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낙 유명한 책이라 읽어 보고 싶은 마음이 커 사두었는데 두께 때문에 선뜻 손이 가질 않는 책이었다. 나에게는 이런 책들이 꽤나 있다. (언젠간 꼭 다 읽으리라!!) 지난 4월부터 책꽂이에 있는 벽돌 책들을 깨기 시작해야겠다고 다짐하고선 고른 첫 번째 책이 바로 사피엔스다. 조금 지루하지 않을까 하고 우려했던 것과 달리 유발 하라리가 긴 호흡이 필요한 책의 요소요소에 예시나 이론적 글의 배치도 잘하여 내용을 따라가기가 쉬웠다. 또 개인적으로는 1부에 무척 흥미진진하고 재밌는 부분들이 많아 시작부터 흡입이 잘 되어 갈수록 더 이목을 끄는 부분이 있겠지란 기대감으로 읽어가기 시작했다. (비록 책을 다 읽었을 땐 그래도 인지 혁명이 가장 재미있었지만 말이다.) 4부작으로 나뉘어 한 부씩 연대씩으로 내용 정리가 되어 있어 단락단락 읽고 조금 쉬었다 읽어도 괜찮은 접근하기 쉬운(나 같은 인류 역사에 문외한인 사람에게도) 꽤 괜찮은 역사서인것 같다. 나도 물론 조금 긴 텀을 두고 주에 한부씩 읽어나갔다.
1부 시작전 역사연대표를 살펴보면 주요 사건들을 파악할 수 있게 설명되어있다.
내가 파악한 주요 시기들은 135억 년 전 우주의 탄생·물리학이 시작된 이래 화학 생물학(38억년전) 순으로 과학이 진행되었다는 점과 그 자연적인 탄생들 이후 7만 년 전 인지 혁명, 언어의 등장, 역사가 시작되었고 그 후로도 5만 8천 년이 지나서야 농업혁명이 시작되었다. 인지 혁명에서 농업혁명 사이의 기간보다 훨씬 짧은 텀을 두고 5백 년 전 과학혁명이 시작되었다.
특히 책의 제일 재밌고 신선한 부분을 담아보면 인지 혁명에서 어떻게 네안데르탈인 대신 호모 사피엔스가 세상을 정복하였냐는 것에 대한 이론인데 "사피엔스가 사용하는 언어는 허구를 말할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라는 부분이 시선을 끌었다. "허구로 인해서 우리는 단순한 상상을 넘어 집단적으로 상상할 수 있게 되었다. 이 상상의 힘으로 신화를 짤 수 있게 되었는데, 신화는 많은 숫자가 모여 협력하는 유례없는 능력을 가질 수 있었다."라고 한다. 2부 농업혁명에서도 우리를 결속시킨 상상의 막강한 이야기는 계속 이어진다. "우리가 특정한 질서를 신뢰하는 것은 그것이 객관적으로 진리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것을 믿으면 더 효과적으로 협력하고 더 나은 사회를 만들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류의 선택이 늘 최선의 결과를 낳은 것은 아니었다. 우리가 농업을 시작한 이래 수렵인들보다 삶이 나아졌는지는 알 수 없는 것이다. 3부에서 하라리는 "역사의 선택은 인류를 위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은 사실이다"라고 했다. "즉 역사가 인류에게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작동한다는 증거는 없다. 역사는 개별 유기체의 행복에 무관심하다. 그리고 개별 인간은 너무나 무지하고 약해서, 대개는 역사가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전개되도록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1500년경 역사는 가장 중대한 선택을 했는데 그것은 인류의 운명뿐 아니라 지구에 있는 모든 생명의 운명까지도 바꿀 선택을 하였고 그를 과학혁명이라 부른다. 서유럽(그때까지 역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전혀 하지 못한 지역)에서 시작되었는데 왜 중국 인도가 아닌, 그곳이었을까라는 질문으로 3부를 끝내며 그 답이 4부를 꿰뚫는 핵심내용이다. 그 이유는 중국 페르시아인들이 기술이 부족한 것도 아니었고 인구가 부족한 것도 아니었다. 그들은 다만 그럴 필요를 못 느꼈다. 즉 서구에서 형성된 성숙한 가치, 신화, 사법기구, 사회 정치적 구조가 그들에겐 없었기 때문이다. 유럽이 세계를 지배한 현대 과학과 자본주의에 대한 이야기들이 이어지며 지금은 유래 없는 평화의 시대가 지속되고 있다고 보지만 미래에 파국을 일으킬 씨를 뿌린 시기였다는 사실이 나중에 확인될지도 모른다는 우려도 적어놓았다.
책을 다 읽고 나면 지식을 쌓았다는 느낌보다 생각할 여지와 여운을 남겨 준다. 거대한 역사 속 그저 한 명의 사피엔스로서 상상 속을 헤매고만 있는 것은 아닌지, 아니면 또 따른 강력한 상상을 받아들이며 정진해 들어가야만 하는 것인지....? 에 대한 생각과 또다른 나의 책꽂이 속 벽돌 책인 이기적 유전자를 읽어 봐야겠다는 뜬금없는 생각도 들면서 이 책에 대한 리뷰를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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