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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0년 이후의 미술사(art since 1900) 책 공부/1960년대 노트

1968년b 개념미술, 세스 시겔롭, 로버트 모리스, 댄 그레이엄, 조지프 코수스

by 책방의 먼지 2019. 8.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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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념미술이 솔 르윗, 댄 그레이엄, 로렌스 와이너에 의해 출판물의 형식으로 등장하고, 세스 시겔롭이 첫 번째 개념미술 전시를 기획한다.

 

개념미술은 모더니즘의 주요한 두 유산, 즉 레디메이드와 기하학적 추상이 합쳐지는 지점에서 등장했다. 레디메이드의 유산이 플럭서스와 팝아트 작가들의 작업을 통해 전후의 젊은 미술가들에게 전해졌다면, 전쟁 이전의 추상과 60년대 말의 개념적 접근법을 연결해 준 것은 프랭크 스텔라와 미니멀리스트들의 작업이었다. 

개념미술이 조직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한 1968년 이전인 60년대 초반, 플럭서스와 팝이 융합돼 로버트 모리스의 「카드 파일」(1962)이나 에드 루샤의 「26개의 주유소」와 같은 작업들로 나타났다. 루샤의 작업에서 사진과 인쇄된 책이라는 배포 형식을 강조하는 방식으로, 모리스의 작업에선 자기 반영적 모더니즘, 즉 자기 지시성의 전략을 통해 자신의 자율성을 주장하는 미술을 언어적인 정의로 바꿔 내어 미학적 자율성의 가능성 자체를 붕괴시키는 지점으로 밀어붙인 방식으로 개념미술의 입장이 확고하게 자리 잡았다. 그 후 이 두 작가는 사진과 텍스트를 이용한 전략들이 발전하는 데 있어 중심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개념주의 미학의 형성에 중대한 기여를 했던 두 번째 요소는 프랭크 스텔라, 애드 라인하르트, 도널드 저드의 작업에서 구현했던 미니멀리즘적 추상이었다. 이 미학은 분리되어 있고 자율적인 미학적 경험으로 정의되는 시각성(혹은 광학성)이라는 모더니즘적 관념을 비판했다. 그리고 미술 작품을 배포하는 새로운 방식(책, 포스터, 잡지) 그리고 (정방형의 화면이든 견고한 조각이든 간에) 미술 대상의 '공간성'에 대한 논의를 진행했고, 더 나아가 미술 대상의 유일무이성이라는 관념을 문제 삼았다.(미니멀리즘이 비록 산업적인 생산 방식과 테크놀로지적 복제 방식을 받아들이긴 했지만 유일한 대상으로서의 지위를 벗어나지는 못했다.)

 

비판 전개하기

만약 시각성, 물리적인 구체성, 미학적 자율성을 개념미술이 그 내부로부터 비판을 시작했던 모더니즘적 양상들이라 한다면, 이 비판은 일찍이 1963년 솔 르윗의 「붉은색 정사각형, 흰색 문자들」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후기 모더니즘 회화와 조각의 극단적 환원주의는 자기 정의를 통해 각각의 자율성을 확보하려는 환원주의적 충동에서 나온 것이었다. 그 결과 환원주의는 즉물적인, 즉 언어적 '정의들'을 생산하는 전략을 통해서 시각적이고 형식적인 자기 반영성에 도전하기 위한 비교적 그럴듯한 발판이 됐다. 르윗은 작품의 시각적 구조를 그 시각적 단위들의 색이나 형태의 이름들로 대체함으로써 작품의 관람자를 독자로 변형시켰다. 여기서 자율적인 시각적 대상은 고도로 우연적인 시각적 대상, 즉 수신자가 개입함으로써 특정한 맥락에 따라 이해를 달리하는 대상으로 변형됐다고 할 수 있다. 

솔 르윗 「붉은색 정사각형, 흰색 문자들 Red square, White letters」 1963

모리스의 「카드 파일」이나 「제작되는 소리를 내는 상자」와 같은 작업에서는 모더니즘의 패러다임이 요구했던 한정 지음과 상대적 자율성을 넘어섬으로써 그 넘어섬의 경험 앞에서 모더니즘의 패러다임이 깨지기 시작하는 모습이다. 

