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미술사를 훑어본다는 느낌으로 읽어 보기에도 좋고 그 시대에 맞는 이론가들 철학자들의 이론이 무겁지 않을 정도로 제법 상세히 적혀있어 미학이 어떻게 발견되어 철학적인 사유와 예술 사이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지 기본적인 개론을 쌓기에 좋은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읽으면서 머릿속으로 미술에 대한 정리가 잘 되어 더욱 좋았다.
그중 ‘미학’이라는 용어가 쓰이기 시작한 18세기 전후 미술에 관해서 내가 요점 정리하고 싶은 부분들의 책 속으로 들어가 보자.
<이성과 감성이 공존한 시대> 17-8세기
- 데카르트의 합리론과 17세기 고전주의
고전주의 예술은 모방이라는 르네상스 시대의 생각을 이어가지만, 작품 창작이라는 실제적인 요구보다 합리론 철학에 근거를 둔 이론을 이루려 했다. 자연의 보편적인 것을 이성을 통해서 인식할 수 있다는 데카르트의 생각을 예술에도 적용하려 했고, 명석판명한 관념과 유사한 미와 예술의 규범과 원리들을 만들어 내려했다.
이에 미술은 국가가 직접 나서서 통제하고 관리하려 했다. (시는 이성적 규칙에 따르는 정확성이 있어야 하고 지식을 줄 수 있어야 한다고 브왈로는 말하였고, 연극도 훌륭한 작품이 되기 위한 규칙이 만들어졌다.) 루이 14세 시대에 왕립 회화 조각 아카데미 설립하고 미술의 규범과 원리를 만들어 통제하려 했다. 이성적인 이해를 전제로 데생과 비례를 가장 중요한 기준으로 삼고 과거와 현재의 화가들의 작품들을 점수화해서 교본으로 제시했다.(고대 예술가들->라파엘로-> 푸생-> 색채 강조한 베네치아 화파 순) 하지만 이런 규칙들이 작품 창작과 감상에선 지켜질 수 없었다. 17세기 말이 되면 훌륭한 그림을 위해 무엇이 더 중요한가에 대한 논쟁이 일어났는데 이성에 호소하는 데생 중시한 푸생파와 색채를 더 중요시한 루벤스파가 대립하며 논쟁하였다. 루이 14세가 죽고 아카데미의 권위가 퇴조하면서 루벤스 파의 주장이 힘을 발휘하게 된다. 고전주의에서 감성적 표현과 색채를 강조한 로코코 미술이 등장하였다.
- 감성적 인식의 학문으로서의 미학
라이프니츠는 우리의 인식에는 명석하면서도 판명한 인식도 있고, 명석하지만 혼연한 인식도 있다고 설명하며 시나 그림과 같은 예술을 통한 인식이 그 예가 된다고 말한다. 시를 읽거나 그림을 볼 때, 우리는 그것이 잘됐는지 잘못됐는지, 만족을 주는지 아닌지에 대해서는 명료하게 알 수 있다. 그렇지만 누군가가 그것이 무엇인지를 묻는다면, 정확하게 말하지 못한다. ‘나도 모를 그 무엇’ 이런 예술을 통한 지식은 과학을 통해 얻는 지식과는 다르다고 한다. 그의 생각은 바움가르텐 1714-1762에게 영향을 주었다. 바움가르텐은 앞의 인식은 이성이며, 그를 다루는 학문을 논리학이라 하며 뒤의 인식은 예술을 통한 인식이고 감성을 통해서 이루어지며, 학문의 명칭을 ‘에스테티카aesthetic’라고 명명했다. 비로소 미와 예술을 대상으로 하는 학문의 명칭과 감성적 인식을 다루는 학문이라는 미학의 영역이 정해졌다.
