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흑인 미술가들이 정치화된 미술의 새로운 형식을 한창 선보이던 중에 뉴욕에서 열린 휘트니 비엔날레가 정체성을 강조한 작업을 전면에 내세운다.
최근 몇 10년 동안 인종.다문화.페미니즘.쿼어 등 정체성의 정치학은 비숫한 궤적을 그리며 예술의 영역으로 들어왔다. 흑인성, 인종성, 여성성, 동성애주의 같은 부정적인 스테레오타입으로 인식돼 왔다는 점을 제기하고 소수자 미술가들이 제도권 미술에 진입하면서 이들의 긍정적인 이미지들이 강조됐다. 스테레오타입에 대한 비판이 제기돼 정체성이란 타고난 것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란 사실이 지적됐다. 스테레오타입을 파기하기 위해 다큐멘터리적 재현 형식을 통해 비판하거나 개인적인 경험을 증언하고, 대안적인 미술 전통으로 선회하는 등 여러 가지 전략들을 발전시켰다.
형세의 역전
이런 기획에서 가장 눈에 띄는 미술가는 에이드리언 파이퍼(Adrian Piper, 1948~)이다. 이미 60년대 후반 아방가르드 집단에서 활동하던 파이퍼는 퍼포먼스 아트와 개념미술의 여러 전략들을 적용하여 인종차별주의가 갖고 있는 '시각적 병리학'을 탐구했다.
「궁지에 몰린」이라는 작업에서 그녀는 구석에 배치된 엎어진 탁자와 관람자를 마주보게 하고 백인 관람자의 조상이 흑인일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담은 내용의 비디오테이프로 보여 줘 관람자를 "궁지로 몰아넣었다." 여기서 단일하고 순수한 정체성의 신화는 도전받게 된다.
인종을 재현하는 문제를 다룬 미술가 중에는 이와 반대로 포스트모더니즘적인 의구심을 표명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이들도 있지만 파이퍼는 '합리성과 객관성'이라는 강력한 도구를 포기하는 입장에 회의적이었으며, 이런 도구가 인종차별주의가 가진 '거짓 합리성' 즉 '타자의 특이성을 합리화하는 데 사용하는 변명거리'를 비판하기 위해 필요하다고 여겼다. 그녀는 '당신이 해야 할 일이란 바로 이런 변명들을 지나치게 미화하거나 과장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반영하거나 묘사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그것이 얼마나 부적절하며 단순화됐는지에 대해 어느 정도 지각하게 한다."라고 말했다.
캐리 메이 윔즈(Carrie Mae Weems, 1953~)는 개인적인 이미지와 이야기를 사용했다. 사진텍스트 작업에서 윔즈는 미국 흑인을 너무 긍정적으로 재현하지도, 단순히 부정적으로 탈신비화하지도 않았다. 「가족사진과 이야기」(1978~1984)에서 윔즈는 내밀한 사진과 이야기를 조합해 자신의 독특한 스타일을 전개시켰다. 이 작업은 인종차별주의와 궁핍, 폭력의 끔찍한 상황을 기록하고 있긴 하지만 동시에 흑인을 자동적인 희생양으로 간주하는 입장에도 저항한다. 윔즈는 자신이 경험했고 기억하고 있는 흑인 가족의 색다른 이야기를 통해 사회학 전통이 양산해 온 객관화의 문제를 지적했으며, 데카바라 등이 전개시킨 흑인 공동체에 대한 대안적 시선을 통해 다큐멘터리 전통이 양산하는 타자화에 대한 문제를 제기했다.
윔즈는 '부엌 타자' 연작에서 그녀의 복잡한 접근 방식은 더 발전된다. 이 작품에는 한두 명의 흑인이 불빛 아래 놓인 부엌 식탁에 앉아 있다. 이와 함께 개인적인 열망이나 연애 관계, 가사나 일상적인 일들에 대한 삼인칭 내러티브가 흘러나온다. 주관주의가 이토록 연상 작용을 하는 표현으로 드러난 것은 미국 문화 전반은 물론이고, 미국 미술에 있어서도 흔치 않은 일이었다.
스테레오타입의 기괴함
스테레오타입을 과장하여 비판적으로 파열시킨 작업을 비평가 코비나 머서(Kobena Mercer)는 '스테레오타입의 기괴함'이라 명명했다. 나이지리아 태생 화가 로티미 파니-카요데(그는 자신이 런던에 사는 동성애자이자, 아프리카 남성이라는 점을 즐거이 인정했다.)는 아프리카 섹슈얼리티를 다루는 원시주의의 상투적인 이미지들을 과장해서 표현했다. 그의 초상화에는 몸에 칠을 하거나, 깃발 장식을 하거나, 아니면 전통 의상을 입고 있어서 이국적인 '부족'으로 보이는 거의 벌거벗은 흑인 남성들이 등장한다.
인종의 식별 가능성
'스테레오타입의 기괴함'은 카라 워커(Kara Walker, 1969~) 같은 젊은 미국 미술가들의 작품에도 나타난다. 갤러리나 미술관의 흰색 벽면에 검은색으로 도려낸 그림을 붙이거나 투사한 워커의 그림과 작업은 카메오 세공과 실루엣 장르를 끌어온 것이다. 대개 이런 형식은 연인들의 옆모습 오리기 같은 놀이에 많이 사용되지만 워커의 작업에서는 남북전쟁 전 미국 최첨단 지역의 노예와 주인들을 묘사한 캐리커처들이 벌이는 섹스와 폭력의 거친 장면들이 등장한다. 요컨대 그녀는 인종차별적인 민간전승의 신화를 재상연하는 동시에 대단히 적나라한 방식으로 손상시킨다. 워커는 이런 판타지가 미국인들의 무의식에 상당 수준 잔존한다는 점을 암시하면서 과도한 재형상화를 통해 이 판타지를 전복적으로 종속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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