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장에서도 여전히 무의식의 주체에 관한 이야기가 이어진다. 데카르트와 프로이트의 주체에 관해 설명하며 그 후 반복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강의한다. 라캉을 읽을수록 프로이트를 전제로 하여 설명해나가기에 프로이트 이론을 먼저 알아야 하는 것은 아니었을까? 내가 이 책을 먼저 읽어나가도 괜찮을까?라는 의구심이 들긴 하지만 계속 읽어보기로 한다.
▶키워드 ◀
무의식의 사유 / 의심의 콜로폰 / 주체의 전복 / 반복에의 입문 / 실재는 항상 동일한 자리로 되돌아오는 것이다
무의식
그는 무의식이란 의식이 잠재의식적인 것으로부터 불러내고 펼쳐놓고 판별해내고 꺼내놓는 어떤 것으로 구성되는 것이 아니라 본질적으로 거부된 것에 의해 구성된다고 주장합니다. 그렇다면 프로이트는 그것을 뭐라고 불렀을까요? 그것은 바로 제가 방금 전에 받침점이라고 부른 것을 가리키기 위해 데카르트가 사용했던 용어인 Gedanken, 즉 사유입니다.
의식 너머의 장에 사유가 있습니다. ‘나는 생각한다’의 주체가 ‘나는 의심한다’라는 진술과 동일한 상동 관계 속에서 결정되어 있다는 점을 통해서가 아니면 그러한 사유를 표상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데카르트가 ‘나는 생각한다’를 포착한 것은 ‘나는 의심한다’라는 언표 행위를 통해서이지 그것의 언표를 통해서가 아닙니다.(73~74)
(언표는 기표이고 그것은 의미의 세계이자 지식의 세계이기에...라고 이해되는데??)
주체를 처음 도입한 사람은 데카르트이고 이 주체는 하나의 신화이자 불분명한 혼동에 불과한 심리적 기능과 구별되는 것으로서의 주체이다. 프로이트는 "여기 꿈의 장이야말로 네가 있는 너의 집이다."를 알리기 위해 주체를 겨냥했는데 이 점이 프로이트가 주체에 관해 밝힌 새로운 점이다. (75 다음 단락을 읽으면 꿈은 시니피앙 그물망의 충만하고 완전한 장소이고 주체가 있는 곳이다라고 해석되는데 내 이해가 맞는진 확실하지 않다.)
하지만 주체는 "그것이 있던 곳에"(꿈) 자신을 자리매김하기 위해 거기에 있는 겁니다. 미리 밝혀두자면, "그것이 있던 곳"은 바로 실재입니다...... '신들은 실재의 장에 속한다'라는 공식을 이용하리라는 것을 아실 겁니다.(75)
감히 저는 프로이트의 장은 오직 데카르트적 주체가 출현하고 어느 정도 지나고 나서야 비로소 가능한 것이었다는 점을 하나의 진리로 내세우고자 합니다. 데카르트가 첫발을 내디딘 이후에야 비로소 현대 과학이 시작되었다는 점에서 말입니다.
우리가 주체를 불러내 무의식 속의 자기 집으로 돌려보낼 수 있는 것도ㅡ 어쨌든 중요한 것은 '누구'를 호명하는지를 아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바로 그 데카르트의 행보 덕분입니다....... 호명되는 것은 바로 주체이며, 따라서 선택될 수 있는 것도 오직 주체뿐입니다.
프로이트의 개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호명되는 자가 주체, 바로 데카르트에 기원을 둔 주체라는 토대에서 출발해야 합니다. (78~79)
프로이트의 자가 분석이란 아버지의-이름에 매달려 있는 욕망의 법칙을 천재적으로 간파해낸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프로이트가 주체의 전복이 가능하다고 보았던 한 가지 양태가 있다는 사실은 그가 어느 정도까지 주체를 시니피앙의 체계에 의해 본원적으로 전복된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는지를 보여줍니다. (80~81)
여기까지 이야기하며 라캉은 무의식에 관한 논의를 잠시 접고 반복이란 무엇인가에 관해 여러 차례 강의하려한다.
반복 Wiederholen
Wiederholen은 Erinnerung, 즉 기억하기와 관련되어 있습니다. 주체가 자신의 집으로 되돌아가는 것, 자신의 전력을 회상해내는 것, 이 모든 것은 실재라 불리는 어떤 일정한 한계에 도달하기 직전까지만 진행됩니다...... 여기서 실재란 늘 동일한 장소 ㅡ 사유하는 자로서의 주체, 즉 res cogitans가 그것[실재]과 만나지 못한 장소ㅡ로 되돌아오는 것입니다.
프로이트가 반복을 하나의 기능으로 발견하는 전 과정은 사유와 실재의 관계를 이런 식으로 명확히 해야만 밝혀질 겁니다. (82)
행위, 진정한 행위는 분명하게 포착되지 않는 실재와 관련된다는 점에서 항상 구조적인 부분을 갖고 있습니다.(84)
결국 분석 경험의 초기 단계에서 기억하기가 점차 되풀이되고 모든 사건들이 드러날 것 같은 일종의 초점, 중심점에 점점 더 가까이 접근하게 되는 순간에, 정확히 바로 그 순간에 제가 '주체의 저항'이라 부른 것이 나타나 그 순간 행위로 반복됨을 볼 수 있습니다.(85)
위의 내용들이 내가 4장에서 중요하다고 생각한 발췌 문장들이다. 부분적으로 읽으면 책 전체를 읽는 것보단 이해가 덜하지만 앞으로 세미나를 계속 읽어나가는 데 기억해야 할 만한 내용인 것 같아 적어서 남기기로 한다.
강의:무의식은 단절이 일어나야 한다. 충동 쥬이상스와의 단절.....
언어와 법=주체들의 욕망을 재생산해낸다 사유한다=나의 생각은 의미화된다.(나는 몇 살이다 국적은 뭐다 등) 이 행해지는 순간 언표의 세계로 들어간다. (의미의 세계 지식의 세계)
생각이 진정으로 존재하는 장소는 무의식이라는 것(프로이트와 데카르트가 같이 이 지점을 말하고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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