- 이성 대신 상상력과 취미-경험론적 미학
경험론에서 예술 창작과 관련해 주목할 것은 상상력이다. 실제적인 경험의 관점에서 볼 때, 창작의 근거가 이성이거나 그것과 비슷한 것이 될 수 없다는 점에서 상상력에 주목했고 이 상상력은 감각적인 대상과 창조적으로 관계를 맺는 능력이며 작품의 창작 능력이라고 한다. 천재 개념도 정리되었다. 천재란 규범이나 원리를 뛰어넘어 독창적이며 위대한 작품을 만들어 내는 능력이나 그것을 가진 자를 말한다. 전통이나 권위에 얽매이지 않고 새로움을 창조하며, 예술에 법칙을 부여하는 존재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 자신도 어떻게 만들어 냈는지를 설명할 수 없다고 한다. 설명할 수 없으니 훈련시키고 교육시킬 수도 없다는 것(천재를 훈련과 교육을 통해 발달시킬 수 있다고 본 르네상스나 고전주의의 주장과는 달리), 경험론에서는 천부적인 것으로 여기고 있다.
- 미적 가치의 다양성과 숭고
아름다움이란 특정한 성질로 고정되는 것이 아니라, 무관심적으로 관조할 때 즐거움을 주는 다양한 대상과 성질로 보아야 한다. 대상의 성질보다 대상에 대한 주관의 반응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고, 다양한 종류의 아름다움이 있을 수 있다는 것, 미가 아닌 다른 가치가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이 나타나며 이에 주목한 것이 ‘숭고’ 개념이다. 버크가 최초로 미학적으로 숭고를 정의했다. 숭고는 대상을 처음 대할 때는 위협적이며 무시무시한 힘과 크기로 인해 그것과 조화를 느끼지 못하고 공포의 감정을 갖게 될 때,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것들이 안전하고 통제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극복할 수 있을 때, 그로부터 생명감이나 삶의 의지와 기쁨을 갖게 되면서 나타나는 것이라고 한다. 그의 숭고 개념은 합리론적 미학이 억압하고 외면했던 예술의 다양한 요소들을 허용하게 했다는 점에서 18세기 미학의 가장 큰 업적 중의 하나로 여겨진다.
<미학의 전성기를 이룬 독일 관념론>
- 비합리주의 철학과 예술-쇼펜하우어 1788-1860, 니체 1844-1900
쇼펜하우어와 니체의 사상도 인간의 내면에 초점을 두나 인간의 본성을 정신이 아니라 욕망이나 의지라 본점이 비합리주의 철학의 흐름을 이루게 된다. 쇼펜하우어는 예술 작품의 창작은 예술가가 현상계 속의 혼란한 것들을 제거하고, 순수 이념을 추출해서 작품에 재생하는 것이라고 한다. 따라서 예술가는 시공간과 인과성의 원리를 떠나 사물을 보는 법을 알아야 하며, 천재성이 요구된다. 그는 예술이 삶의 고통으로부터 일시적인 도피가 될 뿐이며, 영구적인 도피를 위해서는 불교적인 해탈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니체는 이데아나 신 절대자에 의존한 삶과 세계를 설명하는 형이상학적인 관점을 비판한다. 신은 죽고 종교적인 믿음도 붕괴된 상황에서 인간 본성 안에 있는 심미적인 본성이 종교의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보고, 예술에 관한 주장을 펼치고 있다. 예술 창작의 원천으로는 인간 본성인 두 개의 강렬한 충동, 아폴론과 디오니소스적인 충동이 대립과 조화를 이루면서 예술의 역사가 만들어진다고 말한다. 아폴론적 충동은 고통과 갈등으로 가득 찬 세계를 극복하고, 완전하고 조화로운 세계를 이루려는 충동이라고 한다. 이에 의한 예술에서는 질서나 비례 같은 형식 미가 강조되고 조형 예술에서 이런 특징이 두드러진다고 한다. 디오니소스적 충동은 이상적이며 완전한 것을 꿈꾸지 않고 현실에 적극적으로 몰입하려는 충동이라고 한다. 이런 예술가는 의지와 욕망에 찬 자신을 잊어버리고 현실에 몰입해 도취하려 하고 이런 도취와 생명력을 통해 작품을 창작할 때 대립하고 갈등했던 인간과 인간 또는 인간과 자연 사이에 조화가 이루어지고 하나가 되는 순간이 찾아오며 삶의 고통이 환희로 바뀌게 된다고 한다. 대표적인 것에는 음악과 춤이 있다고 한다.
