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을 통해 내게 '읽히는' 것들: 그가 가치 있게 여기는 것들(주로 감정의 것... 용기 너그러움 자유 등)
그리고 마음의 상태, 그에 따른 예민한 감각들, 기억하고 싶은 문구들...
10.31
나는 이 일들에 대해서 말하고 싶지 않다. 그러면 결국 문학이 되고 말까 봐 두렵기 때문에. 혹은 내 말들이 문학이 되지는 않을 거라는 사실에 대한 자신이 없기 때문에. 그런데 다름 아닌 문학이야말로 이런 진실들에 뿌리를 내리고 태어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11.10
이 당혹스러운 부재의 추상성. 그런데도 그 추상성은 뜨겁게 달아 오르고 너무 마음을 아프게 한다. 나는 비로소 추상이 무엇인지를 이해한다: 추상은 부재이면서 고통이다. 그러니까 부재의 고통. 그런데 어쩌면 이건 사랑이 아닐까?
11.24
내가 놀라면서 발견하는 것 ㅡ그러니까 나의 걱정 근심(나의 불쾌함)은 결핍이 아니라 상처 때문이라는 사실. 나의 슬픔은 그 무엇이 없기 떄문이 아니라(나는 모자라는 게 없다. 내 생활은 저처럼 아무 문제가 없다.) 그 무엇이 상처받았기 때문이라는 것. 그리고 그 상처는 사랑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상처라는 것.
1978.1.16
나의 세계: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 세계. 그 안에서는 그 어떤 소리도 울림을 낳지 못한다 ㅡ 그 어떤 것도 형상을 갖지 못한다.
1978.2.21
아침 내내 끝없이 마망 생각. 이런 우울은 싫다. 아무런 변화도 가져오지 않는 불변의 상태에 대한 혐오감.
1978.3.20
이런 말이 있다(마담 팡제리가 내게 하는 말): 시간이 지나면 슬픔도 차츰 나아지지요 ㅡ 아니, 시간은 아무것도 사라지게 만들지 못한다: 시간은 그저 슬픔을 받아들이는 예민함만을 차츰 사라지게 할 뿐이다.
1978.3.23
느낌의 예민함(점차 약해지는)과 슬픔 혹은 근심(늘 그 자리에 있는) 사이에는 (끔찍한) 차이가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
1978.4.12
기록을 하는 건 기억하기 위해서일까? 아니다. (이렇게) 기록을 하는 건 나를 기억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그건 망각의 고통을 이기기 위해서다. 아무것도 자기를 이겨낼 수 없다고 주장하는 그 고통을. 돌연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리고 마는" 그 어디에도, 그 누구에게도 없는 그런 것.
"기념비"의 필연성.
1978.8.10
프루스트, 「생트-뵈브」, 87쪽
”아름다움이란 우리가 머릿속에서 상상할 수 있는 가장 최상의 유형. 그러니까 우리가 상상으로 눈앞에 떠올리는 어떤 추상적인 것이 아니다. 아름다움은 그와는 반대로 우리가 상상해볼 수 없는 어떤 새로운 유형. 그러니까 실제(réalité)가 직접 우리에게 드러내는 어떤 것이다.”
(그렇다: 나의 슬픔은 지극한 고통이나 외로움 같은 것이 아니다. 그런 건 다만 추상적인 유형. 메타언어 안으로 포함시킬 수 있는 그런 것들일 뿐이다. 나의 슬픔은 전혀 새로운 유형의 어떤 것이다.)
1978.8.18
일상 속에 들어 있는 말없는 가치들과 함께 지내는 일(부엌, 거실, 옷들을 청결히 하고 늘 바르게 정리하기. 물건들 안에 들어 있는 과거와 아름다움을 소중하게 간직하는 일) - 그건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면서) 내가 그녀와 이야기를 나누는 방식이다 - 그리고 이런 방식으로 비록 곁에 없어도 나는 그녀와 여전히 이야기를 나눌 수가 있다.
1978.8.21
무거운 마음은 이기적이다.
나는 나에 대해서만 말한다. 나는 그녀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다. 그녀가 어떤 사람이었다고 말하지도 못하고, 그녀의 깜짝 놀랄 만한 초상을 그릴 수도 없다.(지드가 마들렌의 초상을 그렸던 것처럼)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것은 진실이다: 그녀의 부드러움, 활기, 고매함, 선함.)
1979.1.17
삶의 결핍 상태가 서서히 구체적인 얼굴로 나타나기 시작한다: 그것이 무엇이든 어떤 새로운 일을 꾸며서 만들어갈 수가 없다(글쓰기는 예외지만). 우정도 사랑도 그 밖에 다른 일들도.
1979.1.18
그녀의 죽음 이후, 그 무언가를 새롭게 “꾸미고 만들어가는 일”이 싫다. 그런데 글쓰기는 예외다. 그건 왜일까? 문학. 그것은 내게 단 하나뿐인 고결함의 영역이다.(마망이 그랬던 것처럼).
1979.1.30
망각이란 없다.
이제는 그 어떤 소리 없는 것이 우리 안에서 점점 자리를 잡아가고 있을 뿐이다.
1979.2.22
나를 마망으로부터 떼어놓는 것(그녀와 함께 있을 수 있는 나의 슬픔으로부터 떼어놓는 것), 그것은 시간의 지층이다(점점 더 자라나는, 점점 더 두꺼워가는). 그녀의 죽음 이후 나는 이 시간의 지층 안에서 그녀가 없이도 살아갈 수 있었고, 그녀가 살았던 아파트에서 살고 일하고 외출을 할 수도 있었던 것이리라.
1979.9.1
무거운 마음, 어딜 가나 편하지 않은 마음, 울적함, 짜증스러움과 그 때문에 생기는 죄책감, 파스칼이 말했던 “인간의 비참함”이라는 단어에 속하는 이 모든 것들.
1979.3.11
...... 마망은 이 세상에 대해서, 그런 류의 세련된 여인들에게 전혀 관심이 없었다는 걸. 그녀의 세련됨과 섬세함은 (사회적으로)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절대적으로 소속 부재의 그런 것이었다. 그 어떤 계급에도 속하지 않는, 그래서 표식이 불가능한 그런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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