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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0년 이후의 미술사(art since 1900) 책 공부/책 속 상자

[이론] 애보리진 미술(Aborigine, 호주 토착 원주민)

by 책방의 먼지 2019. 10.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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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보리진(Aborigine, 호주 토착 원주민) 미술 가운데 가장 유명한 것은 호주 북쪽 지역과 중앙 지역에서 제작된 '꿈의 시대' 회화들이다.(앨리스스프링 근처 유엔두무 공동체 출신의 꿈의 시대 작가들 여섯 명이 《대지의 미술사들》전에 소개됐다.) 애보리진 신앙에서 꿈의 시대란 선조들이 땅과 사람의 형상을 만들어 세계를 창조한 시기를 말하며, 꿈의 시대 회화는 바로 이 창조 행위를 상기시키는 그림이다. 이 회화들에서 창조자의 모습은 각기 다른 형태(인간, 동물, 식물)로 나타내는데, 북쪽 지역에서는 보다 재현적인 형태이고, 중앙 지역에서는 선명한 점무늬와 선을 중심으로 구성된 보다 추상적인 경향을 보인다. 

꿈의 시대 미술은 현대의 전 지구적 문화에서 '의고주의'와 '동화' 사이의 제3의 길을 택한 좋은 예이다. 이 회화에서 채택된 디자인은 고대부터 전해 내려온 성스러운 의례에서 사용되는 모티프와 패턴(2만 년 이상 거슬러 올라가는 동굴벽화)에서 유래한다. 반면에 그 역사가 30년도 채 안 된 캔버스에 그려진 꿈의 시대 회화는 기술적으로는 70년대 초 아크릴 물감의 도입으로 활성화됐으며, 상업적으로는 서구 수집가들 사이에서 이국적 이미지에 대한 수요가 늘면서 촉발되었다. 그런 까닭에 애보리진 미술은 특정 공동체의 의례 행위를 기반으로 제작되고 있음에도, 여행자적 취향, 문화 상품, 정체성의 정치학이란 전 지구적 충동으로 가득 차 있다. 

아프리카와 그밖에 다른 지역에서 보이는 유사한 형식의 혼성미술과 마찬가지로 꿈의 시대 회화 역시 이런 충동을 기반으로 번성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비록 자주 혼성된 언어라고 경시되지만, 고유의 언어와 외래 재료의 혼성이야말로 바로 그 창조성의 일부이다. 혼성미술의 추상성은 근대 미술이 갖는 엘리트 취향에 끌린것이기도 하지만, 그들 고유의 오랜 전통에도 충실하게 남아 있는 요소이다. 그리고 캔버스에 아크릴과 같은 근대적 기술을 빌려 오기는 했지만, 그것을 통해 인간의 몸이나 나무껍질, 땅에 그려졌던 고대 모티프들을 계속해서 정교하게 다듬는다. 요컨대 꿈의 시대 회화는 외부인들의 '진정성'을 향한 욕망을 자극하는 측면이 있지만, 그 자체만으로도 진정한 미술이다. 이런 형상의 사용은 일방적으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가령 호주의 현대 작가들 역시 원주민의 모티프들을 사용하고 있으며, 콴터스 항공사는 비행기를 원주민 양식으로 장식했다. 비록 동등한 관계라고 할 수는 없을지라도 형상의 사용에서 상호교환이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이 교환은 20세기 초 피카소, 마티스 등의 원시주의적 작품에서 사용된 아프리카 조각에서와 같이 근대 미술에서 나타난 이국 취향의 사례들과는 분명히 구별돼야 한다. 또한 20세기 중반에 활동한 몇몇 추상표현주의자들이 그 근원으로 미국 원주민 미술을 투사하는 것이나, 역시 같은 시기에 활동한 장 뒤뷔페와 다른 작가들이 절대적 아르 브뤼, 즉 비문명화된 '아웃사이더 미술'을 가정하는 것과도 분리돼야 한다. 꿈의 시대 회화나 이것과 유사한 형식의 다른 미술에서는 '타자'에 의해 서구가 차용된다.

남호주미술관의 큐레이터 피터 서턴(Peter Sutton)은 "원주민 미술에서 대칭을 사용하는 것과 그 미술이 호혜, 교환, 평등의 균형을 강조하는 것 사이에는 매우 강한 유대가 있다."고 말했다. 이와 동시에 우리는 다른 대륙의 토착민들과 마찬가지로 호주 애보리진들이 오랫동안 강압적 이주는 물론 그보다 더 심한 처우를 당했음을 잘 알고 있다. 프란츠 파농을 다시 인용하자면, "원주민들이 살고 있는 구역은 이주민들이 거주하는 구역을 보완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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