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급, 중개, 행동주의
▶ 티나 모도티, 「멕시코의 5월 1일 노동자 시위」, 1929
이탈리아계 미국인 사진가 모도티가 멕시코에서 찍은 이 사진은 20~30년대 급진적인 예술가들에게 보편적이었던 정치적, 사회적 현실 참여를 보여 준다. 에드워드 웨스턴 류의 '스트레이트' 모더니즘 사진가가 되기를 포기한 모도티는 이 작업을 통해 사진을 멕시코 농민과 노동자 계급의 정치 투쟁을 위한 무기로 내세웠으며 과두정치를 행하는 통치자들의 끝없는 미적거림과 기만적 행태에 저항했다. 민중그래픽공방의 전통을 이제 사진이라는 재현 수단을 통해 노동계급으로까지 확장한 모도티는 지역에 따라 특수하고 고르지 않게 전개된 지식과 예술 문화 형식을 작업의 기초로 삼아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따라서 모도티는 진보적인 형식으로 보이는 정치적 포토몽타주를 채택하지 않고 오히려 자신이 처한 지정학적 맥락에서 행동주의자로서 정치적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리얼리즘적인 묘사의 굴레를 유지했다. 이 작품에서 볼 수 있듯이 모도티는 결코 '스트레이트' 사진과 '신즉물주의' 사진에서 나타나는 타협적인 리얼리즘에 빠져들지 않았다. 알베르트 렝거-피취 같은 동시대 사진가의 작업에서처럼 산업 제조품들을 연속적으로 반복하는 단순한 모더니즘식 그리드에 그칠 수도 있었던 모도티의 작업은 20~30년대에 국가 경제의 실제적 생산자인 노동자와 농민계급과 대중의 사회적 등장과 정치적 행동주의를 가장 설득력 있게 묘사한 사진이 됐다.
▶ 마사 로즐러, 「빨간 줄무늬 부엌」, 「가정에 전쟁 들여오기: 아름다운 집」 연작 중에서, 1967~1972
로즐러는 30년대 정치적 포토몽타주 작업을 이어간 전후의 매우 드문 미술가 중 한 명이었다. 1967년부터 시작된 연작 「가정에 전쟁 들여오기: 아름다운 집」은 역사의 상황과 미술의 상황 모두에 화답하는 작품이다.
첫째, 이 작품은 당시 베트남전에 참전한 미국의 제국주의적 행태에 대한 문화적이고 정치적인 반대에 동참했다. 로즐러는 개별적인 포토몽타주 작업을 하는 대신, 이미지가 노출되는 가능성과 효과를 높이기 위해 수많은 반전 대항문화 저널을 통해 복제되고 유포될 수 있도록 연작 형태의 작업을 선택했다. 그녀는 하트필드의 작업은 물론, 유통 형식과 대중문화 도상 사이의 변증법을 명확하게 이해하고 있었다. 둘째, 로즐러는 사진이 오직 분석적인 자기비판의 중립적인 자료로 사용되거나 주체가 시공간상에 머물렀던 흔적으로서 사용돼야 한다는 개념주의 미술가들의 주장에 대항했다. 로즐러는 사진을 대중문화라는 무기고에서 이데올로기를 생산해 내는 여러 담론 도구 중 하나로 간주했다. 겉보기엔 더없이 행복하고 풍족해 보이는 미국 가정 풍경에 베트남 전쟁의 다큐멘터리 사진 이미지를 갑작스럽게 삽입함으로서, 로즐러는 선진 자본주의 소비문화 속에 복잡하게 뒤엉킨 가정과 군대의 형식을 드러낼 뿐만 아니라, 정보가 담긴 진실한 매체로 신뢰받는 사진에 대해 이의를 제기한다.
