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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0년 이후의 미술사(art since 1900) 책 공부/1970년대 노트

1977년 포스트모더니즘적 그림(picture)

by 책방의 먼지 2019. 7.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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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들》전이 차용의 전략과 독창성 비판을 통해 미술에 '포스트모더니즘' 개념을 발전시킨 젊은 미술가들을 소개한다.

 

여기서 '그림 Picture'이란 끊임없이 덧쓰일 수 있는 일종의 재현의 양피지로써 발견되거나 '차용'되는 것이지 독창적이거나 유일무이한 것은 아니며, 근대 미학의 요체인 작가성과 진품성에 대한 요구를 희석시키고 심지어는 부정하는 것이었다. "우리가 찾으려는 것은 원천적인 기원이 아니라, 의미 작용의 구조다. 각각의 그림 아래에는 언제나 또 다른 그림이 존재한다."라고 전시를 준비한 더글러스 크림프는 썼다. 그림은 모든 기존 매체를 넘어서는 것으로, 잡지, 책, 광고판은 물론 다른 형태의 대중문화를 통해 똑같이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다. 나아가 '그림'은, 특정 매체가 저항력 있는 사실이라는 생각, "재료에 충실함"에 의해서든 드러난 본질로서든 간에, 모더니즘적 의미에서 미학적 기원의 역할을 할 수 있는 진리의 저장소라는 생각을 조롱했다. '그림들'은 특정 매체를 갖지 않는다. 그것들은 광선만큼이나 투명하고 물에 녹는 전사지만큼이나 얇은 것이다. 

 

포스트모더니즘적 '그림'

이후 몇 년에 걸쳐 이 집단적인 작업이 전개되는 동안, 가장 급진적으로 작가성을 공격한 것은 셰리 레빈(Sherrie Levine, 1947~)의 작업이었다. 1980년 레빈은 연작 「무제, 에드워드 웨스턴 이후」에서 웨스턴의 이미지를 노골적으로 표절했다. 작가로서 자신과 웨스턴의 위치를 뒤섞음으로써, 레빈은 웨스턴의 창조자로서의 지위, 그리고 작품 저작권을 소유한 웨스턴의 법적 지위에 도전했다. 더 나아가 웨스턴이 그 이미지의 기원이 된다는 독창성에 대한 권리로까지 차용을 확장했다. 웨스턴은 아들의 신체를 우아한 누드 토르소라는 방식으로 틀 지움으로써, 사실상 서구 문화에 가장 널리 퍼져있는 시각적인 어휘 중 하나(토르소)의 도움을 받았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이 이미지의 '작가'는 그리스 로마 조각의 모작을 유통시킨 이름 없는 조각가에서부터, 유적을 발굴한 고고학 팀, 그 유물을 전시한 박물관 큐레이터들과, 상품을 팔기 위한 광고 등에서 이 이미지의 여러 판본을 사용한 오늘날의 광고주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이런 관점에서 레빈의 작업을 웨스턴의 '작가성'을 공격한다. 즉 웨스턴이 그 이미지의 기원이라는 생각 자체를 조롱한다. 

 

셰리 레빈 「무제, 에드워드 웨스턴 이후」 1980

 

