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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0년 이후의 미술사(art since 1900) 책 공부/1970년대 노트

1974년 행위예술(퍼포먼스 아트), 신체미술

by 책방의 먼지 2019. 10.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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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크리스 버든이 폭스바겐 비틀 에 자신을 못으로 고정시킨 「못 박힌」을 선보이면서 미국의 퍼포먼스 아트가 신체적 현전의 극단에 도달한다. 이후 많은 추종자들은 행위 미술을 포기하거나 완화하거나 변형한다. 

 

이 글에서는 퍼포먼스 아트를 신체가 '작업의 주체이자 대상'인 미술로 한정해 살필 것인데, 이것은 1970년대 이런 종류의 작업을 다룬 가장 중요한 평론자인 《애벌런치 Avalanche》에서 비평가 위로비 샤프가 '신체미술'을 정의한 것을 따른 것이다. 이에 대한 질문을 던져보면 신체미술은 미술에서의 물질과 흔적에서 벗어나는 해방적 확장을 의미하는가? 아니면 재현의 임무를 불안하게 신체로 떠넘겨 버리는 것, 다시 말하면 미술의 '형상 figure'이 신체(실제로 예술의 원초적 배경이라 할 수 있는)라는 '장소 ground'로 문자 그대로 와해되어 버리는 것을 가리키는가?

 

신체미술의 세 가지 모델

대부분의 신체미술은 50년대 후반과 60년대 초반에 있었던 퍼포먼스의 세 가지 모델을 정교화한 것이다. 첫째는 행위(action)로서의 퍼포먼스로, 추상표현주의 회화에서 발전한 해프닝, 플럭서스, 그리고 이와 관련된 그룹들의 상호 예술적 활동에서 나타난다. 흔히 '네오다다'라 불리는 이런 행위들은 미술의 전통적인 예법을 공격하지만, 동시에 남성으로 간주되는 미술가의 영웅적이고 때로는 스펙터클한 제스처를 지지한다. 둘째, 과제(task)로서의 퍼포먼스이다. 저드슨 무용단에서 발전한 이 모델에서는 반스펙터클한 기계적인 몸놀림(걷거나 뛰기처럼 은유적이지 않은 움직임)이 상징적인 무용 동작을 대체한다. 과제 퍼포먼스는 행위 퍼포먼스에 대한 초기 페미니스트들의 반발에서 나왔으며, 사회적이면서 성적인 급진적 평등주의 속에서 시몬 포티, 이본 라이너, 트리샤 브라운 같은 여성 무용수들의 주도하에 발전했다. 셋째, 제의(ritual)로서의 퍼포먼스는 요제프 보이스, 빈 행동주의, 헤르만 니치, 오토 뮐, 귄터 브루스 등의 '해체 미술' 실천가들이 제안한 퍼포먼스다. 과제 퍼포먼스가 예술을 탈신비화하는 데 주력한 반면, 제의 퍼포먼스는 예술을 재신비화하고 다시금 신성한 것으로 만들고자 했다. 이는 예술 관습이 겪는 동일한  위기를 다른 방향에서 바라보는 것이다. 퍼포먼스의 이런 모델들은 때로 서로 겹치기도 하지만 모델 간에는 중요한 차이가 있다. 이 차이는 60년대 중반부터 70년대 중반까지 신체미술이 진행돼 온 세 방향, 즉 캐롤리 슈니만 (Carolee Schneemann, 1939~), 비토 아콘치(Vito Acconci, 1940~), 크리스 버든(Chris Burden, 1949~)으로 대표되는 세 가지 흐름에서 나타난다.

슈니만은 60년대 초중반 행위 퍼포먼스를 신체미술로 확장한 최초의 미국인이다. 당시 지각에 대한 관심에서 ‘물질로서의 육체’를 이용하기 시작한 슈니만은 먼저 성애적인 작업을 하다가, 전세계 모든 세대의 여성 미술가들과 공유하게 될 페미니즘 작업으로 나아갔다. 60년대 후반에 활약한 아콘치는 몸과 자아의 문제를 우선은 준과학적인 고립 속에서, 그 다음에는 상호 주관적인 상황에서 시험하기 위해 과제 퍼포먼스 모델을 사용했으며 이를 신체미술로 확장시켜 정신의 사회극으로 만들었다. 마지막으로 버든은 70년대 초반에 과제 모델과 제의 모델을 결합해 희생 형태의 퍼포먼스 아트를 만들었다. ‘희생 행위의 미적 대체물’이라 할 수 있는 (죽은 양을 찢어발기는 등의 행위로 가득한) 나치의 「난교 파티 신비극」 만큼은 아니어도, 버든의 격렬함은 몸을 예술적으로 사용하는 것의 윤리적 한계를 시험할 만큼 충분히 희생 제의적인 양상을 보여 준다. 