이데올로기: 반영과 매개
이데올로기 개념은 죄르지 루카치(György Lukács, 1885~1971)의 미학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루카치가 집필한 문예이론은 20세기 가장 정합적인 마르크스주의 문예이론 중 하나이다. 비록 시각예술 생산에 대한 비중은 적지만 루카치 이론은 40~50년대 예술사회사의 두 번째 국면을 형성하는 데 엄청난 영향을 끼쳤으며, 친구인 헝가리인 아르놀트 하우저(Arnold Hause, 1892~1978)와 오스트리아의 마르크스주의자 에른스트 피셔(Ernst Fischer, 1889~1972)의 저작에 큰 영향을 주었다. 루카치의 주요 개념은 반영 개념이다. 반영 개념에 따르면 문화적 표상의 현상이란 결국엔 어떤 특수한 역사적 순간에 계급 정치와 이데올로기적 이해관계에서 기인한 이차적 현상일 뿐이다.
70년대부터 예술사회사학자들이 특히 관심을 기울인 문제는 예술 실천이 이데올로기적 표상의 내부에서 작동하는지, 아니면 외부에서 작동하는지에 대한 의문이었다.
이데올로기에 대한 알튀세의 착상은 특히 이데올로기 전체와 관련하여 미적 현상과 예술사적 현상에 상대적인 자율성을 부여할 수 있다는 점에서 지금까지도 가장 생산적인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이는 단순히 알튀세가 이데올로기를 그 안에서 주체가 구성되는 언어적 표상 전체로 이론화해, 라캉의 상징적 질서에 대한 설명을 정치적으로 변형시켰기 때문만은 아니다. 이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은 알튀세가 이데올로기적 국가 장치 전체(각 분야의 표상 내에 존재하는 하위 분야들까지 포함)로부터 예술적 표상(과 과학지식)을 구별한 점일 것이다. 알튀세에 의하면 예술적 표상은 명백히 모든 이데올로기적 표상의 영향을 받지 않는 예외적인 것이다.
▶ 한스 하케, 「MOMA-투표」, 1970
뉴욕근대미술관에서 1970년에 열린 <정보>전에서 한스 하케는 '사회 체계'를 다루는 그의 새로운 작업 중 초기 작업을 하나 설치했다. 「투표」 또는 「관람자의 성향」이라불린이설치작업에서는전통적으로 수동적이었던 관람자가 능동적인 참여자가 됐다. 기초적인 통계와 실증적 정보를 생산과 수용의 과정으로 귀속시킨 것은 아도르노가 '행정 사회'라 불렀던 현실을 지배하는 원칙에 대한 명쾌한 응수였다. 동시에 그레이엄과 마찬가지로 하케의 작업은 작품 자체의 의미 구조에 대한 비판적 분석에서 외적인 제도의 틀로 그 관심을 이동했다. 따라서 하케를 통해 개념미술은 미적 체험에 대한 접근과 사용을 결정하는 사회적, 경제적 조건과 새로운 비판적인 관계를 맺게 되는데, 이것은 이후 '제도 비판'이라 일컬어졌다. 하케의 「MOMA-투표」는 이런 이동을 분명하게 보여 주는 사례다. 작품과 마주한 관람자가 미적 자율성과 무사심성을 수호하는 중립적인 공간으로 여겨지는 미술관이 경제적, 이데올로기적, 정치적 이해관계와 겹쳐져 있다는 사실을 문득 깨닫게 되기 때문이다. 이 작품은 또 관람자의 책임과 참여의 조건을 재구성했는데, 이것은 네오아방가르드 미술가들이 먼저 제안했던 관람자 참여 모델을 넘어서는 것이다. 반면 이 작업은 관람자의 정치적 열망의 한계를 일깨우고 그들이 경험하고 결정할 때 느끼는 심리적 한계를 깨닫게 한다.
