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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0년 이후의 미술사(art since 1900) 책 공부/1930년대 노트

1937년a 나치와 모더니즘 미술

by 책방의 먼지 2019. 10.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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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럽 열강들이 파리만국박람회의 국가별 미술, 무역, 선전 전시관에서 경쟁하는 사이 나치는 뮌헨에서 모더니즘 미술을 맹렬히 비난하는 《퇴폐 '미술'》전을 개최한다.

 

1937년 7월 19일 《퇴폐 '미술'》전이 나치의 본거지인 뮌헨에서 열렸으며 유대인과 볼셰비키의 것인 모더니즘 미술의 퇴폐성을 드러내기 위해 계획되었다. 나치의 미학은 모더니즘 미술의 편집증적인 이미지를 조명하고 나치 미술을 통해 이에 반대했다. 나치는 모더니즘 미술을 비난하는 주요 수단으로 '원시인'이나 어린이, 혹은 정신병자의 미술을 비열하게 사용했으며 이런 미술을 종교, 여성, 군대에 대한 "불경"이라고 공격했다. 《퇴폐 '미술'》전은 수많은 반모더니즘적인 전시회와 반유대적인 영화들 그리고 분서 중 겨우 하나의 사건일 뿐이었다. 1935년 히틀러는 모더니즘 미술을 완전히 근절시키라는 명령을 내렸고 1936년에는 괴벨스가 비나치 미술 비평을 금지했다. 이것이 전체주의 국가의 문화 침투였으며 그들에게 반모더니즘은 정치적으로 중요했다.

 

신체의 정치

러시아 미술사학자 이고르 골롬스토크는 양차 세계대전 사이에 여러 전체주의 체제들의 미술 정책에는 몇 가지 원칙이 있다고 봤다.(그가 말하는 전체주의에는 스탈린주의 소비에트와 파시스트 이탈리아가 포함된다.) 첫째, 이들 국가에서 미술은 이념적 무기로 취급됐으며 둘째, 국가는 문화 제도를 독점했다. 셋째, 가장 보수 미술 운동이 공식적인 미술로 지정됐다. 마지막으로 공식 미술을 제외한 다른 모든 양식들은 탄압받았다. 

어떤 체제도 모더니즘의 신체 왜곡에 관대할 수는 없었다. 대체로 모더니즘 미술이 위험한 이유는 독창적인 시각과 단일한 양식, 개인적인 구원 등의 관점에서 개인에게 특권을 부여했기 때문이었다. 이런 '주관론'은 모더니즘 미술에 나타난 왜곡보다 훨씬 전체주의 체제의 공동 규범을 거스르는 것이었다. 전체주의 체제는 정신적으로 그리고 거의 육체적으로도 대중을 지도자와 당, 그리고 국가에 예속시킬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도식 안에서 개인의 신체는 오로지 신체의 정치만을 나타낼 수 있었다. 나치 군국주의의 우의적 형태인 브래커의 「준비 완료」에서 보듯이 개인의 신체는 종종 소름끼치게 완전무결한 조각상으로 재현됐고, 심지어 남근숭배적인 공격성을 띠기도 했다.  

 

아르노 브레커 「준비 완료 Readiness」 1939

 

모더니즘의 역습

20세기의 첫 20년 동안 대부분의 모더니즘 미술에서 사라졌던 인간의 형상이 20~30년대 '질서로의 복귀'와 함께 돌아왔는데 이것은 반동적인 미술에서 뿐 아니라 신체를 지도자, 당 그리고 국가와 동일시하는 반민주적인 정치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독일 콘도르 군단'이 1937년 4월 26일 게르니카의 바스크에 폭탄을 투하하기 1년 전에 마드리드의 프라도 미술관의 상징적인 관장이된 피카소는 당시 자신의 입체-초현실주의 혼성 작품에서 끌어낸 모티프와 형태를 사용해서 6주 만에 「게르니카」를 그렸다. 이 거대한 회화 작품은 무서움에 떨고 있는 네 명의 여인을 보여 준다. 한 명은 화염에 휩싸인 집에서 떨어진다. 도망치는 다른 두 명은 공포로 일그러져 있다. 네 번째 여자는 죽은 아이를 팔에 안고 비명을 지른다. 사지가 절단된 병사가 땅에 누워 있는가 하면, 말은 괴로워 울부짖고 황소는 우리의 눈을 뚫어져라 응시한다. 뒤죽박죽이 된 이 세계에서는 짐승들마저 인간이 박탈당한 인간성을 소유하고 있는 듯하다. 피카소는 형체들을 피라미드 형태로 집결시키고 무채색의 가라앉은 분위기로 표현함으로써 이 모든 잔해들을 끌어모았다. 그러나 피카소가 보여 준 천재성은 그가 직접 고안해 낸 입체주의와 파편화와 초현실주의의 왜곡을 분노의 표현으로 변형한 데 있다. 이 작품은 정치적 현실에 참여한 모더니즘 미술이다. 나치의 폭격에 대한 반격이자 스페인의 "보물 같은 예술"을 모독했다고 국가주의가 공화주의자들에게 씌운 혐의에 대한 응수였다. 「게르니카」 역시 전체주의 정권의 신화적 역사에 공공연히 맞서면서 정치 예술은 사회주의 리얼리즘적일 수밖에 없고 모더니즘 미술은 공적일 수 없다는 반동적인 믿음에 반박한다. 여기서 모더니즘은 참조성, 책임감 그리고 저항성과 화해한다. 한 나치 장교가 「게르니카」 앞에서피카소에게"당신이 한 것입니까?"하고 묻자 피카소는 "아니오. 당신이 한 일입니다."라고 대답했다. 

파블로 피카소 「게르니카 Guernica」 1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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