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정신분석은 관념론이 아니다 / 트라우마로서의 실재 / 꿈과 깨어남의 이론 / 의식과 표상 / 신은 무의식이다 / '프로트-다' 놀이에서의 대상 a
정신분석이 우리를 관념론으로 인도하는 것처럼 보이고 이 때문에 비난을 받았다. 비난하는 자들은 정신분석이 주체의 조건에 의해 이미 처음부터 주어져 있는 원초적이고 내적인 어떤 욕구들이 있다고 생각하면서 우리를 그러한 욕구들의 존재론으로 몰고 가고 있다고 비판하지만 라캉은 정신분석만큼 경험의 중심에서 실재의 중핵을 향하고 있는 실천도 없다고 반론한다.
- 실재와의 만남
이 실재를 우리는 어디서 만나게 될까요? 정신분석이 발견한 것 속에서 문제의 핵심은 실제로 만남, 어떤 본질적인 만남입니다. 즉 우리는 달아나는 어떤 실재와의 만남에 항상 불려나가게 되어 있다는 겁니다. (88)
이런 의미에서 라캉은 투케와 오토마톤에 관하여 설명한다. 투케는 실제와의 만남이다. 오토마톤은 쾌락원칙의 명령 아래 있는 회귀, 재귀, 되풀이라는 기호들이다. 실재는 바로 그런 기호들 너머에 위치한다.
실재는 항상 오토마톤 튀편에 자리 잡고 있는 것으로, 그것이 프로이트의 연구 전반에 걸쳐 주된 관심사를 이뤘다는 것은 아주 분명한 사실입니다.(88)
'투케'의 기능, 만남 ㅡ만남이라고는 해도 만날 수 없을지도 모르는 만남, 본질적으로 어긋난 만남이라 할 수 있는 만남이지만 ㅡ 으로서의 실재의 기능이 정신분석사에서 처음 등장한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이미 우리의 주의를 끌기에 충분한 형태, 바로 트라우마라는 형태로서였습니다.(89~90)
실재는 '동화 불가능한 것', 우발적인 것처럼 보이는 기원으로 기능하며, 그 뒤의 모든 사건들을 결정짓는 트라우마라는 형태로 나타났다. 그리고 실재는 고통 souffrance형식으로 삶의 환상을 지탱한다.
그 후 라캉은 트라우마와 반복, 투케를 설명하기 위해 자신의 꿈과 프로이트의 <아이가 불타는 꿈>을 예로 들며 꿈과 깨어남에 대해 설명한다. 이 부분은 (p91~96) 요약보다는 실제 책의 내용을 다시 정독해보면 더욱 좋을 것 같다. 이해가 어렵고 복잡하기 때문에....
트라우마에서 환상 ㅡ 환상이 반복 기능에서 가장 핵심적이고 결정적인 어떤 것을 숨기는 스크린에 다름 아닌 한에서 까지 이어지는 실재의 자리, 바로 그것을 짚고 넘어가 봅시다...... 실재는 우리가 꿈을 꾸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해주는 사고, 작음 소음, 지극히 사소한 현실에 의해 대표[대리]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또 다른 측면에서 본다면 이 현실은 그렇게 사소한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우리를 깨우는 것은 표상의 역할을 [대신] 수행하는 무언가를 실패하게 만드는, 배후에 숨겨진 또다른 현실이기 때문입니다. 프로이트에 따르면 이 또 다른 현실이 바로 Trieb입니다. (97~98)
우리가 실재를 찾아야 하는 것은 바로 꿈의 저편, 즉 하나의 대리자만을 갖는 표상의 결여 뒤에서 꿈이 우리에게 감싸 숨기고 있는 어떤 것 속에서 입니다. 우리의 다른 어떤 활동보다도 더 많은 것을 지배하고 있는 실재가 바로 거기에 있습니다. 정신분석은 바로 그것을 우리에게 가리키고 있습니다. (98)
세미나의 마지막에 이르면 라캉은 사랑에 관한 나르시시즘적 요구(스스로 타자에 대한 열광과 포로가 됨으로써 그 열광이 타자를 향한 것처럼 보이게 했지만, 자아이상을 통해서건 자신을 이상으로 삼는 자아를 통해서건 타자를 가지고 더없이 거짓된 요구를 하는 나르시시즘적 만족에 대한 요구)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리고 프로이트는 손자의 예로 이어지는데, 손자가 되풀이하는 '포르트-다' 놀이 속에서 아이 스스로가 엄마의 부재의 작인이 됨으로써 그 부재의 효과를 지우려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하지만 이는 엄마의 부재가 아니라 아이 주체로부터 떨어져나왔지만 여전히 그에게 남아있는 주체의 일부분이고 이 대상을 가지고 아이는 제 영역의 경계선을 뛰어넘고 주문을 걸기 시작한다. 그 대상을 라캉은 소문자 a라 부르게 된다.
'자크 라캉의 세미나 11' 카테고리의 다른 글
4.시니피앙의 그물망에 대하여 (0) | 2020.01.06 |
---|---|
3. 확실성의 주체에 관하여 (0) | 2020.01.03 |
2. 프로이트의 무의식과 우리의 무의식 (0) | 2020.01.02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