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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0년 이후의 미술사(art since 1900) 책 공부/책 속 상자

[이론] 소비에트 기관

by 책방의 먼지 2019. 10.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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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 프랑스 혁명 때처럼 1917년 2월 봉기부터 1917년 10월 레닌이 권력을 잡을 때까지, 그리고 1924년 레닌 사망 후 스탈린 시대에 이르기까지 혁명 러시아에서 신설 기관의 이름을 짓거나 옛 기관의 이름을 개명하는 일은 고도로 정치적인 색채를 띠었다. 갓 태어난 소비에트의 이와 같은 열광적인 세례 행위는 관공서를 비롯하여 러시아의 입체-미래주의 전성기이니 10년대에 증가한 다수의 아방가르드 그룹에 영향을 미쳤다. 혁명 이전부터 존속하던 단체들의 부조리한 이름(다이아몬드 잭, 당나귀 꼬리, 전차선로 v 따위)에는 그들이 조롱하던 과거의 상징주의의 흔적을 여전히 간직하고 있었다. 볼셰비키 세력과 이에 즉각적으로 봉사할 준비가 된 인텔리겐치아 일부는 두문자어를 급진적인 새로운 시대의 백지 같은 상태를 표현하는 최상의 기표로 삼았다. 두문자어는 경제적이면서 '시적으로' 낯선 것이었다. 

 

언어학적 장치가 가진 정치적 성격은 일찍이 1906년 프롤레트쿨트(프롤레타리아 문화)라는 신조어와 함께 확립됐다. 1909년에 레닌이 이 단체의 지도자인 알렉산드르 보그다노프를 볼셰비키 당에서 제명했을 만큼 이 조직은 레닌의 골칫거리였지만 이 조직이 실질적으로 활발한 활동을 한 것은 "세계를 뒤흔든 열흘"이후였다. 그러나 신정부는 포괄적인 부처인 나르콤프로스(인민계몽위원회)를 설립하여 프롤레트쿨트의 부상을 제압했다. 자유주의자 아나톨리 루나차르스키가 위원장을 맡은 나르콤프로스의 영역은 문화, 선동, 교육을 포괄하고 있었으며 콤푸츠(Komfuts, 공산주의 미래주의자)를 비롯한 모든 예술 단체가 소속되어 있었다. 나르콤프로스의 미술부인 IZO는 1918년 1월에 다비트 시테렌베르그의 감독하에 페트로그라드에 설치됐다. 여행 경험이 많은 친불의 절충주의 모더니즘 화가인 시테렌베르그는 소비에트의 모든 미술관을 재편하는 등 소비에트 아방가르드의 다양한 성향을 충족시키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그의 모스크바 대리인은 타틀린이었다. 

 

나르콤프로스가 출범시킨 다수의 새로운 기관 중에는 스보마스(Svomas, 국립자유스튜디오)가 있었다. 스보마스는 1919년에 설립되어 1920년에 브후테마스(Vkhutemas, 국립고등미술/기술공방)로 바뀌었다. 브후테마스는 비슷한 시기에 개교한 독일 바우하우스의 소비에트 판이라고 할 수 있다. 1920년 모스크바에 설립된 인훅은 페트로그라드에 지부인 진훅을 두었다. 말레비치는 그가 비텝스크에 직접 설립한 우노비스('신미술 찬동자'의 머리글자를 따서 만든 이름)학교가 1922년 문을 닫자 진훅으로 몸을 숨겼다. 19121년 신경제정책 시기에 사적 경제 활동이 부활한 후에도 문화에 대한 정부의 장악력은 수그러들지 않았고 두문자어 선호 경향도 마찬가지였다. 즉 1922년에 라흔(Rakhn, 러시아예술과학아카데미)으로 편입됐지만 그 후 급속하게 세력을 잃었다. 그리고 '혁명러시아예술가연맹'이 급부상했지만 10년 후 모든 예술의 공식 기조로 '사회주의 리얼리즘'이 가차 없이 수립되면서 막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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