '강력한 영향력'에 대해 부인했는데 지난 20년에 걸쳐 비밀리에 제작했고 1960년에 완성한 작품 「주어진:1. 폭포 2. 점등된 가스등」을 통해서였다. 이 작품은 놀랍도록 사실주의적인 디오라마가 제시되고 있었고 그 디오라마는 상상의 여지를 남기지 않는 하나의 에로틱한 노출이었다. 

 

마르셀 뒤샹, 「주어진:1. 폭포 2. 점등된 가스등」, 1964~66

또한 이제껏 그의 미술이 전통적 기법으로부터 탈숙련화된 레디메이드의 자동기술법으로 무게 중심을 옮기는 작업으로 여겨졌다면, 여기서는 숙련된 수작업이 개재되어 있다. 그리고 사진을 구조적이고 절차적인 요소로 활용함으로써 지표의 작용을 드러내 왔지만 여기서는 시뮬라크라를 향한 하나의 충동으로서만 그 모습을 드러내며 복제물이 현실 그 자체를 대체한다.  

 

계몽주의의 한 기능인 미학적 경험이라는 것은 어떤 것의 아름다움('예술'이라 불릴 가치가 있는)에 대한 판단 원칙에 근거하고 있다. 그 아름다움에 대한 판단은 마치 모든 사람을 위한 따라서 "보편적 목소리"로 언명되는 듯하다. 칸트가 <판단력 비판>(1790)에서 그런 경험을 이론화했다면, 19세기 등장했던 대형 미술관들은 그 경험을 제도적인 것으로 만들었다. 이 미술 컬렉션의 방대한 창고는 그 경험을 일상생활로부터 유리시킴으로써 미적 영역의 자율성(즉 유용성 혹은 지식의 수준에 무관한 "이해관계"로부터의 탈피)은 물론 그 공공적 측면을 내세웠다. 미술관은 특수한 집단적 경험의 장소가 됐다.

뒤샹의 「주어진」은 바로 이런 공유된 경험이라는 공공적 성격을 거스르며 뒤틀린 방식으로 감춰져 있다.  한 번에 오직 한 명의 관람자에게만 자신의 모습을 드러낸다. 관람자는 에로틱한 장면이 벌어지는 곳을 엿보려고 핍홀에 달라붙어 있는 동안 그 또한 뒤에서 자신을 보는 누군가의 시선에 노출되지 않을 수 없다는 사실을 인식하게 된다. 이런 시각적 경험에는 언제나 '들킨' 상태가 잠재되어 있으므로, 판단 대상과 연결되기 위해서는 그 시각적 경험을 하는 신체를 결코 초월할 수 없다. 

 

들킨

계몽주의의 부산물로서 '모더니즘 회화'의 입장은 다른 감각들로부터 시각을 특권화함으로써 시각 예술의 특수성을 이해하도록 강요하며 예술의 자율성이라는 개념, 그리고 그 무사심성을 순수하게 시각적인 것의 가능성에 연결시켜 왔다. 즉 '시각성'에 초점을 맞춤으로써 회화는 다른 예술과 구분되는 고유성을 인식하게 된다. 

'시각성'이 무사심성의 척도였고 또한 기념비적 크기로 자신을 드러내는 색면회화의 그 크기가 그것을 바라보는 집합적 장소를 보증하는 것이었다면, 「주어진」은 관람자를 두 번 이상 세속화시킴으로써 이런 무사심성의 보증을 무효화한다. 

롤랑 바르트가 강조해 설명하듯 계몽주의는 부르주아 권력을 공고히 하기 위해 권력을 하나의 역사적 사실로 사라지도록 하는 대신 자연의 질서로 재등장하게 만듦으로써 "보편적인 것"이라는 개념을 이론화했다. 이런 '보편성'의 가면을 벗겨 내고 그것을 역사적이고 우연한 것으로 노출시키는 행위는 모더니즘 역사를 통해 다양한 방식으로 이뤄져 왔다. 유화 매체를 부자연스러운 것으로 만들었던 콜라주부터 예술 조건의 관습적 사회적 측면을 주장했던 레디메이드에 이르기까지 말이다. 그러나 「주어진」은 1917년 「샘」을 둘러싼 사회적 틀(공인된 전시장소, 그것을 판단하고 수용하는 과정에 있어서의 합법화 문화)이 실제로는 작품이 예술로서 '되는' 것임을 노출시켰던 그 소변기에서 한 발짝 더 나아가고 있다. 왜냐하면 「주어진」은 미술관(탈육화 된 무사심성이라는 가치의 공적인 수호자)의 핵심에 자리잡음으로써 미학 체계의 단층선을 따라 자신의 논리를 퍼붓는 동시에 그 체계를 조건 짓는 틀이 그저 '기이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부각시키기 때문이다.  

미술의 장소로서의 미술관에 초점을 두는 '제도 비판'은 벨기에의 마르셀 브로타스의 작품으로부터 파리의 다니엘 뷔랭 미국의 마이클 애셔와 한스 하케의 작업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그러나 「주어진」은 스스로 미술관이라는 그 요새 안에 놓임으로써 미학적 패러다임의 폐부를 찌르고 비판하며 탈신비화하고 해체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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