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파리 음악의 전당에서 열린 대규모 회고전을 통해 미국 미술가 크리스천 마클레이가 파리에서 아방가르드 미술의 새로운 역사를 쓴다. 프랑스 외무부는 소피 칼을 베네치아 비엔날레의 프랑스 대표 작가로 선정함으로써 프랑스 아방가르드 미술의 미래에 대한 믿음을 드러낸다. 한편 브루클린 음악학교는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윌리엄 켄트리지에게 「마술피리」 공연을 위한 무대디자인을 맡긴다.
1960년에 발표된 「모더니즘 회화」에서 클레멘트 그린버그는 "모더니즘의 자기비판은 계몽주의의 비판으로부터 발전된 것이지만 그와 똑같은 것은 아니다. 계몽주의에서 비판은 말 그대로 외부에서 가해지는 것이다. 그러나 모더니즘에서 비판은 내부, 즉 비판이 이루어지는 절차 그 자체를 통해서 수행된다.", 이 절차를 가리켜 "권한 영역"이라 했다.
난공불락으로 보이던 피카소의 자리를 뒤샹에게 내준 「철학 이후의 예술」은 매체 특수성이라는 모더니즘의 원리가 쇠락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코수스는 대상에서 진술로의 전환을 통해 뒤샹은 이미 특정 매체들의 필연성을 내던져 버렸다고 지적하며, 회화나 조각의 본성에 관한 '자기비판적' 성찰이라는 모더니즘적 주장의 중요성을 일축했다. 일찍이 르네 마그리트는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를 통해 재현을 언어에 종속시켰고 마르셀 브로타스도 「독수리 부 카탈로그 분과」에서 "이것은 미술 작품이 아니다."라는 문구를 반복함으로써 작품을 진술로 보는 것에 동참했다.
미술에서 이렇게 뒤샹식 언어가 홍수를 이루면서 피카소가 발명한 패러다임들은 깨끗이 사라지는 듯했다. 콜라주는 '데콜라주'나 포토몽타주로 축소됐고 입체주의 그리드는 모노크롬의 다양한 변주들에서 겨우 명맥만 유지하게 됐다.
탈매체적 조건 시대의 미술
설치미술, 즉 혼합매체를 이용한 작품은 특정 매체에 관심이 없다는 점에서 미술 대상의 탈물질화, 개념주의, 그리고 뒤샹의 매체 특수성에 대한 공격을 오늘날 버전으로 계승했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설치미술은 ‘탈매체적 조건’ 시대를 예고하는 것으로서 우리 시대 미술 생산의 주요 특징으로 여겨진다. 오늘날 미술가들은 자신만의 새로운 개별 매체들의 규칙들을 탐구하고 그 매체들의 '기술적 지지체'(저널리즘, 필름, 애니메이션, 혹은 파워포인트 프레젠테이션 같은 상업적 오브제 유형으로 전통적이고 역사적인 매체와 구별됨)를 "전면에 드러내는" 방식을 고안함으로써 진정한 아방가르드의 역할을 하고 탈매체적 조건에서의 키치에 저항한다.
지지체를 전면으로 드러내기
탈매체적 조건에 저항하는 이들에게 영향을 준 초기의 미술가는 에드 루샤다. 그는 「주차장」에서 항공 촬영을 통해 각 사진들을 완전히 평면적으로 만들었다. 사진 속 빈 주차 공간들은 흰색 줄이 그어진 일종의 그리드로 보인다. 이렇게 모더니즘 그리드처럼 수열적으로 구획된 칸들은 자동차 역시 작은 팸플릿과 마찬가지로 연속적으로 대량 생산된 것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한다. 자동차가 그의 매체의 '규칙들'을 발생시키고 그 특정성을 보증하는데, 이는 입체주의 그리드가 모더니즘 회화의 '규칙들'을 제시하는 것과 동일한 방식이다. 유화라는 전통적 매체는 더 이상 그의 관심사가 아니라고 밝히며 대신 그는 블루베리 추출물, 카레, 초콜릿 시럽, 철갑상어 알 같은 별난 재료들을 사용해서 헝겊으로 된 자신의 책 표지에 얼룩을 남겼다. 이런 식으로 루샤의 「얼룩」은 모더니즘 미술이 과거에 수행했던 '얼룩 회화' 즉 '색면'으로 나아갔다.