 

책임과 위반

아콘치는 자아와 타자, 사적인 것과 공적인 것, 신뢰와 위반 사이에 중복되는 부분을 탐구하는 동시에 다양한 종류의 한계들, 물리적이고 정신적인, 주체적이고 사회적인, 성적이고 윤리적인 한계들을 시험했다. 그러나 이런 경계들이 무너지자(예를들어 유혹과 관련된 1973년의 퍼포먼스에서 관객 중 젊은 여자 하나가 무대에 올라와 그를 끌어안았다.) 아콘치는 이런 행위에서 손을 땠다. 반면 크리스 버든의 작업은 이런 경계들을 가로지르는 것이다. 

아콘치와 마찬가지로 버든도 자기 학대에 가까운 퍼포먼스와 가학에 가까운 퍼포먼스를 번갈아가며 보여 주었다. 그러나 버든은 근본적인 위기 상황에 처한 신체가 보여주는 행위에 집중했으며, 이는 그의 고의적인 무책임이 즉각적으로 다른 이들의 책임으로 이어질 때조차 그러했다. 이런 작업의 예는 70년대 초반부터 여럿 나타나지만 특히 두 가지가 두드러진다. 「발사」(1971)에서는 저격수에게 자신의 팔을 쏘도록 시켰고, 총알은 버든의 왼팔 이두박근을 스쳤다. 「못 박힌」에서는 예수처럼 팔을 벌린 채 폭스바겐 비틀 위에 자신을 고정시켰다. 차고 문이 열리고 십자가 책형 자세를 한 버든을 매단 차가 출발했다. 차는 2분 동안 달렸으며 그는 차 위에서 비명을 질렀다. 차가 다시 차고로 들어오자 문이 내려온다. 팝적인 풍자(아마도 미국 문화에서 차가 갖는 신성한 가치에 대한)에서 영향을 받긴 했지만, 이 작업에서 눈에 띄는 것은 신체미술이 가진 제의적인 성격이다. 그의 행위가 남긴 못 따위의 물건은 ‘성물’로 불린다. 버든은 아콘치가 이미 환기시킨 나르시시즘과 공격성, 관음증과 노출증, 가학증과 피학증이라는 상극의 태도에다 희생극이라는 애매한 차원을 포함시킴으로써, 니치, 슈바르츠 코글러, 지나 판 같은 희생극의 집전자들과 함께 미술의 극한을 건드린다. 그리하여 예술의 윤리적 한계(윤리적 한계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즉 미술가는 자신과 타자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가? 관람자는 언제 개입할 것인가?)뿐 아니라 예술의 제의적 기원을 건드린다.  

 

실재적인 것과 상징적인 것 사이

몸이 "작업의 주체이자 대상"이라는 신체미술에 대한 최초의 정의는 비교적 순진해 보이지만 이 순진성, 즉 '직접성'을 놓쳐서는 안 된다. 이것이야말로 최초의 실천가들을 매료시키고 최초의 관객들을 감동시킨 것이다. 또한 이것은 미술의 물질성을 드러내고 단순한 존재 자체를 추구해야 한다는 모더니즘의 요구와 신체미술이 양립할 수 있게 했다. 그러나 신체미술은 '주체와 대상'을 하나로 만들지 않았다. 반대로 주체와 대상의 대립을 심화해 다른 이분법들을 형성하게 한다.

현재진행형 존재의 예술로 간주된다 할지라도(긍정적으로 예술과 삶의 아방가르드적인 재통합으로, 부정적으로는 미적인 거리의 허무적인 소멸로), 이것은 또한 몸을 재현물이자 기호로, 나아가 기호의 장으로 드러내는 것이다. 아마도 신체미술의 정수는 이 현재진행의 존재와 재현 사이의, 혹은 더 정확히 말해서 실재의 지표적 흔적(지금 이 순간, 당신의 눈앞에서 물어뜯기거나 총에 맞은 팔)과 상징의 과장된 주술(특히 제의 퍼포먼스에서 명백히 드러난다.) 사이를 어렵사리 오가는 것이다. 포스트미니멀리즘 미술의 위대한 풍자가인 나우먼 같은 미술가들에게는 이것은 전복적인 유희를 위한 기회였다. 예를 들어 나우먼의 작업 「다섯 명의 유명한 미술가의 무릎을 밀랍으로 날인한 것」은 신체미술의 지표적 흔적과 제의적인 허식을 그런 경향이 출현하기도 전에 조롱했다. 여기 찍힌 다섯 개의 자국은 모두 위조된 것으로 나우먼 한 사람의 것이다. 더욱이 이것은 밀랍으로 만들어지지도 않았다.

 

브루스 나우먼 「다섯 명의 유명한 미술가의 무릎을 밀랍으로 날인한 것 Wax impressions of the knees of five famous artists」 1968

체미술은 주로 나르시시즘과 공격성, 관음증과 노출증, 가학성과 피학성이라는 프로이트 식의 개념을 보여 주고, 나아가 프로이트 식의 "본능의 순환"(능동적 위치와 수동적 위치 사이의 지속적인 '역전', 주체에서 대상으로 다시 대상에서 주체로의 영속적인 '위치 바꾸기')을 행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런 방식으로 신체미술은 70년대 후반부터 뚜렷하게 나타나는 권력에 대한 정치적 비판과 주체의 정신분석 이론을 예증하기보다는 예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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