민중문화와 대중문화
예술사회사학자들의 가장 중요한 논쟁 중 하나는 소위 고급예술 혹은 아방가르드 실천이 근대 대중문화 출현과 어떻게 관련을 맺고 있는지에 대한 것이다. 근대 대중문화가 고급예술과 끊임없이 다르게 구성된 상호작용을 겪으며 계속 변화한다는 점에서 위 논쟁은 여전히 어려운 논쟁으로 남아 있다.
▶ 게르하르트 리히터와 콘라트 루에크/피셔, 「팝과 더불어 살기- 자본주의적 리얼리즘을 위한 시연」, 1963년 10월 11일
1963년 리히터와 루에크(이후 피셔라는 이름으로 유럽에서 미니멀리즘과 개념미술 세대의 가장 중요한 화상이 됐다.)의 퍼포먼스가 뒤셀도르프의 한 백화점에서 열렸다. 이를 계기로 대중문화로 방향을 잡은 네오아방가르드들은 국제적 추세를 독일적 변주했는데, 이미 50년대 말부터 점차 영국, 프랑스, 미국의 전후 추상은 이미 대중문화에 의해 대체되고 있었다. 이런 와중에 리히터가 만들어낸 '자본주의적 리얼리즘'이라는 신조어는 리얼리즘의 끔찍한 '타자', 즉 1961년까지 독일 공산당에서 리히터가 배웠던 사회주의 변종과 공명한다. 피에로 만초니의 작업은 소비 대상의 총체적 체계를 배경으로 한 권태, 긍정, 수동의 스펙터클이었다는 점에서 「팝과 더불어 살기」가 탄생하는 자극제가 되었다. 즉 만초니의 작품은 예술 실천이 더더욱 소비의 대상, 스펙터클의 장소, 예술을 무화시키는 허식적 행위 사이의 틈새 공간에 위치해야 한다는 통찰을 보여 주었다. 그러나 「팝과 더불어 살기」의 음침하고 우울한 수동성은 독일 특유의 것이기도 했다. 왜냐하면 이 작품은 과거의 종교나 정치에 대한 믿음이 규정했던 방식대로 선진 소비 문화가 사람들의 행동을 규정할 것이며, 또한 독일의 특수한 역사적 맥락에서 볼 때 선진 소비문화를 핑계로 사람들이 최근 대대적으로 파시즘에 경도됐다는 사실을 집단적으로 억압하고 망각할 수 있도록 허용해 줄 것이라는 사실을 보여 주기 때문이다.
숭고화와 탈숭고화
아도르노가 보기에 탈숭고화에는 주체성의 파괴가 내재되어 있었다. 아도르노에게 탈숭고화의 목적은 복합적인 의식 형성 과정 및 스스로 결정하고 저항하는 정치적 욕망을 망가뜨리는 것이며, 결국 경험 자체를 무화시켜 후기 자본주의가 요구하는 전면적인 통제에 굴복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또 다른 마르크스주의 미학자 허버트 마르쿠제(Herbert Marcuse, 1898~1979)는 탈숭고화 개념을 반대로 파악했다. 그는 미적 체험 구조를 이루고 있는 욕망은 리비도 억압 장치를 무너뜨리고, 욕구 및 도구화의 요구에서 해방된 존재를 예견할 수 있는 계기를 생성한다고 주장했다. 리비도 해방에 대한 마르쿠제의 프로이트-마르크스주의 마학은 아도르노의 금욕적인 부정변증법 미학과 정반대의 것이었으므로 아도르노는 쾌락적인 미국 소비문화가 마르쿠제의 사상에 미친 끔찍한 효과를 감지하고는 공공연히 마르쿠제를 비판했다.
탈숭고화는 제2차 세계대전 전후의 아방가르드 실천에서 명백하게 발견되는 현상을 규정하는 용어이다. 근대를 통틀어 예술 전략은 기술적 미덕과 비범한 기술에 대한 요구, 그리고 역사적으로 수용된 표준 모델에 부합할 것을 요구하는 기성의 주장을 부인하고 그것에 저항했다. 근대의 예술 전략은 비천하거나 저급문화에 속하는 도상을 사용하거나, 과정과 재료를 전면에 내세워서 신체 경험 중 억압된 차원을 예술 체험의 공간에 재도입하는 등, 예술의 어떠한 특권적 지위도 부인하며 모든 수단의 탈숙련화를 동원해 그 특권적 지위를 격하시키고 있다.
