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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의 피아노] / 김진영 라디오에서 들었다. "일기장, 정갈한 생을 살다 간 철학자 재작년 말 암 선고를 받고 쓴 일기는 작년 여름에 끝난다 '슬퍼할 필요없다. 슬픔은 이럴 때 쓰는 것이 아니다.'라는 말이 겉에 새겨진 일기집 [아침의 피아노]에서 몇 줄 그러고 보니 여기에는 해충이 없다. 문을 열고 자는데도 모기에 시달리지 않는다 아침 물가에 앉으니 그 이유를 알겠다. 그건 여기가 쉼 없이 물이 흘러가는 곳이기 때문이다. 흐른다는 건 덧없이 사라진다는 것. 그러나 흐르는 것만이 살아있다. 흘러가는 동안의 시간들 그것이 생의 총량이다. 그 흐름을 따라서 마음 놓고 떠내려가는 일, ㅡ 그것이 그토록 찾아 헤매었던 자유였던가? 어제 내린 비의 추억일까 다가오는 비의 소식일까? 젖은 대기 안에서 세우가 분말처럼 뿌린다. 문득 말년의 .. 2019. 10. 3.
1927년c 찰스 실러, 조지아 오키프, 정밀주의, 기계시대 ▲ 찰스 실러가 포드 사로부터 의뢰를 받아 새로 신축한 리버 루즈 공장의 모습을 기록으로 남긴다. 북미 모더니스트들이 기계시대에 서정적으로 접근하자 조지아 오키프는 이를 자연 세계로 확장한다. 모더니즘 사원으로서의 기계 북미 대륙에서 모더니즘의 발견은 제1차 세계대전 중 뒤샹과 피카비아와 같은 미술가들의 망명지였던 미국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당시 뉴욕은 아방가르드의 임시 수도였고 (피카비아가 후원한) 스티글리츠 살롱과 월터 아렌스버그와 루이즈 아렌스버그 부부의 살롱(뒤샹은 여기서 미국인 만 레이를 만났다. 얼마 안 있어 만 레이는 미국의 다다와 초현실주의의 핵심 인물이 된다.)은 아방가르드 활동의 중심지였다. 나름의 방식으로 이미 모더니즘 기법을 채택했던 마린, 스텔라, 아서 도브, 마스덴 하틀리(Ma.. 2019. 10. 2.
[인물] 뉴욕근대미술관(MoMA)과 앨프리드 H. 바 증권 시장이 붕괴된 지 며칠 지나지 않은 1929년 11월 7일, 뉴욕근대미술관(Museum of Modern Art, 이하 MOMA)은 뉴욕 4번가 730번지에 있는 여섯 개의 작은 전시실에서 후기인상주의 대가(세잔, 반 고흐, 고갱)들의 전시를 개최했다. 세명의 미술 수집가, 즉 존 D. 록펠러 주니어의 부인인 애비 올드리치 록펠러와 내무부장관의 여동생인 릴리 P. 블리스, 그리고 메리 퀸 설리번의 합작품인 MoMa는 1931년 거트루드 반더빌트 휘트니가 세운 휘트니미술관이나 1939년 솔로몬 R. 구겐하임과 힐라 르베이 폰 에렌바이젠 남작부인이 세운 비대상 회화 미술관과 거의 같은 시기에 문을 열었다. 부유한 미국인들의 이런 문화 기획들은 1913년의 아머리 쇼, 그리고 일찍이 모더니즘 미술을 지지.. 2019. 10. 1.
1927년b 콘스탄틴 브랑쿠시 ▲ 콘스탄틴 브랑쿠시가 스테인리스 스틸로 「신생」을 제작한다. 그의 조각 「공간 속의 새」를 둘러싸고 미국에서 벌어진 공판에서 고급예술과 산업 생산 모델 간의 경쟁이 본격화된다. 콘스탄틴 브랑쿠시(Constantin Brancusi, 1876~1957)는 1907년 한 달 동안 프랑스에서 오귀스트 로댕의 50명의 조수 중 한 명으로 일하였다. 정확히 한 달 뒤 그는 로댕의 작업실에서 나와 예술 산업화와 정반대 지점에 있는 접근 방식을 선택했다. 그는 자신이 구할 수 있는 나무나 돌을 찰흙이나 석고 모형을 만드는 중간 단계를 거치지 않고 곧바로 깎기 시작했다. 이런 '직접 조각'의 미학적 정직성은 두 가지 차원에서 의미를 갖는다. 첫째, 그것은 사용한 재료의 특성에 반응하며, 전통적 조각 제작처럼 찰흙 모.. 2019. 9.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