미국 미술가 크리스천 마클레이(Christian Marclay, 1955~)는 음악, 넓게는 소리의 역사와 문화를 지속적으로 작품에서 언급했다. 2002년 발표된 걸작 「비디오 사중주」에서 마클레이는 네 개의 DVD 스크린을 수평으로 나란히 설치하고 각 스크린에 유명 영화의 화면을 모아 놓은 영상을 내보냈다. 동시다발적인 상영에서 그는 각각의 영상에서 동시에 발생하는 싱크사운드가 일종의 불협화음을 이루도록 조작했다. 이렇게 만들어진 불협화음은 관람자의 주의를 흐트러뜨리는 동시에 흥분시킨다. 여기서 상업적, 영화적 매체인 싱크사운드는 마클레이의 일종의 '기술적 지지체'로서 그가 "전면에 드러내고자"했던 영화에서 유래한 매체를 구성한다.
프랑스 미술가 소피 칼(Sophie Calle, 1953~)은 처음에는 텍스트와 이미지를 결합하는 개념주의 사진가로 경력을 쌓기 시작했다. 그러나 곧 자신만의 매체를 개발하기 위해 새로운 '기술적 지지체'(탐사 저널리즘)로 관심을 돌렸다. 「한 여자가 사라지다」는 베네딕트라는 한 여성에 관한 신문 기사에 초점을 맞췄다. 베네틱트는 2003년 퐁피두에서 열린 칼의 회고전 《나를 보았니?(M'a tu vue?)》의 안전요원이었다. 칼의 ㅈ가업에 매료된 그녀는 전시장 방문객들을 미행해 몰래 그들의 사진을 찍었는데, 이후 베네딕트의 아파트가 있던 파리의 일 생루이에 원인 불명의 불이 나서 그녀의 집이 잿더미로 변했다. 경찰은 그것에서 불탄 네거티브 사진들을 발견했으나, 베네딕트는 이미 사라진 후였다. 센 강을 뒤지거나 이웃을 탐문하는 등의 경찰 조사에 관한 신문 기사를 사진으로 찍고 작품으로 만든 「한 여자가 사라지다」에서는 저널리즘이라는 칼의 지지체가 "전면에 드러난다."
남아프리카 공화국 출신의 미술가 윌리엄 켄트리지는 '기술적 지지체'로서 애니메이션을 택했다. 그는 목탄으로 그림을 그리고 그것을 사진 찍었다. 그리고 일부를 살짝 지운 다음 변경된 새 이미지를 또 사진으로 찍었다. 이런 과정을 반복해 한 편의 영화 필름을 만들어 냈다. 「약상자」(2000)에서 자신의 모습을 반영한 시작 영상은 이미지들을 공간에 대한 모호한 경험으로 바꿔 놓았다. 저 얼굴은 대부분의 회화에서처럼 표면 뒤쪽에 있는가, 아니면 그 표면에 있는가? 이 모호함은 얀 반 에이크의 「아르놀피니의 결혼식」에서 파르미자니노의 「볼록거울의 자화상」에 이르기까지 지난 수세기 동안 화가들이 탐색했던 것이다.
까마귀 떼가 화가의 머리 뒤로 날아오르며 검은색 날개가 하늘을 휘젓는 마지막 장면은 그림이 조금씩 지워지면서 흐릿한 유령 같은 형상들이 나타나는 것이 마치 켄트리지 자신의 애니메이션 제작 방식을 흉내 낸 듯 보인다. 날아가는 새의 문질러진 날개는 2007년 그가 브루클린 미술학교의 「마술피리」 공연을 위해 제작했던 무대 배경에도 등장한다. 이처럼 자신의 기법을 "전면에 드러내는" 것은 이미 1966년 「주요 불만의 역사」에서 시도했던 것이다. 그는 주인공이 빗속을 운전할 때, 앞 유리의 와이퍼가 간격을 두고 반복적으로 유리를 닦는 장면을 특유의 지워내기 방식으로 표현했다. 켄트리지의 지우는 행위가 남긴 문질러진 흔적은 기법적으로 루샤의 흐릿한 얼룩을 연상시킨다. 둘 다 윤곽의 명료함이라는 관습에 저항했던 모더니즘 투쟁의 역사를 상기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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