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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방의 먼지/철학방

[소크라테스의 변명] / 플라톤

by 책방의 먼지 2019. 7.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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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중에서도 오래된 책이다. 우리나라에선 몇 년 전부터 정암학당에서 플라톤 전집(원연 번역본으로)을 내고 있는데 처음 읽은 책은 '향연'이었고 '변명'을 두 번째로 읽어보았다.  

 

「소크라테스의 변명」, 누구나 한 번은 들어봤을 유명한 책이다. 소크라테스, 이 유명한 그리스 철학자는 그가 직접 써 내려간 책은 없다. 광장이나 사람들이 모인 열린 공간에서 면대면으로 직접 토론을 하는 사람이었으니 당연한 소리이다. 대부분이 플라톤에 의해서 아니면 크세노폰에 의해서 전해지는 말들을 엮어 책으로 전해지고 있다. 그래서 소크라테스의 ○○이라 해도 어디까지가 그의 말이 반영된 것인지 아니면 플라톤의 사상인지 정확히 따져 볼 수 없지만, '변명'은 재판 시 상황을 재현한 책으로써 가장 직접적으로 소크라테스의 말, 생각을 전해주는 책이다. 

 

나에겐 근대 이후의 철학서들은 읽어나가기 어려운 점들이 있는데-어려운 용어나 미리 알아두어야 할 철학적 지식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플라톤이 쓴 국가라던지 소크라테스의 글 같은 그리스 고전들은 약간 소설 같은 느낌을 주어 문장 자체는 쉽다.

특히 '변명'은 대부분이 대화체이고 소크라테스가 재판장에서 자신을 변호(?)하듯이 연설을 하는 일상적인 언어로 재현한 데다 분량도 길지 않아 잘 읽혔다.  

 

책의 내용을 조금 담아보자면 


그를 고발한 자는 멜레토스와 아뉘토스와 뤼콘이다. 멜레토스는 시인들을 대변하여, 아뉘토스는 장인들과 정치인들을 대변하여, 또 뤼콘은 연설가를 대변하여 소크라테스를 고발해 그는 재판장에 서게 되었다. 
그들이 주장한 죄목은 이렇다: "소크라테스는 젊은이들을 망치고, 국가가 믿는 신들을 믿지 않고 다른 새로운 신령스러운 것들을 믿음으로써 불의를 행하고 있다."
이 고발 내용에 대해 초반에 소크라테스는 그의 유명한 대화법으로 멜레토스와 대화를 나눈다. 소크라테스의 반박에 의해  그가 신을 믿지 않는다는 고발은 맞지 않는 사실임이 드러나게 된다. 
소크라테스는 그가 고발당한 이유는 자신에 대해 많은 미움이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생겨나 있다, 즉 많은 사람들의 비방과 시기 때문에 자신은 고발당했다고 결론을 내린다.
그는 판결에서 죽음도 불사하지 않으며 "아무도 죽음을 알지 못하는데, 그것이 심지어 인간에게 생길 수 있는 모든 좋은 것들 가운데 최대로 좋은 것인지조차 알지 못하는데, 그들은 그것이 나쁜 것들 가운데 최대로 나쁜 것임을 마치 잘 알고 있기라도 한 것처럼 그것을 무서워한다"고도 말한다. 
또한 그는 "실로 누군가보다 자신이 어떤 점에서 더 지혜롭다고 주장한다면 바로 알지 못한다고 생각한다는 점에서이다."라고 자신의 생각도 전파한다.    
그는 "가장 훌륭한 양반, 당신은 지혜와 힘에 있어서 가장 위대하고 가장 명성이 높은 국가인 아테네 사람이면서, 돈이 당신에게 최대한 많아지게 하는 일은, 그리고 명성과 명예는 돌보면서도 현명함과 진실은, 그리고 영혼이 최대한 훌륭해지게 하는 일은 돌보지도 신경 쓰지도 않는다는 게 수치스럽지 않습니까?"라고 말하며 누군가가 이의를 제기하면, 오히려 그자에게 묻고 검토하고 논박을 계속할 것이라고 하며, 단지 그것이 자신이 돌아다니면서 한 일이라고 한다. 

 그 외에도 책을 통해서 기원전 399년 아테네에서 열린 재판이므로 당시 아테네의 문화나 사회 상황에 대해 파악할 수 있었다. 그에 더해 당시 시대적 배경을 책을 읽기 전에 좀 더 알고 있으면, 아님 읽고 나서라도 찾아보면 더 흥미로울 것 같았다. 

개인적으론 '소크라테스'라는 인물상에 대해 생각을 다시금 하게 되었는데, 그냥 철학자가 아니라 대단한 기개를 가진 자라는 점이 참 와 닿았다. 자신의 신념(?선이나 법에 관한)이라 해야 할까? 그것을 지키기 위해 죽음도 마다하지 않고, 타협도 하지 않는 점에서 마치 예수나 독립투사와 같은 인물이란 생각이 들었다. 대신 이 책에선 그가 아테네의 젊은이들이나 제자들에게 전파한 구체적인 사상에 관해선 파악할 수 없어 소크라테스에 관한 다른 책들을 읽으면서 이 지적 호기심은 채워져야 할 것 같다. 


먼지의 단상: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우리나라 옛 독립투사들이나 선비들 같이 아니 굳이 그 예전으로 돌아갈 필요도 없다, 근래에도 자신들의 신념을 지키고 전파하기 위해 애쓰는 사람들은 있다. 하지만 예전과 다른 점은 그들의 신념이 결국은 공공보다는 자신의 이익을 위한 점들이란 것인데......, 그 이익을 제외하면 오늘날 우리는 어떤 신념을 전파할 수 있을까? 그것 보다 하나로 정의될 수 있는 이상적인 사고라는게 가능하기는 할까?

이미 많이 변해버린 물질로 뒤덮인 시대에 살고 있는 나는 소크라테스처럼 실체 없는 이상을 위해 목숨을 내놓는 일이 멋스러워 보이기도 하지만 소크라테스 또한 자신의 이상을 종교처럼 숭배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에 조금 씁쓸해지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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