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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0년 이후의 미술사(art since 1900) 책 공부/2000년대 노트

2010년a 아이웨이웨이, 장환, 중국 동시대미술

by 책방의 먼지 2019. 7.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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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웨이웨이의 대규모 설치 작업 「해바라기 씨」가 런던 테이트 모던의 터빈 홀에 전시된다. 중국 미술가들은 중국의 풍부한 노동시장을 활용해 그 자체가 사회적 대중 고용 프로젝트가 되는 작업들을 선보임으로써 중국의 빠른 현대화와 경제 성장에 반응한다.

 

2007년 독일 카셀 도큐멘타 12에 출품된 아이웨이웨이(1957~)의 작품에는 「동화」라는 재치 있는 제목이 붙었다. 「동화」의 목표 중 하나는 중국에서 해외로 여행할 때 발생하는 행정적 어려움에 대해 주의를 환기시키고 이를 극복하는 것이었다. 허울 좋은 세계화 그늘에 가려진 실상을 보여준다. 대중과 개인을 병치한 그의 전략은 마이클 하트와 안토니오 네그리가 2000년에 [제국]을 출판한 이후 불거진 세계화 시대의 ‘다중’에 대한 논의와 부합한다. “상품의 이동성, 그중에서도 노동력이라는 특별한 상품의 이동성은 자본주의가 탄생한 순간부터 축적의 근본 조건으로 제시됐다. 우리가 오늘날 목격하는 개인, 집단, 인구의 이러한 이동은...... 자본주의의 축적 법칙에 완전히 종속될 수 없다....... 다중의 움직임은 새로운 공간을 지정하고 다중의 여행은 새로운 거주를 확립한다.”

‘다중’ 그리고 다중 개념이 뜻하는 ‘하나’와 ‘다수’ 사이의 규모적인 비약은 세계화 논의에서 핵심적인 것으로, 이는  「해바라기 씨」가 지닌 노동의 측면에서 볼 때 분명하게 드러난다. 이 해바라기 씨들은 한때 중국 황실에 도자기를 진상했던 징덕진의 노동자들이 수년에 걸쳐 수공으로 제작한 것이다. 1억 개라는 엄청난 수가 개인이라는 관념을 넘어서 “세계”처럼 일종의 인구적인 ‘숭고’라면, 정교하게 제작된 이 미니어처의 바다는 중국 경제 붐에 가장 큰 원동력이 된 막대한 노동력의 물질적 흔적을 보여 주는 역할을 한다.  

작은 물체들로 이루어져 그 위를 걸어 다닐 수 있는 카페트인 「해바라기 씨」뿐 아니라 「동화」 역시 2000년대 중요한 다른 많은 작업들이 그러하듯이, 인간관계의 ‘구성’으로 볼 수 있다.  「동화」가 다루고 있는 것은 어떻게 사물이 사람이나 국가의 대리로서 소통하는가, 그리고 이런 대리의 이미지로 빈 의자(그가 전시한 명청대까지 올라가는 1001개의 의자) 보다 나은 것은 무엇인가 하는 점이다.

 「동화」는 세계화 과정을 상당히 복잡하고 미묘한 방식으로 상연하는데, 그 세계는 작고 통합된 세계가 아니라 다양한 속도로 사람과 사물이 움직이면서 서로 접속하기도 하고 단절되기도 하는 세계다.

아이웨이웨이 동화 2007년

 

아이웨이웨이, 해바라기 씨 Sunflower Seeds, 2010년

예술 작업을 상이한 대중들, 특히 서양과 만난 중국의 대중, 그리고 중국의 물질문화를 접한 서양 대중의 구성으로 본 아이웨이웨이는 90년대 중반부터 서구에서 매혹과 자본 투기의 대상이 된 중국 동시대 미술에 대한 적절한 경험을 제공한다. 미술사학자인 우홍은 동시대 미술을 이해하는데 전시가 중요하다고 보았다. 중국 지성계와 예술계의 아방가르드는 이 전시라는 공적 영역에서 정치적인 언론의 자유뿐 아니라 예술적 자유의 범위를 점차 확대해 갔다. 

80년대 외국에서 현대미술과 비평 이론에 관한 새로운 정보가 유입되고, 베이징의 주간 미술신문 [중국미술보]나 우한의 계간지 [미술사조] 같은 비공식 미술 잡지가 성장한 덕분에 미술 활동이 꽃필 수 있었다. 이것이 중국 미술계를 확장시키는 우선 수단이 됐다면, 90년대에 들어 이러한 기능은 상업이 대신하게 되었다. 

90년대 중반 중국 미술이 국제적 위상을 높여 갈 즈음, 문화혁명의 유산이 대체로 극복된 가운데 새로운 역사적 과제가 등장했다. 엄청난 현대화에 직면한 것이다. 미술가의 지위에 변화가 생겼고 결국 그들이 더 많은 기회를 갖게 됐음을 장환(1965~)만큼 잘 보여주는 이도 드물다. 90년대 신랄한 퍼포먼스로 주목받기 시작한 그는 2000년대에 들어 정예 조수들의 도움을 받아 거대한 규모의 회화와 조각 작품을 제작하는 국제적인 스타 작가가 됐다. 그의 서로 다른 시기의 작업을 이어주는 것은 경제 발전, 그리고 기념비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이다. 장환의 작업은 신체적이고 감정적인 현존과 회고적인 기억 간의 관계에 대한 알레고리이기도 하다. 

많은 중국 작가들은 중국 경제 성장의 촉진제가 된 풍부한 노동력에 반대하기보다는 마치 소규모 공장의 소유주인 양 그 노동력을 이용해 작업하기를 원했다. 급속한 현대화에 대한 중국의 미학적 반응의 독특함은 사실 그 규모에서 비롯된 것이다. 아이웨이웨이나 장환 같은 작가들에 의해 미술은 진정으로 사회적인 프로젝트가 됐다. 80년대와 90년대 초 미술가들에 의해 개척된 비공식적 공론장은 실제적인 인구, 즉 ‘관광객’, 조수, 미술계의 관객 모두를 관리할 수 있는 새로운 유형의 중국문화산업으로 변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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