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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4년 행위예술(퍼포먼스 아트), 신체미술 ▲ 크리스 버든이 폭스바겐 비틀 에 자신을 못으로 고정시킨 「못 박힌」을 선보이면서 미국의 퍼포먼스 아트가 신체적 현전의 극단에 도달한다. 이후 많은 추종자들은 행위 미술을 포기하거나 완화하거나 변형한다. 이 글에서는 퍼포먼스 아트를 신체가 '작업의 주체이자 대상'인 미술로 한정해 살필 것인데, 이것은 1970년대 이런 종류의 작업을 다룬 가장 중요한 평론자인 《애벌런치 Avalanche》에서 비평가 위로비 샤프가 '신체미술'을 정의한 것을 따른 것이다. 이에 대한 질문을 던져보면 신체미술은 미술에서의 물질과 흔적에서 벗어나는 해방적 확장을 의미하는가? 아니면 재현의 임무를 불안하게 신체로 떠넘겨 버리는 것, 다시 말하면 미술의 '형상 figure'이 신체(실제로 예술의 원초적 배경이라 할 수 있는)라는.. 2019. 10. 17.
[이론] 이론 저널( 비평 이론 성행과 그 배경) 70년대에는 많은 비평 저널들이 쏟아져 나왔다. 이 시기에 비평 이론은 문화적 실천의 역동적인 한 부분이었으며 비평 저널에도 아방가르드가 존재했다. 독일의 《인터푼크티오넨 Interfunktionen》 프랑스의 《마쿨라 Macula》 영국의 《스크린》 미국의 《옥토버》등 당시 비평 이론은 전통 철학보다 더욱 정치적이었으며, 지적으로 더 엄격했고, 상호학제적이었다. 이들 저널은 서로 다른 분석 방법을 결합하는 경우도 있었고(예를 들면, 마르크스주의와 프로이트주의 또는 페미니즘과 영화 이론), 하나의 모델을 광범위한 연구에 활용하는 경우도 있었다. (언어의 구조를 미술, 건축, 영화를 연구하는 데 활용했다.) 루이 알튀세, 자크 라캉, 미셸 푸코, 자크 데리다, 롤랑 바르트, 장-프랑수아 리오타르 등, 50.. 2019. 10. 16.
1975년 페미니즘과 페미니즘 미술가들 ▲ 영화감독 로라 멀비가 「시각적 쾌락과 서사 영화」를 발표하자, 주디 시카고와 메리 켈리 같은 페미니즘 미술가들이 여성의 재현에 관해 다양한 입장을 전개한다. 페미니즘은 더할 나위 없이 복잡한 주제이다. 그리고 페미니즘에 자극을 받은 여성들이 60년대 말과 70년대 초에 미술을 변형하면서 페미니즘은 더욱 복잡해졌다. 지난 30년 동안 대부분의 중요한 미술은 사회적으로 구축된 젠더 정체성과 성차의 기호학적 의미 등 페미니즘의 주제에서 일정 부분 영향을 받아기에 독립된 페미니즘 미술사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페미니즘 미술은 민권운동의 노선을 따라 성장한 여성 운동과 관련지어 서술할 수 있다. 60년대 진행된 첫 번째 국면에서 여성은 평등권을 위해 투쟁했고, 페미니즘 미술가는 추상과 같은 모더니즘 형식.. 2019. 10. 15.
[이론] 문화 연구 기호학이 문화의 지평 전체를 꼼꼼히 살펴서 거기에 숨겨진 정치적 발언들의 예를 찾아낸다는 전제에서, 기호학의 영역은 텔레비전, 포장지, 패션, 광고에 이르기까지 대중문화 영역으로 확장됐다. 이는 문학, 역사, 예술 등 인문학의 영역을 구성하는 다양한 분과의 내적 일관성에 대한 미셸 푸코의 공격과 동시에 진행됐다. 영국 버밍엄 대학의 학자들은 대중문화가 단순히 수동적인 소비자들을 조종한다는 인식에 이의를 제기하기 시작했다. 오히려 스튜어트 홀(Stuart Hall, 1932~) 같은 문화 비평가들은 소비라는 전략이 저항의 형식들로 재빠르게 나아가고 있다고 주장했다. 예를 들어 랩은 음악이 예의와 순종이라는 중산층의 가치에 대한 공격의 수단으로 재편성되고 있음을 보여 준다. 심지어 통속적인 이야기의 가장 저.. 2019. 10.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