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지막 한 판: 최근 회화와 조각에 나타나는 지시와 허상전》이 보스턴에서 열린다. 몇몇 작가들은 조각이 상품으로 전락하고 있는 상황을 다루는가 하면, 다른 작가들은 디자인과 디스플레이가 부상하고 있음을 주목한다.
소비 자본주의 세계의 일차적인 소비의 개념은 주어진 상품의 사용보다는 오히려 다른 기호와 구별되는 특정 기호로서 상품의 차별성을 의미한다. 프랑스의 사회학자 장 보드리야르에 따르면, 우리는 대개 대상 그 자체보다 "대상의 인공적이며 차별적이고 코드화되고 체계화된 측면"을 소비한다. 우리의 욕망을 자극하는 것은 브랜드의 이름이고, 우리의 물신이 돼 버린 것은 기호로서의 상품이다.
소비의 코드
고급예술과 저급 예술 사이의 구분은 서로 주요 이미지를 빌려 오거나 주제를 공유하는 차원을 넘어서서 모호해졌다. 팝과 미니멀리즘에서 이런 현상이 노골적으로 나타난 것은 제프 쿤스나 하임 스타인바흐와 같은 작가들이 예술 작품과 상품을 직설적으로 동일시하기 시작한 80년대 초의 일이었다. 이들의 작업은 1986년 보스턴 현대미술관에서 열린 「마지막 한 판」이라는 전시에서 처음 주목받았다.
제프 쿤스(Jeff Koons, 1955~)는 발터 벤야민이 자본주의 사회에 대히 이미 오래전에 예측했던 것, 즉 예술과 예술가가 상실한 아우라를 상품과 스타란 '가짜 주술'로 보상받고자 하는 문화적 요구를 드러낸 것이다. 그 위치에 있는 미술가 중 가장 유명한 선배로는 앤디 워홀을 들 수 있다. 주식 중개인 전력이 있는 쿤스가 예술의 아우라에 대한 현대적 대체물로서 과대 상업 광고를 제시했다면, 그 못지않게 재기 넘치는 데미언 허스트 같은 작가는 미디어 선정주의를 통해 그와 유사한 작업을 했다.
쿤스가 상품-기호의 물신숭배적 측면에 초점을 맞췄다면, 스타인바흐(Haim Steinbach, 1944~)는 그것의 차별적 측면에 집중했다.
「연계적이며 차별적인」(상품이라는 점에서는 연계적이나 기호로서는 차별적)은 마치 에어 조단을 현대판 성배로 제시하는 것처럼 한 켤레의 나이키 농구화를 다섯 개의 플라스틱 잔과 함께 진열한다. 이로써 오브제들은 감상돼야 할, 즉 소비돼야 할 기호로서 제시된다. 쿤스와 마찬가지로 그도 관람자를 구매자로, 미술 감시가를 상품-기호의 물신 숭배자로 자리매김하며, 우리의 "소비주의 코드에 대한 열정"(보드리야르)이 다른 모든 가치(사용가치, 미적 가치 등등)를 포섭할 지경이라는 생각을 찬양한다.
벤자민 부클로는 이들이 "대중문화의 물신화를 비판적으로 절멸시키는 데 관여하고 있는 척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고급문화 오브제의 물신화를 오히려 더욱 강화시킨다. 어떤 제도적 장치에 대해서도 언급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설명에 따르면 그들은 동시대 미술 제도의 지위에 전혀 비판적으로 맞서고 있지 않다. 60년대와 70년대 선배 작가들이 전시의 조건을 반성하기 위해 레디메이드 오브제의 전시 방식을 확장했다면, 후배 작가들은 레디메이드를 상품이라는 그들 고유의 자리로 되돌려 놓았다.
앨런 맥컬럼(Allan McCollum, 1944~)은 우리의 욕망을 만족시키기보다는 좌절시키는 독특한 복제품을 수없이 만든다. 이런 방식으로 생산에서 차이를 만들어 소비에 대해 반성하도록 유도함으로써 생산과 소비 모두에서 대안적 방법을 자각하지 못하도록 작동하는 경제 활동 내의 다양한 종류의 만들기, 보이기, 보기, 소유하기에 대해 비판적 거리를 유지할 수 있도록 한다.
존나이트(John Knight, 1945~) 또한 점점 확대되는 미술의 상품화뿐 아니라 말 그대로 미술이 거대 기업처럼 돼 가는 현상에 관심을 두면서 제도 비판 미술의 해체적 기법을 전개했다. 그는 기업의 합병과 문화 마케팅이 기하급수적으로 확대됐던 레이건-대처 시기에 광고와 건축에서 널리 쓰인 디자인과 디스플레이 형식을 모방했다.
그의 '거울'연작은 외관상 주체적으로 보이는 회화가 기업의 현실적 지배에 대한 작은 보상으로서 기능함을 암시했다. 나이트는 가짜 기업 로고에 거울을 붙여 다양한 기하학적 형태로 만들었다. 부클로는 이에 대해 "기업이 결국 우리의 가장 깊숙한 내면의 생각까지도 결정하고 통제하게 되리라는 현실을 우리에게 상기시키기 위한 것이다. 같은 방식으로 사소한 가재도구인 거울에서 볼 수 있듯이 필경 공적인 사회적 기능으로부터 후퇴한 미학은 개인적 거울 공간 외에는 머무를 곳이 없다."라고 말했다.
80년대 작가들은 미술계와 그 너머에 대한 시장의 압박과 기업의 이해관계에 변증법적 방식으로 반응했다. 어떤 작가들은 그것을 끝까지 밀어붙이는 것이 그것을 파괴하는 일이라도 되는 듯 작업을 통해 재정 문제에 좌우되는 상황을 연출했던 반면, 다른 작가들은 비판적으로 반성하기 위해 레디 메이드란 장치의 프레임화 효과를 오히려 발전시키고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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