<표현으로서의 예술>19세기
17~8세기는 예술과 미학에서 다양하고 풍부한 성과들을 만들어 냈다. 예술에서 명석판명한 원리를 찾으려 했던 고전주의에서부터 상상력과 취미를 강조한 경험론적 미학을 거쳐 합리론적 미학과 경험론적 미학의 비판적인 종합을 이루려 한 칸트에 이르렀고, 셀링은 예술적 상상력을 통해서 칸트가 인식의 한계로 설정한 ‘물자체’에 이를 수 있다고 했고, 헤겔은 예술이 절대자의 이념에 이르기 위한 인간 정신의 산물이며 절대정신의 한 단계라는 절대적 관념론의 관점을 나타냈다. 미학적인 흐름이 이렇게 전개되면서 고전주의는 활력을 잃을 수밖에 없었고, 예술은 모방이라는 전통적인 주장도 힘을 잃게 되었다. 낭만주의는 이런 맥락에서 등장했으며, 전 세기의 미학적 성과들에 영향을 받은 예술 사조였다. 예술가들은 미학의 성과에 부합하는 새로운 원리를 찾아서 예술 현상에 적용하려고 했다.
예술이 대상의 모방보다 인간의 주관적인 영역에 속한다는 생각은 예술가로 하여금 내면의 사고나 감정에 주목하는 새로운 예술을 시도하게 했다. 작품의 창작 능력으로 상상력에 주목하고, 상상력이 작품의 구성을 넘어 진리를 인식하는 능력이라고까지 생각했다.
감정은 인간이 세계나 자연과 통하는 통로로 여겨졌으며, 예술을 통해서 자연의 진리에 이를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감정이 예술 작품의 창조의 근원이면서 지식의 원천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 무한한 것의 동경과 감정의 표현-낭만주의 19세기
낭만주의 그림이 보인 무한한 것을 향한 동경은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암시하려는 예술로 이어졌다. 감각적인 형태 속에 정신적인 것을 담아내는 상징이라는 예술 언어에 주목하게 되었다.
- 모방론을 대신하는 표현론 19세기 말~20세기 초
예술 작품과 대상의 관계보다 작품과 예술가의 관계에 더 중점을 두게 되고 표현론이 등장하게 된다. 표현론은 크게 세 부류가 있다. 첫째는 예술가가 자신의 느낌이나 감정을 나타낸다는 의미, 둘째는 예술가가 나타낸 감정을 감상자가 느낀다는 의미이며, 셋째는 예술 작품 자체안에 표현적인 속성이 담겨 있다는 의미이다.
감정의 표현이라는 주관적인 현상을 객관적인 이론으로 만들려는 표현론의 성과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표현론은 낭만주의 이후 나타난 주관적 경향의 작품들을 새롭게 보게 하는데 기여했다. 특히 후기 인상주의자인 고흐나 고갱으로부터 시작된 주관적 경향의 20세기 현대 미술을 이해하는 데 있어 영향력을 발휘했다.
20세기가 되면서 미학자들이 모방이나 재현 대신 새로운 개념으로 표현적 가치를 주장했지만 이는 고대에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계속해서 이어져왔다. 헬레니즘 미술을 대표하는 라오콘 군상이나 미켈란젤로 말기 작품에서도 감성적이며 표현주의적 특성을 볼 수 있고 감성적 표현을 강조했던 바로크나 로코코의 불규칙적이고 불균형적인 형태들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이렇게 본다면 그 기원은 고대까지 올라가 찾을 수도 있을 것 같다. 시를 뮤즈 여신에 의해 영감을 받아 창작되는 비합리적인 활동이라고 본 프라톤의 예술론이나 시와 음악 무용이 결합된 코레이아의 창작 근거를 열정이라는 비합리적인 것에서 찾으려 한 점들도 그 예로 들 수 있다. 예술 창작을 비합리적인 근거로 설명하려 했던 주장들이 바로크 로코코 낭만주의에 이르면서 감정의 표출이나 상상력을 통한 표현이라는 생각을 갖게 했고, 표현론으로 이어졌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는 고대와 달리, 신이 아니라 예술가라는 인간의 내면에 있는 비합리적인 성향으로 여기고 주목한다는 차이점을 나타낼 뿐이다. 이런 점이 모방에 구속받지 않는 자유롭고 독창적인 예술로 향하게 했고, 주관적 표현주의적 경향의 다양한 현대 미술로 이어졌다고 할 수 있다.
이후 현대미술에 관해서는 미학과 미술3에서 다루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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