1968년 열린 개념미술의 첫 번째 전시는 개념주의 미학의 비평가이자 흥행주 역할을 맡았던 세스 시겔롭에 의해 기획됐다. 이 전시를 통해 이후 개념미술을 정의하는데 영향을 끼치게 될 여러 양상들이 명백하게 드러난다. 그 양상들 가운데 하나는 대체보충적인 것이 일종의 충격가치, 즉 시각장으로부터 철수하는 동시에 이것 자체를 스펙터클의 형식으로 연출하는 기이한 역설을 통해 충격 가치를 산출하게 만든 시겔롭의 전략적인 방식이었다. 시겔롭은 "우리는 사무실 공간에서 전시할 것이며, 갤러리는 필요 없다. 우리는 인쇄물을 전시할 것이다. 그것은 곧 사라져 버릴 작업이며, 단지 일시적으로만 정의되고, 문자에 근거를 두고 있으며, 실제의 물질적인 장치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라고 말하면서 시각적 작업이 역사적으로 퇴화하고 있으며 대중문화적이고 복제된 사물이 이를 대체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로버트 모리스 「카드 파일 Card File」 1962

전략들과 「진술들」 

로렌스 와이너의 책 「진술들」(1968)은 그가 공표한 세 가지 법칙을 따랐다. 첫째, 미술가는 작품을 구성할 수 있다. 둘째, 작품은 조립될 수 있다. 셋째, 작품이 결코 제작되지 않을 수도 있다. 이렇게 함으로써 그는 미술 작품의 물질적인 지위를 통제하고 궁극적으로는 결정하는 것이 바로 수용의 조건임을 시사했으며, 이를 통해 미술 제작의 전통적인 위계를 완전히 역전시켰다. 와이너에게 있어서 "작품의 소유주(수용자)는 제작자처럼 작품의 물질적인 지위를 결정하는 역할을 한다." 

「진술들」의 모든 작업은 물질적인, 즉 조각적인 정의의 가능성을 주장한다. 여기에 있는 모든 것은 만들고자 하는 사람들에 의해 실제로 만들어질 수 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물질적인 형태를 갖지 않더라도 '예술'이라고 말해질 수 있다.

「진술들」이 형태를 그 프레임을 구성하는 벽과 결합시키는 한, 작품들은 제도를 지탱하는 구조뿐만 아니라 전시장의 물리적 표면과도 합쳐지게 됨으로써 서로 분리된 시각적 실체로서의 가능성이 부정된다. 이런 역설, 즉 시각적 자기 반영성이라는 모더니즘의 본질이 이 지지체들의 우연성과 맥락성 속에 깊숙이 놓여 있게 되는 역설은 와이너의 「진술들」에서 나타나는 하나의 고전적인 개념적 전략이다. 

댄 그레이엄 「미국을 위한 집, '스플릿 레벨'과 '그라운드 레벨', '두개의 집이 있는 집' Home for America 'Split Level' and 'Ground Level' 'Two Home Homes'」 1966

개념미술의 또 다른 주요 요소는 사진개념주의다. 1966~67년에 여러 차례에 걸쳐 제작된 「미국을 위한 집」 같은 작업에서 댄 그레이엄(Dan Graham, 1942~)은 미니멀리즘 조각의 코드화 체계(수열적인 반복을 통해 배열된 단순한 기하 형태들)를 뉴저지와 그 밖의 지역에 있는 구조물들에서 찾아냈다. 워홀과 루샤 이후의 미술가들에게 사진은 이미지, 대상, 맥락, 행위, 상호 작용의 지표적 흔적들을 무작위적으로 쌓아 놓은 것에 지나지 않게 됐는데, 이것은 공적 공간의 건축적 차원과 사적인 상호 작용의 사회적 차원으로서의 복잡성을 개념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주제로 만들기 위해서였다.

 

Joseph Kosuth 「제2의 탐구 The Second Investigation」 1969~74

조지프 코수스는 뒤샹에서 라인하르트에 이르는 다양하고 모순적이기도 한 모더니즘의 요소들에 대한 독단적인 종합으로부터 개념미술에 대한 자신의 이론을 연역해 냈다.(코수스에게 뒤샹의 레디메이드들은 "현대미술의 시작"이었는데, 왜냐하면 그것들은 미술의 본성을 "외형에서 개념으로" 바꾸었기 때문이다.) 「하나 그리고 세 개의 의자들」(1965)에서 그는 레디메이드를 사물, 언어 기호, 사진 복제물 등 세 개의 연관된 부분으로 나눔으로써 확장시켰다. 「제2의 탐구」 같은 작업에서 그는 「철학 이후의 미술」에서 표현한 것처럼 "미술의 맥락 속에서 미술에 대한 하나의 논평으로서 제시된 명제"라는 자신의 주장을 실행으로 옮겼다. 언어적 모델, 수학 법칙, 논리적 실증주의 원리에 영향을 받은 코수스는 그의 프로젝트를 "미술이 결국 의미하게 된 것처럼 '미술' 개념의 토대에 대한 연구"라고 정의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엄격한 분석적인 접근 방식은 그 자신의 탐구에는 유효했을지 몰라도 당시 등장하고 있던 다른 여러 작업에는 적용되기가 어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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