네오아방가르드
제2차 세계대전 후 예술사회사 집필에서 제기된 주요 갈등의 원인은 무엇보다 서사적 일관성의 부재에서 찾을 수 있다.
아도르노의 후기 모더니즘적인 저작 「미학이론」(1970)은 자율성 개념을 주요 논제로 삼고 있는데, 클레멘트 그린버그가 미국식의 포스트모더니즘 미학을 위해 자율성 개념을 동원한 것과 달리, 그의 미학은 이중부정의 원칙을 전제로 하고 있다. 그의 포스트모더니즘은 자율성 미학에 대한 어떠한 쇄신된 접근의 가능성도 부정했는데, 그 가능성은 파시즘과 홀로코스트의 여파 속에서 부르주아 주체가 끝내 파괴되면서 무화되어 버렸다. 또 아도르노의 미학은 마르크스주의 미학의 혁명적인 관점에서 요구되는 예술 실천의 어떠한 정치화의 가능성도 부정한다. 그는 전후 문화 재건에서 혁명 정치를 위한 정치적 상황이란, 사실상 접근할 수 없는 것이므로 정치화된 예술은 오로지 일개의 구실로서만 사용될지 모르며 현실적인 정치 변화를 방해할지도 모른다고 주장했다.
반면 그린버그와 그의 제자 마이클 프리드가 적극 옹호한 미국의 네오모더니즘과 페터 뷔르거가 네오아방가르드라 칭한 예술가들의 실천은 체계적인 역사 왜곡의 대가를 치르고 나서야 그들의 주장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들은 승자의 관점에서 역사를 집필했고, 다다의 유산과 러시아 소비에트 아방가르드의 예처럼 고급예술과 아방가르드 문화에서 발생한 주요 착상의 변형들을 체계적으로 부인했다. 더군다나 이 비평가들은 홀로코스트 이후의 문화적 생산은 모더니즘 회화 및 조각과의 연속성을 이어갈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 "아우슈비츠 이후 서정시는 불가능하다"는 판결로 알려진 아도르노의 부정변증법 모델과, 그린버그의 네오모더니즘과 분명히 대립되는 그의 미학 이론은 문화 전반의 불확실한 상황에 대해 재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예술사회사의 장점과 성공이 가장 명백히 드러나는 역사적 상황이란 계급, 정치적 이해관계, 문화적 표상 형식들이 단단히 현실적인 매개로 연결되어 있어 서로를 입증할 수 있는 상황이다. 예술사회사학자만이 근대의 그런 혁명적이거나 정초적인 상황을 둘러싼 서사를 다시 구축할 수 있다. 이 고유한 능력 덕분에 예술사회학자의 설명은 모더니즘의 처음 100년에 대한 가장 설득력 있는 해석을 제공했다. 다비드에 대한 토마스 크로의 저작뿐만 아니라 입체주의의 시작에 관한 T.J. 클라크의 저작도 이런 예에 속한다.
그렇지만 서사와 회화적 재현의 층위에서 전통적인 주체와 대상의 관계를 적극적으로 파괴하는 것은 물론 전통적인 형식을 파괴한 추상, 콜라주, 다다, 뒤샹의 작품 같은 아방가르드 실천이 역사에 등장하자, 서사적 재현과 회화적 재현 모두에서 일관적 설명을 유지하려는 예술사회사의 시도는 분석 대상의 구조와 형태에 적합하지 않거나, 서로 양립할 수 없거나, 최악의 경우 거짓된 복권의 시도로 밝혀지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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