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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0년 이후의 미술사(art since 1900) 책 공부/1980년대 노트

1980년 사진: '실재의 효과', 리처드 프린스, 제임스 웰링, 제임스 카세베르, 세라 찰스워스

by 책방의 먼지 2019. 10.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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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트로 픽쳐스가 뉴욕에 문을 연다. 일군의 새로운 갤러리들이 등장하여 사진 이미지와 그것이 뉴스나 광고, 패션에서 사용되는 방식을 문제 삼는 젊은 미술가들의 작품을 전시한다. 

 

"나는 내가 사진작가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문화에서의 사진의 역할과 관련된 문제들을 다뤄 왔다....... 그러나 사진을 하나의 문제로서 다루는 것이지 매체로서 다루는 것은 아니다." 세라 찰스워스(Sarah Charlesworth, 1947~)의 이 발언은 신디 셔먼, 바바라 크루거, 셰리 레빈, 루이즈 롤러와 함께 70년대 후반과 80년대 초반 갑작스레 떠오른 일군의 젊은 미술가들의 입장을 대변하는 것이었다. 리처드 프린스(Richard Prince, 1949~), 제임스 웰링(James Welling, 1951~), 제임스 카세베르(James Casebere, 1953~), 로리 시몬스(Laurie Simmons, 1949~) 같은 이들을 꼽을 수 있다. 이들은 당시 새롭게 전개되고 있는 논의에 주목했다. 예를 들면 시각적인 재현에 존재하는 성차의 문제를 전면에 내세우는 데까지 정교해진 페미니즘 이론이나, 이미지의 생산과 배포 그리고 수용의 전 맥락에서 질적인 변화가 진행되고 있는 대중매체에 관한 것이었다. 그들의 선배들이 "잭슨 폴록의 유산"과 투쟁했다면, 베이비 붐 세대인 이들은 스펙터클한 이미지-세계를 폭로하면서 동시에 그것과 공모하는 듯한 앤디 워홀의 모호한 모델과 투쟁했다. 

 

수열적인 것과 허상적인 것

그들은 형식주의 비평가들이 이해하는 것처럼 매체를 모더니즘 방식으로 '권한의 영역'에 설정하기보다, 모더니즘이 사진에서 기대했던 추상적인 표현이나 기록으로서의 지시성을 포스트모더니즘 방식으로 문제시하려 했다. 사진을 문제 삼는 이 같은 시도는 몇 가지 측면에서 이뤄졌다. 한편으로는 회화와의 연관 속에서 유일무이한 이미지로서의 가치를 가장한 예술 사진에 반대했고, 다른 한편으로는 뉴스에서는 합의의 효과를, 광고에서는 설득의 효과를 이끌어 내려는 미디어 사진에 의혹을 제기했다. 대개 사진 이미지를 차용하는 이런 작업은 신표현주의 회화와 그것이 억지로 재활용하고 있는 천재 화가라는 아우라에 반대한다. 이들 포스트모더니스트는 사진을 일종의 '수열적'이미지, 즉 원본 없는 복제로서 다뤘을 뿐만 아니라 일종의 '허상적(simulacral)'이미지, 즉 그것에 상응하는 지시 대상이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재현처럼 다뤘다. 다시 말하면 그들은 사진을 현실의 물리적인 흔적이나 지표적인 자국으로 간주하기보다는, '실재의 효과'를 산출하는 코드화 된 구축물로 보았다.   

사진의 수사학에 대한 이와 같은 탐색에 방향을 제시한 것은 롤랑 바르트였다. 허상에 대한 논의에서는 장 보드리야르와 미셸 푸코 그리고 질 들뢰즈 등이 중요한데, 보드리야르는 허상 개념을 통해 상품에서 진행된 최근의 변화를 이해하려 했고, 푸코와 들뢰즈는 재현에 대한 플라톤적인 오래된 구상에 도전하기 위해 이 개념을 사용했다. 

 

페미니즘에 이끌려 미술 작업을 시작한 찰스워스는 개념미술뿐만 아니라 팝아트의 표현 양식을 받아들임으로써 당시 주목을 끌기 시작한 대중매체에 나타난 여성 재현을 비판했다. 그녀는 동료들과 마찬가지로 이데올로기의, 혹은 "신화의" 작동방식(롤랑 바르트의 의미에서)을 드러내기 위해 스테레오타입의 이중화 전략을 사용했다. 그런데 그 작동 방식이란 하나의 그룹, 성, 계급에만 해당하는 특정 이익을 당연시하기 위한 방향으로 작동하는 것이다. 

