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게르하르트 리히터가 「1977년 10월 18일」을 그린다. 독일 미술가들이 역사화의 부활 가능성을 타진한다.
리히터의 1988년 회화 연작 「1977년 10월 18일」은 자본주의 타도를 위해 격렬하게 활동했던 바더-마인호프 그룹이 남긴 충격을 묘사한 작품이다. 이 연작과 함께 회화를 통해 독일 역사를 비판적인 성찰로 다시 보고자 하는 독일 미술가의 길고 복잡한 시도가 결말을 맺었다.
역사의 문제
회화에 내재된 역사적 진정성으로 회귀하고자 하는 주장과 그것이 와해됐던 다양한 순간들을 인지하고자 하는 주장 사이에는 대립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그 대립축을 따라 리히터와 키퍼를 위치시킬 수 있다.
첫째, 키퍼의 작업은 독일 나치 파시즘의 유산을 명시적으로 다루며, 리히터의 작업은 독일 정치계에서 최근에 일어난 사건에 초점을 맞추기 때문에, 이들의 작업이 다루는 현실의 역사적 사건들과 관련해 매개의 문제가 생겨난다. 이런 점에서 독일 역사의 재현 가능성에 대한 문제는 키퍼의 작업보다 리히터의 작업에서 더 복잡해지는데, 그의 회화가 역사적 경험을 재현할 자격과 능력을 지니고 있는지에 대해서까지 의문을 제기하기 때문이다.
둘째, 매개의 문제는 회화 제작 단계에서도 발생한다. 키퍼의 작업은 역사를 재현하려는 자신의 고유한 기획을 실행하기 위한 수단으로써 독일 표현주의 회화를 내세운다. 반면 리히터는 역사가 접근 가능한 것이라면 그것이 어느 정도까지 사진 이미지에 의해 매개될 수 있는지, 그리고 역사적 기억의 구축뿐만 아니라 그것의 착상에서도 얼마나 사진적 재현에 의존하고 있는지에 주목한다. 따라서 그의 「1977년 10월 18일」 연작은 회화를 통해 역사적인 경험에 매개 없이 접근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을 던지는 동시에, 회화가 비판적이고 역사적인 자기 성찰의 과정에 현실적으로 개입할 수 있음에 대해서는 긍정하고 있다. 더불어 이 연작은 최근 독일 사건인 바더 - 마인포흐 그룹에 초점을 맞추고 있기에 전후 독일의 정체성을 이해하려는 보다 큰 프로젝트의 일부를 이룬다. 이것은 키퍼의 작업이 각색한 것처럼 과거 나치가 실제로 자행했던 사건으로 회귀하기보다는, 오히려 그 2세대와 3세대의 역사적 궤적을 다루면서 수행되기 때문이다.
과거 나치의 사건이 등장하는 것은 키퍼의 1969년 작품인 「점거」연작에서이다. 이 연작이 사진 작업으로 완성된 사실은 리히터와 키퍼의 입장 사이의 모순을 더욱 복잡하게 만드는 요소이다. 키퍼가 이 연작에서 사용한 사진들은 일관되게 하나의 잡종이나 잔여물로 볼 수 있는 것으로, 즉 회화와 마찬가지로 신뢰할 수 없는 재현의 한 도구로 다뤄진다. 따라서 키퍼가 수집한 사진적 잔여물에는 매우 반사진적인 충동이 존재하며, 동시에 회화를 제작할 때 지푸라기나 흙 등의 비회화적인 재료들을 사용한다는 점에서 반회화적인 충동이 존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리히터나 팝아트 세대 미술가들과 달리, 키퍼는 유일한 대상으로서의 회화 또는 독특한 미적 체험을 산출하는 기예로서의 회화가 지닌 진정성, 즉 아우라적인 독창성을 드러낸다. 즉 19세기 회화가 숭고한 체험에 다가갔고 신표현주의도 그랬던 것처럼 사진도 숭고한 체험에 참여할 것을 요구한다.
문화사학자 에릭 샌트너는 키퍼를 분석하면서 그의 전략을 억압의 상황에 대한 하나의 “동종 요법적인”접근법으로 간주한다. 샌트너는 30~40년대 독일 역사의 유산과 맞대면하려는 키퍼의 의도에 공감하며, 이런 기획이야말로 전후 독일에 확립된 금기의 억압 장치를 와해시키기 위한 필수 시도라고 말한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리히터의 작업은 전후 독일 문화가 구제될 수 있다고 주장하기보다는, 오히려 전후 독일 문화와 뒤얽혀 있는 억압을 출발점으로 받아들이는 것 같다. 바더-마인호프 그룹 구성원, 다양한 풍경, 체포장면, 장례식 등을 그린 리히터의 회화는 1977년 슈탐하임 감옥에서 자살한 아드레아스 바더와 울리케 마인호프와 함께 비참하게 끝나 버린 이른바 ‘1968년 그 순간’의 유토피아적 열망의 결말을 재현하고 있다. 이들의 도상을 사용한 그의 작업은 유토피아적인 정치적 변혁의 가능성에 대한 독일 고유의 회의와 냉소주의를 표현하는 애가로 널리 인정돼 왔다. 또한 이 작업들은 이원적인 시도를 감행하는 독일 전후 세대의 삶과 역사에 대한 하나의 알레고리로서 간주됐다. 하지만 리히터 자신은 이런 독해 방식을 모든 측면에서 부인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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