게다가 레빈은 사진을 다시 사진으로 찍는 방식으로 이 차용을 극적으로 만들었는데, 이것은 미술 작품임을 결정해 온 '기원'이라는 신비를 제거하는 데 사진이 수행한 역할을 강조하기 위해서였다. 당대의 미술가들은 1936년 발터 벤야민의 글 「기계 복제 시대의 예술 작품」의 가르침을 전적으로 수용했고, 이 세대에 속한 레빈 역시 사진의 조건을 "원본 없는 복제"라고 철저히 이해하고 있었다. 벤야민은 예술 원본의 미학적 마법, 혹은 '아우라'가 복사물이나 위조품에 의해 무효가 될 것이라면서, 이런 사진의 본성이 유일무이한 대상의 제의 가치를 위협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림들(Pictures)》 전에 참가한 미술가들의 작업 동기 중 하나는 점점 커지고 있는 예술 사진 시장, 원판을 제거한 한정판 사진 시장에 대항하는 것이었다. 벤야민은 "일찍이 사람들은 사진이 예술인지 아닌지의 문제를 놓고 쓸데없는 실랑이를 벌였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물음, 즉 사진의 발명으로 말미암아 예술 전체의 성격이 바뀐 것은 아닐까 하는 물음은 제기하지 않았다." 이 물음을 이제 레빈과 다른 차용 미술가들이 던지고 있고 그들의 비판이 채택한 용어 중 하나가 바로 '포스트모더니즘'이었다. 

 

레디메이드 자체

사진에서 발생한 이 모든 '그림들'의 논점은 미술 대상이라는 자율적인 세계를 대중문화의 영역에 용해시킴으로써, 미술의 3요소인 독창성, 원본, 기원을 공격했다. 이 논점은 신디 셔먼(Cindy Sherman, 1954~)의 작업으로 이어졌다. 그녀는 1977년과 1980년 사이에 「무제 영화 스틸」 연작을 통해 자화상이란 관념에 놀랄 만한 변화를 가져왔다. 셔먼은 영화 스타를 흉내 내고, 영화 속 인물로 등장하고, 감독의 스타일을 혼성 모방하여 자신의 작업을 영화의 한 장르인 것처럼 만들고 스스로를 다양한 사람들의 모습 뒤로 사라지게 했다. 

그러나 이 작업의 의미는 단순히 셔먼이 작가와 개인으로서의 자아를 내던져 버렸다는 점에 있지 않다. 그녀는 나아가 자아라는 조건이 바로 재현 체계 위에 구축된다는 점을 보여준다. 즉 아이들이 듣는 이야기나 청소년이 읽는 책, 미디어가 제공하는 사회적인 유형들은 영화의 서사 구조와 환상에 기반을 둔 심리적 투사 행위 간의 공명 작용을 통해 내면화된다. 사람들은 처음에는 영화, 그다음은 텔레비전에 의해 교묘하게 투사된 공적 이미지 세계에서 형성된 역할이나 상황에 스스로를 일치시킨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모든 작가는 자신의 이미지를 차용할 뿐만 아니라, '자신'을 차용한다.

 

신디 셔먼, 「무제 영화 스틸 #13(Untitled Film Still #13)」, 1978

 

우리의 신체, 우리 자신

네 여성(루이즈 롤러, 신디 셔먼, 로라 멀비, 바버라 크루거)의 작업은 소위 '비판적 포스트모더니즘'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 용어로 인해 그들의 작업은 '의식 산업'을 비난한 아도르노에서 하버마스에 이르기까지 대중문화 이론가들의 비판과도 관련돼 있다. '비판적'이란 수식어는 이들의 작업을 또 다른 형태의 포스트모더니즘과 구분하기 위해 필요하다. 다른 형태의 포스트모더니즘은 《그림들》 그룹이 폭로한 바로 그 매체, 회화에 의해 열렬히 선전됐다. 반모더니스트들이 보기에 포스트모더니즘은 이탈리아의 산드로 키아에게서 볼 수 있듯이 유화나 청동 조각의 고전주의 양식으로 돌아감으로써 '형식주의'에 전쟁을 선포하는 것이었다. 즉 포스트모더니즘은 과거의 회화 양식을 잡다하게 뒤섞은 절충 방식을 취함으로써 역사가 진보한다는 관념에 이별을 고했다. 《그림들》 그룹은 예술 매체가 더는 가치 중립적이지 않으며 이제는 통신 미디어에 감염되어, 현대 문화의 전쟁터가 됐다고 주장한다. 이렇게 그들은 비판적으로 이해된 포스트모더니즘의 상징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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