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기 구겐하임(Peggy Guggenheim. 1898~1979)은 아방가르드 미술을 열렬히 지지한 20세기의 위대한 수집가 중 한 명이다. 사망할 당시 소장품 중에는 칸딘스키, 클레, 피카비아, 브라크, 그리스, 세베리니, 발라. 판 두스뷔르흐, 몬드리안, 미로, 에른스트, 데 키리코, 탕기, 달리, 마그리트, 폴록, 마더웰, 고르키, 브라우너의 작품은 물론, 브랑쿠시, 칼더, 립시츠, 로랑, 페프스너, 자코메티, 무어, 아르프의 조각이 포함돼 있었다. 1920년 파리로 간 구겐하임은 이류 초현실주의 화가였던 로렌스 바일(Laurence Vail, 이후 남편이 된다.)을 통해서 마르셀 뒤샹, 만 레이, 아나이스 닌, 막스 에른스트, 사뮈엘 베케트의 보헤미안 세계를 알게 된다.
구겐하임의 컬렉팅 활동은 1938년 런던에 처음 연 '구겐하임 죈(Guggenheim Jeune)' 갤러리 사업의 일환으로 시작됐다. 뒤샹이 조언자 역할을 했다. 개관전에서 장 콕토의 드로잉을 선보인 구겐하임은 탕기, 칸딘스키, 아르프, 브랑쿠시 특별전을 이어 열었다. 1년 후 그녀는 런던에 미술관을 설립하기로 하고 하버트 리드를 초대 관장으로 초빙했다. 1940년 무렵부터는 "하루에 그림 한 점 구입하기" 캠페인에 돌입했다. 그러나 전쟁이 악화되자 소장품을 보관할 장소가 문제가 됐다. 루브르 박물관은 "보관 가치가 없다"고 받아 주지 않았지만 결국 그녀는 거대한 창고를 비시 근처의 어느 성에서 발견했다. 이렇게 전쟁 중에도 소중히 간직했던 소장품을 가지고 마르세유로 떠난 구겐하임은 지식인과 예술가들이 유럽에서 빠져나갈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았으며 자신도 1942년에는 유럽을 떠났다.
뉴욕에서 에른스트와 재혼한 구겐하임은 새로운 갤러리 '금세기 미술'을 설립하여 이후 추상표현주의의 간판이 되는 미술가들의 개인전을 열었다. 폴록을 "피카소 이후 가장 위대한 화가"로 확신했던 구겐하임은 폴록에게 매달 150달러를 지원하기도 했다. 이후 리 크래스너는 다음과 같이 회상했다. "최초로 뉴욕화파를 소개한 '금세기 미술'은 매우 중요한 장소였다..... 여기에서 모든 일이 시작됐다. 그렇게 구겐하임의 갤러리는 하나의 토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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