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년대가 시작될 무렵, 미국 미술 잡지들의 관심은 과거에 집중되어 있었다.
《아트뉴스》는 저명한 편집자인 토머스 헤스에게서 추상표현주의에 대한 열정을 그대로 이어받았고 《아트 인 아메리카》는 그 이름이 시사하는 것처럼, 미국인의 제작물에만 관심을 두었다.
그러나 50년대 말에 미술 생산의 열기가 가열되자 편협한 시각을 뛰어넘을 만한 잡지가 나올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됐다.
1962년에 샌프란시스코에 있던 필립 라이더와 존 코플란스는 이때를 놓치지 않았다. 곧 그들은 갓 시작한 《아트포럼 Artforum》을 샌프란시스코에서 로스앤젤레스로 가져왔고, 그곳에서 발행인인 찰스 코울스와 특유의 정방형 판형으로 이 잡지를 디자인한 에드 루샤가 합류하게 된다.
50년대 후반에 등장한 추상적이고 극도로 미니멀한 엘스워스 켈리의 작품은 《아트포럼》이 뒤를 받쳐 줄 수 있는 미술 제작의 새로운 방향을 알려 주었다. 라이더의 관심은 힘찬 글쓰기에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미술가의 글을 게재하고 싶어 했다. 60년대에 걸쳐 《아트뉴스》의 활동적인 비평가였던 도널드 저드는 비평 담론을 미술가의 본격적인 표현 수단으로 확립시켰다. 로버트 모리스는 곧 그 범례를 따라 미니멀리즘을 규정하는 네 개의 에세이 「조각에 대한 노트」를 1966년과 1969년 사이에 《아트포럼》에 발표했다. 로버트 스미스슨은 당시 조각에 대한 개념 지형을 복잡하게 만들고 있었으며, 그의 「엔트로피와 새로운 기념비」(1966년6월호)는 미니멀리즘 작업이 지닌 산업에 대한 낭만주의를 넘어서고 있었다. 《아트포럼》은 대지 작업에 열광해, 1967년 여름 특별호에서 이것을 구체화했다. 개념미술은 미니멀리즘이 떠난 사리를 바로 차지하게 됐고 「개념미술에 대한 단평」(1967년6월호) 같은 솔 르윗의 글이 곧 등장하면서 개념미술이 미니멀리즘을 대체했다.
1971년경 라이더는 편집권을 존 코플란스에게 넘겨주고 사임했고 코플란스는 곧 캘리포니아를 떠나 뉴욕으로 왔다. 그러나 그가 직면한 것은 편집 위원회의 심각한 분열상이었다. 가장 생산적인 비평가 축에 속했던 막스 코즐로프와 로렌스 앨러웨이는 이 잡지의 '형식주의적' 경향에 적대적이었다. 따라서 이들은 잡지가 보다 정치적으로 되어야 하며 사진처럼 사회와 관련된 매체에 대한 지원을 보다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 반대편에는 프리드, 마이컬슨, 크라우스가 있었다. 마이컬슨과 크라우스는 1975년 편집위원을 그만두고 《옥토버》를 창간했는데, 이 잡지의 이름은 바로 '형식주의'에 대한 소비에트의 공격으로 고통을 겪던 세르게이 예이전시테인의 영화에서 따온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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