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빌 비올라의 거대한 비디오 프로젝션 전시가 여러 미술관을 순회화며 영사된 이미지가 현대미술의 보급판이 된다.
지각은 현상학의 주된 관심사였다. 특히 로버트 모리스 같은 미니멀리즘 미술가들은 여기에 특별한 관심을 보였으며 “가장 변하기 어려운 형태조차 일관적이지 않다. 왜냐면 매 순간 자리 이동을 통해 관람자는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작품 외관의 형태를 변화시키기 때문이다.”라고 주장했다. 미니멀리즘의 설치 작업은 작품의 완성은 관람자라는 뒤샹의 말을 확인시켜 준다.
봉합의 예술
퍼포먼스 비디오 설치미술 등의 분야는 미니멀리즘이 시작한 신체와 공간에 대한 탐구를 이어갔고 그들의 현상학적 관심을 정교하게 다듬었다. 관람자의 역할이 제한적이던 퍼포먼스와 비디오와는 달리, 모든 것을 관람자의 경험에 맡긴 것은 바로 설치였는데, 거대한 평면으로 된 색 조명을 설치한 제임스 터렐(James Turrell,1943~)의 작품에서 이점이 가장 잘 나타난다.
터렐의 설치는 공간의 잔상으로 존재하는 것처럼 보이며 오롯하게 고정된 작품으로 나타나기보다는 오히려 그것을 보는 관람자의 망막 활동과 신경체계에 의해 투사된 허깨비처럼 보인다. 미니멀리즘이 관람자를 성찰로 이끌고 공간의 윤곽을 제시했던 반면, 이런 미술은 관람자를 작품에 투영시키고 그것에 압도당하게 하는 일종의 숭고한 체험을 불러일으킨다.
비올라와 힐은 이미지 공간을 만들었다. 대형 회화의 고정성과 서사 영화의 시간성을 공유한다. 비올라는 비디오 설치를 통해 다양한 신체적 경험을 재현하고 재생산하려고 꾸준히 노력해왔다. 때로는 한 작품 안에서 평온한 상태와 동요한 상태가 충돌하기도 한다.
그의 가장 공들인 최근작 「매일 나아가는 (Going Forth by Day)」에서 관람자는 느린 동작으로 영사되는 다섯 개의 거대한 비디오에 둘러싸이게 된다. <뉴욕타임스>는 이 작품에 대해 “개인 사회 죽음 부활이라는 인간 실존의 서사시적 주제를 다룬 야심에 찬 성찰”이라고 평했다. 비올라가 공간을 가상 현실화하고 매체를 사용하지 않는 것처럼 작업하는 이유는 정신적 선험성에 대한 그의 초역사적이고 개인적인 시각, 나아가 그 시각의 결과를 보여주기 위해서이다.
영사된 이미지를 사용하는 현대미술 중 많은 수는 칸트가 논한 숭고의 두 작용을 상기시킨다. 하나는 무시무시한 광경이나 소리에 압도당하고 기진맥진 해지는 외상적 순간을 포착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 경험을 이해하고 지성적으로 회복하게 되는 구원의 순간을 느끼는 것인데 이 두 번째는 비올라의 작품을 통해 드러나고 첫 번째는 더글라스 고든, 토니 아우슬러 등을 통해 살펴볼 수 있다. 스탠 더글라스의 서곡은 에디스 컴파니에 보관된 1899~1901년의 인화 필름과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오디오 텍스트 결합 작품인데 이는 반복과 차이, 기억과 전치에 대한 감각을 시험한다. 서곡은 잠들어 있는 상태에서 깨어남으로써 의식의 부활이자 유한한 운명으로 회귀하려는 전환을 다루고 있을 뿐 아니라 한 종류의 서사 매체(소설)에서 다른 종류의 서사 매체(영화)로 이행된 주도권도 다루고 있다.
점점 더 많은 현대미술이 영화와 관련된 작업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왜 미술은 영화로의 전환을 추구하는가? 아마 영화가 쉽게 읽히기 때문일 것이다. 더글러스 고든은 “나는 영화를 어떤 공통분모로 사용하려고 애쓴다. 영화는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도상이다.”라고 말한다. 도한 미술가들이 보기에 근본적으로 변형된 현대사회의 경험(영상 장치에서 비롯된 경험)과 주체성(기술적 충격으로부터 생존하는 법뿐 아니라 그것을 영위하는 법까지 터득한 주체성)을 다루기에 가장 적합한 매체가 바로 영화이기 때문이다.
https://m.youtube.com/watch?v=zRRAZIXce-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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