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0년 이후의 미술사(art since 1900) 책 공부/1960년대 노트16 1967년b 아르테 포베라, 자니스 쿠넬리스, 피노 파스칼리, 파졸리니, 폰타나, 만초니 ▲ 이탈리아 비평가 제르마노 첼란트가 첫 번째 아르테 포베라 전시를 연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이탈리아 예술 작업은 아르테 포베라(Arte Povera, 불쌍한 또는 가난한 미술)로 다시 확립됐는데 미국 미술의 헤게모니, 특히 미니멀리즘 조각에 맞서 겨뤘고 전쟁 이전의 이탈리아 아방가르드의 유산을 그것이 가지는 모든 내적 모순과 함께 전쟁 이후의 맥락 안에 복원시켰다. 모순들의 첫 번째는 테크놀로지였다. 이탈리아 미술가들은 미국 미니멀리즘 조각의 기본 방향 혹은 제작 방식을 테크놀로지로 잘못 이해했고 이에 따라 반테크놀로지적인 자세를 표방했다. 두 번째, 사진을 배제했다. 세 번째 특징은 아르테 포베라가 작업의 재료 및 제작 과정과 맺는 특이한 관계이다. 아르테 포베라는 다른 지역의 아방가르드 작업에.. 2019. 7. 29. 1966년b 루이즈 부르주아, 에바 헤세, 쿠사미 야요이 ▲ 《기이한 추상》전이 뉴욕에서 열린다. 여기서 루이즈 부르주아, 에바 헤세, 쿠사미 야요이 등의 작품이 미니멀리즘 조각 언어에 대한 표현적인 대안을 제시한다. 루이즈 부르주아(Louise Bourgeois, 1911~)는 어렸을 때부터 태피스트리를 복원하는 가업을 도왔다. 손상된 형상들을 수선하는 이 일은 그녀의 인격 형성에 영향을 끼쳤을지 모른다. 왜냐하면 이후 그녀의 미술은 손상과 수선을 연상시키는 것들 사이에서 동요하기 때문이다. 그녀의 설명에 따르면 이 동요의 핵심은 집 안에 정부를 들여놓음으로써 가정을 깨뜨린 그녀의 아버지가 있었다. 초기 부르주아는 초현실주의의 영향을 받은 작품을 제작하였고 그녀 특유의 양식을 60년대 초에 들어서야 나타나기 시작했다. 당시 그녀는 석고, 라텍스, 직물 등으로.. 2019. 7. 27. 1967년a 로버트 스미스슨, 브루스 나우먼 ▲ 「뉴저지 퍼세이익 기념비로의 여행」을 발표한 로버트 스미스슨이 60년대 후반 미술 작업의 개념으로서 '엔트로피'를 제시한다. 로버트 스미스슨은 초기에 발표한 자신의 글 「엔트로피와 새로운 기념비」(1966)에서 "줄지어 놓여 있는 상품은 소비자의 망각 속으로 빠져든다. 내부의 이런 우울한 복잡성은 미술에 활기 없고 지루한 것에 대한 새로운 소재를 제공한다. 이 활기 없음과 지루함이 오히려 천부적인 재능을 가진 많은 미술가에게 영감을 준다."라고 쓰며 곧이어 로버트 모리스, 댄 플래빈, 저드 등의 작업을 "과잉-단조로움"개념을 통해 분석하며 미니멀리즘에 대한 최초이자 탁월한 평론을 내놓는다. 역전된 폐허 스미스슨의 글 제목이 암시하는 것처럼 그 모델은 엔트로피 법칙이었다. 그것은 그의 모든 미술 작업을.. 2019. 7. 26. 1966년a 마르셀 뒤샹, 「주어진」 ▲ 마르셀 뒤샹이 필라델피아 미술관에 「주어진」 설치를 완성한다. 점점 커져 가던 젊은 예술가들에 대한 그의 영향력은 사후에 공개된 이 새로운 작품과 더불어 절정에 이른다. 1960년 제스퍼 존스는 "뒤샹과 더불어 언어는 가장 강력한 것으로 등장하게 된다..... 뒤샹의 「큰 유리」는 그가 작품을 시각적이거나 감각적인 것이 아닌, 하나의 지적 경험으로 사고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라고 썼다. 핍쇼 작품 제작을 위한 이 세 개의 '패러다임' 혹은 모델은 60년대 초반 미국의 문맥에 확실히 정착했다. 레디메이드는 도처에 널려 있었고 개념상 팝아트의 보호막을 형성했을 뿐만 아니라 플럭서스의 작업에도 철저히 스며들었다. 지표는 존스의 작품에 계속해서 나타났고 로버트 모리스와 브루스 나우먼이 제작한 신체 주형물에.. 2019. 7. 24. 이전 1 2 3 4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