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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0년 이후의 미술사(art since 1900) 책 공부/책 속 상자

[인물] 브라이언 오도허티와 '화이트 큐브'

by 책방의 먼지 2019. 8.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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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년대 초 미니멀리즘이 추상표현주의를 대체하면서 뉴욕 미술의 중심지가 바뀌었다. 8번가와 그리니치빌리지에 모여 있던 작업실들이 남쪽 옛 경공업 지구로 이동했다. 이곳의 빈 공장들은 후에 '로프트'라 불리는 넓은 개방형 작업실로 쓰였다. 주요 딜러들도 함께 이동하면서 이제 소호는 미술 생산과 전시의 중심지가 됐다. 흰색으로 칠해 빛으로 가득한 로프트는 작품의 덩치를 과거 그 공간을 차지하던 산업자재만큼 키우는데 일조했다. 도널드 저드나 로버트 모리스의 작품은 이 새로운 공간이 있었기에 구상될 수 있었다. 아일랜드 출신의 비평가이자 미술가인 브라이언 오도허티(Brian O'Doherty)는 이 공간을 '화이트 큐브' 즉 흰색 입방체라 불렀다.

1976년 《아트포럼》에 연재된 글을 출판한 오도허티의 「화이트 큐브 안에서:갤러리 공간의 이데올로기」는 모더니즘에 대한 근본적 거부를 확산시켰다. 그는 미니멀리즘 오브제의 대체 미술로서 일시적 미술과 개념주의의 중요성을 재차 강조하며, '화이트 큐브'라는 말에 한 매체가 자신의 "권한 영역"을 주장하는 자기비판적인 모더니즘 규약에 대한 일종의 조소의 의미를 담았다. 오도허티에 따르면, 새 갤러리들의 '이데올로기'는 상업 공간과 창작 공간의 상동 관계에서 비롯됐다. 뫼비우스의 띠처럼 두 공간은 서로 구분될 수 없다. 모더니즘의 목표는 미술 작품의 자율성을 강화하고 작품이 그 틀에 의해 외부와 완전히 격리돼 그 어떤 것도 안으로 침투할 수 없도록 작품의 자기참조성을 지키는 것이다. 자기재현을 뜻하는 자기참조성은 추상의 근본 조건이다. 「판단력비판」에서 칸트는 이 자율적 '무사심'을 미의 조건으로 규정한 바 있다. 무사심은 작품이 외부의 어떤 것(재현의 대상이든 다른 '개념'이든)도 거부하는 데서 생긴다. 으리으리한 미술관의 흰색 전시실에서 유래된 화이트 큐브라는 말은 작품의 '순수성'(자율성의 또 다른 표현)의 근본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일단 갤러리와 로프트의 유사성이 더 이상 부정할 수 없는 것이 되자 '순수성'은 금전적 이익의 뒷전으로 사라져 버렸다. 모더니즘적 자율성의 쇠퇴는 탈매체적 조건의 설치미술의 전개를 허락한 주요 원인이 됐다. 비디오 프로젝션은 침투가 불가능했던 회화 표면을 조금씩 부식시켜 안개나 구름 같은 몽환적 조건을 모방했다. '화이트 큐브'의 권위가 붕괴되면서 벽의 객관적 실재성과 관람자의 주관적 경험 사이의 긴장감이 중요해졌고 매체의 저항적 지지체가 들어설 자리는 사라지게 됐다. 

1967년 오도허티는 콜로라도 레드 산의 예술적 도시 애스펀의 후원을 받아 잡지 《애스펀》 5+6호를 편집했다. 두께 7.6센티미터에 한 변이 약 23센티미터인 장방형 흰색 상자 형태의 이 '잡지'에는 레코드판(알랭 로브-그리에가 자신의 소설 「질투」를 낭송한 것), 영화 필름(로버트 모리스의 춤 작업 「장소」), 그리고 롤랑 바르트의 「작가의 죽음」 초판본 등이 담겨 있다. 그는 또 마르셸 뒤샹을 설득해 「창조 행위」를 강연하도록 했다. 이전에도 두 사람은 만난 적이 있다. 더블린에서 의학을 전공한 오도허티는 일찍이 뒤샹의 심전도를 검사했다. 이 다다 미술가에게서 나온 심전도 그래프가 전시되자 관람자들은 이것이 레디메이드인지 아니면 창조된 작품인지 혼란스러워했다.

미술가로서 오도허티는 뒤샹에게서 깊은 영향을 받아, 미적 판단의 근거가 되는 예술적 관습과 가정에 의문을 제기하는 작업을 했다. 그의 작업은 개념적인 것에서 화이트 큐브의 순수성에 반어적으로 의존하는 '로프 작업'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로프 작업'에서 갤러리나 미술관 구석을 가로지르며 교차하는 채택된 로프들은 평면이 공중에 매달린 듯한 시각적 환영을 만들어 냈다. 이런 시각적 게슈탈트로 인해 입방체의 물리적 차원은 지워진다. 

1972년 오도허티는 작업에 '패트릭 아일랜드'라고 서명하기 시작했다. 북아일랜드에서 영국군의 피의 일요일 학살에 대한 항의였다. 2007년 뉴욕에서 회고전 <오토허티/아일랜드>가 열렸고, 그 전 해에 그는 아일랜드의 평화를 인정하고 아일랜드 현대미술관의 땅에 또 다른 자아 '패트릭 아일랜드'를 '매장'하는 의식을 거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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