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 미 지방법원은 리처드 세라가 자신의 작품 「기울어진 호」가 미연방 총무성에 의해 철거되는 것을 막기 위해 제기한 소송을 기각했다. 이 작품은 철거를 주장한 바로 그 총무성이 1981년 세라에게 주문했던 것이었다. 세라는 "이 작품을 옮긴다는 것은 곧 작품을 파괴하는 것이다."라며 이 작품의 장소 특정성을 설득력 있게 주장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년 후 「기울어진 호」는 야음을 틈타 철거됐다. 이 사건을 기점으로 진보적 작가들의 작업에 두드러기적 반감을 보이는 시대가 도래했다.
1987년 안드레스 세라노(Andres Serrano, 1950~)는 노스캐롤라이나의 윈스턴-세일럽에 있는 남동현대미술센터(SECCA)에서 1만 5,000달러의 지원금을 받았다. 이 지원금은 간접적으로는 국립얘술기금(NEA)으로부터 지급된 것이었다. 세라노는 지원금을 받는 동안, 작은 그리스도 십자상이 거품 나는 황색 액체에 잠겨 있는 모습을 찍은 시바크롬 사진을 제작했다. 「오줌 예수(Piss Christ)」라는 이 작품의 제목에 근거해 미국가족협회 회장 도널드 와일드먼 목사는 "종교를 보는 편협한 방식"을 이유로 세라노를 기소했다. 또 1987년 필라델피아 현대미술협회는 로버트 매플소프(Robert Mapplethorpe, 1947~1989)의 회고전을 지원하기 위해 국립예술기금 3만 5,000달러를 받았다. 이 전시에는 동성애 행위를 담고 있는 이미지가 다섯 점 포함돼 있었는데, 분쟁을 우려한 코코란갤러리는 이 전시의 워싱턴 전을 취소했다. 그 후 전시는 신시내티현대미술관으로 옮겨져서 열렸지만, 그곳의 관장 데니스 바리가 이 작품들의 외설성에 대해 책임져야 했다. 상원위원 제시 헬름스를 필두로 한 보수주의 국회의원들은 세라노와 매플소프를 둘러싼 논쟁을 국립예술기금 폐지를 위해 전략적으로 이용했다. 그러나 국립예술기금 지지자들은 그들의 공격에 소극적으로 응수할 따름이었다.
이 사건은 베트남 전쟁 이래 예술을 둘러싼 분쟁 가운데 가장 시끄러운 것이었다. 이 사건으로 인해 현대미술에 대한 대중의 지지가 급격히 떨어졌으며, 종교적 우파는 자신들의 목적을 위해 이들의 실패를 이용했고, 동성애를 혐오하는 문화 정치가 미국 전체를 강타하게 됐다. 국회가 지목한 다른 예술가들의 작품 역시 동성애를 전면에 내세운 것들이었다. 퍼포먼스 예술가 홀리 휴즈나 팀 밀러를 비롯한 이들 예술가는 모두 반가족, 반종교, 반미 작가로 간주됐다. 이 전쟁은 시작부터 작품이 제공하는 일차적 정보에만 의존해 평가하는 경향을 보였다. 많은 사람이 「오줌 예수」를 소변으로 예수를 신성 모독한 것으로만 이해했다. 검사는 마치 매플소프 이미지의 범법성이 자명한 것인 양 "사진 스스로가 다 말하고 있다."며 유죄를 선고했다. 한편 「기울어진 호」는 테러리스트를 위한 장비에 비유되기도 했다. 결국 「기울어진 호」는 철거됐고, 외설적인 작업을 금하는 문구가 국립예술기금 약정에 삽입됐으며, 테니스 바리에 대한 소송은 기각됐다. 그러나 이것이 전부가 아니다. 현대미술은 우파들의 정치적 먹이가 됐다. 외설이나 스캔들과 연루되지 않은 미술은 사기 행위로 조롱됐으며, 따라서 이를 존중하는 것은 세금을 낭비하는 행위로 간주됐다. 그 결과 상당수의 자유주의 지지자들도 예술에서 등을 돌리게 됐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공격 속에서 국립예술기금(그리고 공영방송(PBS)과 국영 라디오방송(NPR)과 같은 기관들)과 함께 특히 공공 미술이 큰 타격을 입었다. 에이즈 치료를 위해 엄청난 양의 자금이 요청되는 시기에 비규범적 섹슈얼리티에 대한 용인은 지독한 반대에 부딪히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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