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이클 애셔가 「포모나 대학 프로젝트」를 설치한다. 장소 특정적 작업이 등장하면서 모더니즘 조각과 개념미술이 논리적으로 연결된다.
60년대 말에 이르면 "빛과 공간 맥락의 변화하는 조건"의 미학은 대상을 아예 없애고, 대신 변경된 장소라는 것을 만들어 낸다. 이곳은 때로는 공적인 공간(도시의 거리)이고 대개의 경우 사적인 공간(갤러리나 박물관 내부)으로서 이전에는 미술가들이 거의 개입하지 않았던 곳이었다.
따라서 이와 같은 개입에 붙여진 이름인 '장소 특정성'은 다른 수단을 사용한 일종의 미니멀리즘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장소 특정적 작업은 표면에서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사건을 제거하고 산업적인 건축 재료들을 사용했으며(리처드 세라는 강철, 마이클 에셔는 석고보드, 브루스 나우먼은 합판) 대상보다는 공간의 형태에 관한 것이기는 해도 기하학적 형태를 선호한다는 점에서 분명 미니멀리즘의 몇몇 원칙들을 확장시키고 있었다.
예기치 않은 미니멀리즘의 방문
미니멀리즘과 장소 특정적 미술의 관계는 브롱크스의 어느 버려진 거리에 있는 리처드 세라의 지름이 7.9미터 정도 되는 고리 모양의 작업에서 명확하게 드러난다. 이 작업의 의도는 형태의 극단적인 단순성을 드러내는 것이었다. 이 '미니멀'한 제스처는 최소한의 질서만 드러낸 채 도시 환경에 개입한다.
캘리포니아 클레어몬트의 포모나 대학 미술관에서 1970년 2월 13일부터 3월 8일까지 진행된 마이클 애셔(Michael Asher, 1943~)의 프로젝트는 또 다른 개입의 방식을 보여준다. 갤러리 자체의 건축 요소에 근거를 둔 이 프로젝트는 건물의 주요 전시 공간과 거리와 맞닿은 출입문이 있는 로비를 작업 대상으로 삼았다. 애셔는 이 공간에 새로운 벽을 집어넣어 두 공간의 모양을 바꿔 버렸다. 통로가 시작되는 부분이 미술관 안과 밖에서 어떻게 보이는가 하는 것은 애셔의 작업 의도와 관련해 매우 중요한 것이었다.
애셔는 이 작업을 통해 미술관이 자율성의 공간이라는 가정을 비판하고 심지어 그런 가정이 더 이상 작용할 수 없도록 만들었다. 이런 의미에서 애셔의 비판은 상품화와 소비가 가능한 미니멀리즘 대상들을 생산하는 것에 대한 비판, 그리고 이런 행위에 문화적인 정당성을 부여하는 공간인 미술관이라는 제도적 기구에 맞서는 것, 이렇게 두 방향으로 이루어진 것이었다.
세라의 「스트라이크: 로버타와 루디에게」는 2.4미터 높이에 7.3미터의 길이, 2.5센티미터 두께의 거대한 강철판으로 갤러리의 모서리에 맞닿아 수직으로 설치된 이 작품에 대한 경험은 미니멀리즘 차원을 넘어선다. 이 작품은 관람자의 신체를 압도하는 무게감으로 위협을 가하지만, 한편으로 정확히 필름의 '컷'상태와 같은 탈물질화된 인상을 준다. 다시 말해 분리된 동시에 연결된 일종의 선으로, 마치 잘려진 필름 두 조각을 이어 붙이는 것처럼 전체적이고 연속적인 시공간의 장을 상상하면서 한 장면에서 다른 장면으로 연결되는 것 같은 효과를 만들어 낸다. 관람자가 작품 주위를 거닐 때 공간은 닫혔다가 열리고 다시 닫힌다. 이런 움직임 속에서 공간 자체는 「스트라이크」가 자르거나 분할하는 물질로 경험된다. 공간을 이리저리 움직이는 관람자는 컷의 조작자이기 때문에 컷 행위는 지각 행위를 통한 관람자의 역할이 된다. 따라서 관람자는 지각 작업을 수행함으로써 자신이 살아가는 세계의 연속성을 다시 불러들인다.
모든 것이 가능하지는 않다
세라와 애셔가 건축 공간에 물질적이면서 개념적인 삽입물들을 집어넣는 작업을 했다면 다른 미술가들은 특정 장소를 점유하는 대상, 즈 조각적 대상을 넘어 풍경을 작업의 대상으로 삼았다. 가장 대표적인 예로 스미스슨이 설계한 유타 주 로젤 포인트의 그레이트 솔트 레이크에 작업한 457미터가 넘는 길이의 「나선형 방파제」, 마이클 하이저(Michael Heizer, 1944~)가 네버다 주 모하비 사막의 서로 마주하는 거대한 협곡에 두 개의 커다란 구멍을 파고 만든 「이중 부정」을 들 수 있다.
70년대 초반, 광범위한 영역에서 진행된 다양한 작업들은 과거 10년 동안 회화와 조각 모두에서 진행된 미니멀리즘의 엄격한 형식 논리를 폐기한 것처럼 보였다.
확장된 장
기본적으로 기념물의 논리를 갖고 있는 조각은 과거 모든 시대에 걸쳐 그 자체로 '장소 특정성'의 초기 형태라 불릴 만한 역할을 해 왔다. 즉 조각은 무덤이나 전쟁터, 의식을 치르는 장소의 기준선 같은 실제 장소를 표시하기 위해, 그 무덤의 주인이 되는 인물상, 기마상, 피에타 상을 세워 장소가 지닌 의미를 재현해야 했다.
19세기 후반에 들어오면 기념물이 점차 시들해지는데, 모더니즘 조각 일반은 재현의 장으로서 '자율성'을 확립했다. 이것은 작품이 그 물리적 맥락에서 벗어나 하나의 전체로서 자기 충족적인 형식 체계로 완전히 물러나 버렸음을 의미한다. 모더니즘 조각의 전제조건은 일종의 순수한 부정성이며, 배제된 것의 조합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모더니즘 조각은 전통적인 조각의 토대가 되는 기념물의 긍정성과는 정확히 반대의 것이 된다.
미니멀리즘이 여전히 조각 대상을 만들어 내는 것에 머물러 있다면, 장소 특정적 작업과 대지미술 작업은 그런 대상 자체를 포기함으로써 장소와 관계를 맺는 미니멀리즘의 방식을 확장하고 건축과 풍경을 긍정적인 항으로서 대체하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해서 전통 조각이 장소를 승인했던 방식으로 돌아가는 것은 아니다. 과거의 승인은 재현이라는 '가상'의 장에서 상징적으로 일어났지만, 새로운 작업은 장소에 직접 참여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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