리처드 프린스도 광고나 패션 이미지의 관습에 초점을 맞췄는데, 주체 구성에 대해 폭로하는 바가 있기 때문이다. 프린스는 이렇게 이미지의 패턴을 따르는 작업을 정체성, 즉 이미지의 존재 방식 패턴을 따르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제 이미지의 정체성이란 오래된 문화적 형식이 아니라 미디어의 재현을 통해 형성된다. 「엔터테이너」에서 그는 신문 광고용으로 제작된 어두침침한 나이트클럽 공연 장면을 재촬영해서, 공연하는 사람들이 검은색 플렉시글라스 판에서 둥둥 떠다니는 것처럼 보이게 했다. 얼어붙은 듯 으스스하게 나타난 흐릿한 얼굴은 사람들의 모호한 관음증을 자극한다. 나중에 프린스는 이 이미지들을 '갱스'라고 부르는, 반복과 차이의 유희를 담아내는 확대된 슬라이드 형식으로 분류했다. 대개 '갱스'의 주제는 오토바이 폭주족과 햇병아리 폭주족, 자동차 레이서와 서핑하는 사람 같은 진짜 갱들로, 비평가 제프리 리안이 말했듯 "고급문화의 헤게모니 외부에서 작동하는 하위문화이다." 그들의 이미지는 '매체를 통해 걸러지고 또 우리 정신에 의해 변형"되는데, 프린스는 우리의 관음증을 일깨워 이를 다시 검열하게끔 한다. 

리처드 프린스 「엔터테이너 Entertainers」 1982~83

 

실재 효과

제임스 웰링은 '실재의 효과'에 대한 일련의 탐구를 시작했다. 「잔해물」, 「섬」, 「폭포」 같은 제목의 이 작품들은 낭만적 풍경을 상기시켜 사진적 실재에 대해 우리가 투사하고 있는 바를 반성하게 한다.(바르트가 주장한 대로 여기에서는 일반적인 경우와 달리 '내포'가 '외면'보다 앞선다.) 바로 그 방법의 단순성이 이 이미지들을 다른 방식으로 읽을 수 있게끔 만들었다. 「......을 찾아서」는 옷감의 주름 사이에 놓인 가루반죽 조각이지만 높은 산등성이나 빙하의 유빙을 연상시킨다. 이 작업에서 낭만적 경험 '찾기'는 모호한 지시물의 탐구인 것이다. 

제임스 웰링 「......을 찾아서 In Search of......」 1981

 

제임스 카세베르도 70년대 후반부터 사진의 모호성을 탐구하는 작업을 해 왔다. 여기서 불확실성은 석고나 스티로폼으로 만든 일종의 건축 모델에서 생기는데, 카세베르는 마치 축소된 영화 세트 모형인 양 이것들을 연출하고 조명을 비췄다. 그의 모든 이미지는 모델과 그것이 지시하는 대상, 허구와 기록 사이의 무인 지대에 놓여있다. 그의 장소들은 꿈 혹은 신화의 속의 두려운 낯설음(언캐니)을 불러일으키는 공간이라는 일관성을 갖는다. 이 장소들은 재현이 부상하여 실재를 대체하는 일종의 환영이다.  

제임스 카세베르 「서트펜의 동굴 Sutpen's Cave」 1982

 

사진에 기반을 둔 이런 모든 작품에서 실재와 재현, 그리고 원본과 복제물의 위계는 다소 불안정해진다. 그리고 이미지의 토대를 살짝 무너뜨림으로써 관람자는 미묘하게 전복되는데, 사진이 항상 주체에게 부여하는 통제력, 즉 권한을 지닌 시점과 시선의 정확성이 부분적으로 철회되기 때문이다. "관람자는 자신의 관점에 따라 변형되고 왜곡되는 허상의 일부가 됐다."는 들뢰즈의 말에서처럼 관람자는 때로 이런 허상에 둘러싸여 있다고 느낀다. 환영이 불러일으키는 이런 혼란 속에서 사진이 갖는 실재의 효과는 의문에 붙여진다. 또한 사진의 관습적 지위, 즉 사진은 "코드 없는 메시지"(바르트)이며 사물을 명확하게 하고 사건을 진실하게 묘사하는 기록이라는 주장도 의문스러워진다. 20년 전에도 바르트의 주장은 비판적인 통찰을 보여 주는 것이었으며, 뉴스나 그 밖의 것에서 발견되는 사진적 재현이 진리를 담고 있다는 주장에 대한 의문의 재기는 당시에도 시급한 것이었다. 그러나 현대의 이미지-세계에서는 점점 더 허상적인 것이 지시적인 것을 정복하고 있다. 아마도 오늘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재현에 대한 비판보다는 허상에 대한 비판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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